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향원이 아니 되련다
코로나에 폭염까지, 올 여름이 참 힘겹다. 그래도 오늘이 더위가 멈춘다는 처서란다. 그러고 보니 매미 소리가 오늘부터는 잦아들었다. 가을 장맛비치고는 요란하다 싶었은데 태풍이 올라온단다. 간단히 점심을 마치고 산책이라도 나서려는 데 딱히 오라는 곳도 갈 곳도 없다. 한참동안 비 내리는 창을 보다가 내 블로그를 뒤적였다. 몇 해전 써 놓은 <제자의 우중 산보>가 눈에 들어온다. 그랬었는데, 잊었었구나. 어찌 살고 있는지 메시지를 보냈다. "00야! 잘 내지.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코로나에 ---잘 지내렴. -선생님이"
<제자의 우중 산보>
빗줄기가 제법 휴휴헌 창을 때린다. 제자가 찾아왔다. 완연 40대 중반의 나이였다. 고3 시절 담임선생을 26년 만에 만나러 온 사람치고는 후줄근한 옷차림에---.
“아, 비 오는 데 우산이라도 쓰고 오지.”
“예, 전 우산 잘 안 써요. 귀찮기도 하고요. 선생님을 보고 싶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이어졌다.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두 번의 결혼에서 21살, 10살, 형제를 얻었고, 애들 엄마와는 모두 이혼하였고, 지금은 임시직이지만 얘들을 위해 열심히 산다는 내용을 담담하게 풀어놓았다.
학창 시절 밝은 아이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었다. 이미 그 시절부터 가난은 그의 삶을 옥죄고 있었다. 친구에게든 담임에게든 내색을 안 했을 뿐이었다.
서재 앞 찌개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주는 한잔하니?”
“예.”
회색빛 하늘은 소주만큼이나 맑은 빗줄기를 심드렁하게 쏟아부었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에 제자가 계산을 해놓았다.
나는 돌아서는 제자에게 비닐우산을 건네주었다.
서재로 돌아와 문자를 보냈다.
“오늘 잘 먹었다. 평안히 가렴.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감사합니다. ㅎㅎ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건강하세요.”
가만 보니 제자의 카톡 메인화면 뒤편에 글이 보였다.
‘우중 산보’
다시 가만 생각해보니, 나야말로 우중 산보를 가고 싶은 데 갈 곳이 없다.
2018. 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