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실학인(實學人)들의 삶이 더없이 고결하다.
“거참, ‘그 사람’ 그런 면이, 나를 선생으로 깍듯하게 대우하더군. 미리 수업 준비도 해놓고 질문도 많고.” 1998년쯤 필자가 한학연수기관인 <유도회(儒道會)>에 다닐 때 선생님께 들은 말이다.
저 문장에서 ‘그 사람’이 엊그제 이승을 달리한 고(故) 전(全) 전(前) 대통령이다. 처음 전(全) 전(前) 대통령이 유도회에 한학을 배우겠다고 청했을 때 선생님들께서는 꽤 고심을 하셨다. 논의 끝에 저런 분일수록 가르쳐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수업을 다녀오신 선생님께서 가끔씩 전하는 이야기 중 한 토막이다.
이 외에도 선생님께서 전언한 이야기로는 결석하는 날은 문상(問喪)이 있는 날이란다. 문상은 집안에서 청소하는 이까지 반드시 가고, 문상 간 장례식장의 다른 상가(喪家)도 ‘전직 대통령인데’라며 모두 들린다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부하는 열의도 높고 의리도 꽤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냈고 나이도 향년(享年) 90세이다. 하지만 전(全) 전(前) 대통령 삶의 귀결은 저 ‘초라한 가족장’이 반증해준다.
하지만 전(全) 전(前) 대통령 삶의 귀결은 저 ‘초라한 가족장’이 반증해 준다. 필자가 얻은 답은 모두 제대로 된 공부(실학:實學)가 안 되어서다. 공부란 박학(博學, 널리 배움), 심문(審問, 자세히 물음)에서 시작하여 신사(愼思, 신중히 생각함), 명변(明辨, 분명히 판단함)을 거쳐 마지막으로 독행(篤行, 오로지 행함)이다.
즉 배운 지식은 있으나 실천하는 행동이 없으니 쿠데타, 광주학살, 반란수괴죄 및 살인, 뇌물수수 등등 오욕(汚辱)의 삶을 살게 된 게 아닐까? 배움을 제대로 실천할 줄 아는 이라면 어찌 저러한 삶을 살겠는가.
그러고 보면 조선 후기 실학인(實學人)들의 삶이 더없이 고결하고 우리에게 지남(指南)으로서 역할을 넉넉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