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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헌 간호윤 Nov 09. 2021

늙은 대추 몇 알이 건네는 인연의 끝

대추 몇 알이 안간힘을 쓰고 있다.

1.


비 내리는 입동날, 바짝 마른 대추나무에 대추 몇 알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인연의 끝을 부여잡고. '인내', '끈기'라는 단어보다는 '쇠락', '욕심'이 먼저 떠오른다. 고집스럽게 매달려 있는 대추 몇 알이 마치 헤어질 때, 미련으로 안간힘을 쓰는 듯해 공연히 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


그러나, 한 발짝 물러나 나무 쪽에서 생각해보면, 제 육신으로 만들어낸 수많은 잎과 열매들이다. 그렇게 새싹이 움트는 봄과 뜨거운 태양의 한 여름을 함께 몸으로 받아냈다. 그리고 늦가을, 마지막 비바람이  불고,  이제 몇 알의 대추만이 남았다.


3.


모든 인연은 이연이란 것쯤 누가 모르랴. 그 인연의  끈을 안간힘으로 부여잡고 있는 저 바짝 마른 대추나무와 늙은 대추 몇 알을  '쇠락'이니 '욕심'이니 하는 부정어로 볼 게 무엇인가? 오지 않은 인연이면 모르겠지만 이미 온 인연이기에 온 힘을 다해 잡으려는 게 무에 그리 볼썽사납다고 각박한 생각을 하는가?


4.


그 인연의 끝.


절망처럼 떨궈진 잎들과 늙은 대추는 다시 흙으로 돌아갈 것이고 내년에 또다시 잎으로 대추로 제 바짝 마른 어미 몸에서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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