혜시에게 배우는 사물을 보는 방법, 열 가지!

분명한 사실도 따지고 들면 새로운 세계를 얻는다.

by 휴헌 간호윤

혜시에게 배우는 사물을 보는 방법, 열 가지!


《장자》 <천하> 편에는 혜시가 말한 열 가지 사물보기인 ‘역물십사(歷物十事)’가 나옵니다. ‘역물(歷物)’은 사물을 관찰한다거나 또는 대상을 파악한다는 의미이지요. 혜시의 역물십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의 허점을 예리하게 파고듭니다. 분명한 사실도 혜시처럼 따지고 들면 새로운 지혜를 얻습니다. 이렇게 사물을 볼 때 신선한 글쓰기 세계도 열립니다. 하나씩 살펴봅니다.


1. 지극히 커서 밖이 없는 것을 가장 큰 것(大一)이라고 하고, 지극히 작아서 안이 없는 것을 가장 작은 것(小一)이라고 한다(至大无外 謂之大一 至小无內 謂之小一)

바다가 큰가요? 세계는? 그럼 우주는 어떠한가요? 어버이의 사랑은? 도는? 지식은? 자유는? 상상력은? 생각은? ‘바다는 메워도 사람 욕심은 못 메운다’는 욕심은? 숫자의 끝은? 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큰 것은 밖이 없는 것이지요. 바늘이 작은 가요? 모래? 먼지는 또 어떠한가요? 속 좁은 마음은? 꽉 막힌 생각은? 물은 산소와 수소원자로, 원자는 전자와 양성자와 중성자로, 양성자는 쿼크로…? 블랙홀은? 정말 작은 것 역시 안이 없는 것입니다. 경험 세계에만 근거를 갖는 상식을 부수라는 명제입니다.


2. 두께가 없는 것은 쌓을 수 없지만, 또한 그 크기가 천리가 된다(无厚不可積 也其大千里)

두께가 없는 물건은 아무리 쌓아도 높아지지 않겠지요. 그러나 늘어놓으면 어떨까요? 물감을 보지요. 아무리 덧칠해도 두꺼워지기는 어렵지만 물감을 펼치면 어떠할까요? 점 하나쯤이야 하겠지요. 하지만 이 점을 계속 연결한다면, 천 리, 만 리, 지구를 돌고 돌아도 끝나지 않는 직선이 됩니다. 두께와 넓이, 길이는 다른 개념입니다. 두께가 없다고 넓이, 길이도 없다는 것은 착각이지요. 하나 더, 보이지 않아 쌓을 수는 없지만 추억은 또 어떠한지요? 공기는? ‘너 자신을 알라’와 같은 짧은 문장이 우리의 삶에 주는 크기는? 고정된 상식을 버리라는 명제입니다.


3. 하늘과 땅은 높이가 똑같고 산과 연못은 똑같이 평평하다(天與地卑 山與澤平)

하늘이 위에 있으니까 높고 땅은 아래 있으니까 낮다고요? 우주에서 보면 어떨까요? 똑같지요. 산은 높고 연못은 파였다고요? 위에서 내려다보면 평평한 땅일 뿐입니다. 이것과 저것의 차이는 상대적일 뿐입니다. 철수의 이모는 영수에겐 고모가 되고, 미연에게는 엄마이며 성원씨에게는 부인입니다.


4. 해가 막 하늘 가운데 뜬 상태는 막 지는 상태이며 어떤 존재가 막 태어났다는 것은 막 죽어가는 상태이다(日方中方睨 物方生方死)

당연하지요. 떴으니 질 것이고, 생명체로 태어났으니 죽겠지요. 물이 막 어는군요. 섭씨 0∘이지요. 섭씨 0∘, 그러면 물이 녹는점이기도 하군요. 섭씨 100∘입니다. 물이 끓습니다. 비등점이로군요. 액체에서 기체로 변해야 합니다.


5. 크게 보면 같지만 작게 보면 다르니 이것을 '소동:조금 다르다'이라 하고, 만물은 모두 같기도 하지만 다르기도 하니 이것을 '대동:많이 다르다'이라 한다(大同而與小同異 此之謂小同異 萬物畢同畢異 此之謂大同異)

‘같다’와 ‘다르다’는 다르지만 같지요. 은행나무와 접시꽃은 식물로서는 같지만, 은행나무는 나무요, 접시꽃은 꽃으로 다르지요. 같다와 다르다는 결국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군요. ‘많다’와 ‘조금’의 차이는 또 뭐랍니까? 한 말에 비하여 두 말이 많지만, 세 말이면 두 말이 조금이지요. 무엇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 나라 정치인들과 백성들은 하나의 사실조차 네 편 내 편 갈라 이전투구를 합니다. 원인은 정론을 펼쳐야할 언론이 분명한 사실조차 '제 이익을 기준으로 선별 보도'하는 데 있겠지요.)


6. 남쪽은 끝이 없으면서 끝이 있다(南方无窮而有窮)

서울에서 남쪽인 대전은 당연히 끝이 있지요? 그러나 서울의 남쪽하면 그 끝이 어디일까요? 자구를 한 바퀴 돌아 서울로 와도 다시 남쪽으로 가야 합니다. 설령 남쪽의 끝 남극점에서 나침반이 멈추더라도 우리 머릿속의 남쪽이라는 개념은 끝이 없지요. 우리나라의 최남단 마라도 영공은 또 어떻습니까? 대한민국의 영공과 일본의 영공은 국제법상으로야 끝이 있겠지요. 그러나 그 영공을 수직으로 따라 올라가 대기권 밖은, 계속…. 끝이 없지요. 영화는 끝났지만 남는 감동은 또, 수평선 뒤에 수평선이, 지평선 뒤에 지평선은 어떠한가요. 손끝으로 남쪽을 가리켜 볼까요. 벽에 부딪쳐 끝났다고요? 아닙니다. 벽 뒤도 남쪽이겠지요. 계속---쭉---


7. 오늘 월나라에 가서 어제 돌아왔다(今日適越而昔來)

오늘 갔으면 내일 이후에 돌아와야 한다고요? 오늘이 오늘인가요? 오늘은 어제에서 보면 내일이고, 내일에서 보면 어제입니다. 그러니 어제, 오늘, 내일은 상대 개념일 뿐이니, 오늘 월나라에 가 어제 돌아왔다 한들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지금 이 글을 쓰는 한국시간은 2009년 10월 10일 오전 11시입니다. 미국 뉴욕은 10월 9일 오후 10시, 하와이는 10월 9일 오후 4시입니다. 오늘과 어제가 함께 있군요. 이를 적절히 작품에 응용한 것이 쥘 베른의 소설 <80일간의 세계일주>입니다. 주인공 필리어스는 분명 81일 만에 출발지 런던으로 오지만, 동쪽으로 날짜 변경선을 넘어 하루를 벌었기에 80일간의 세계일주가 됩니다.

바닷속으로 사라져 버리기까지 앞으로 남은 시간이 겨우 50년이라는, 지상에서 태양이 가장 먼저 뜬다는 아름다운 작은 섬나라 키리바시공화국(Republic of Kiribati)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서로 날짜 변경선이 달랐다 합니다.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마실을 다녀오는데 어제, 오늘, 내일이 바뀌는 셈입니다. 인간이 만든 연, 월, 일, 오늘, 내일, 모레, 시, 분, 초,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8. 이은 둥근 고리는 풀 수 있다(連環可解也)

둥근 고리를 풀어 보라고? 간단하군요. 자르면 되지요. 또 분명히 ‘이은’이라고 했지요. ‘이어진 곳’ 바로 그곳을 풀면 됩니다. 발상의 전환을 촉구하는 명제입니다.


9. 나는 세상의 중심이 어디인가를 안다. 연나라의 북쪽과 월나라의 남쪽이 바로 그곳이다(我知天下之中央 燕之北越之南是也)

연나라는 중국 북쪽에 있던 나라이고 월나라는 남쪽에 있던 나라입니다. 중심은 이것과 저것의 사이에 있습니다. 이것이 연나라의 북쪽이면, 저것은 월나라의 남쪽이겠군요. 문제는 북쪽과 남쪽이라고 했습니다. 6과 유사한 경우가 펼쳐지겠군요.

자기중심의 삶에는 이러한 모순이 있습니다.


10. 만물을 사랑하라. 온 세상이 한 몸이다(氾愛萬物 天地一體也)

온 천지로 보면 크고 작은 것도, 큰 것도, 나와 너도, 백인, 흑인, 황인도, 이 나라 저 나라도 하나일 뿐입니다. 모두 지구에 사는 한 가족입니다. 그러니 부스터샷까지 하는 부자 나라들, 백신 좀 나눠 주어야 하지 않겠는지요.



혜시 (惠施, BC 370?~BC 309?) :중국 전국시대 송나라의 사상가. 양(梁)의 혜왕(惠王) ·양왕(襄王)을 섬기어 재상이 되었다. 그의 주장은 《장자》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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