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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헌 간호윤 Dec 15. 2021

산 너머로 연기가 보이면 불이 난 거다

“아이고, 답답해라. 왜, 내 말을 못 알아들어?”

산 너머로 연기가 보이면 불이 난 거다

산 너머로 연기가 보이면 불이 난 게요, 담장 위로 뿔이 보이면 소가 지나가는 법이다. 뜻을 말로 써 놓아야만 쓴 게 아니다. 연기가 나는 데도 불을 못 보고, 소가 지나가는 데도 소를 못 보아서는 안 된다. 말로 다하지 못하여 연기만 보이고 담장 위로 뿔을 그려낸 것이다. 


‘언불진의(言不盡意)’, 말은 뜻을 다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제 아무리 말을 잘하거나 글을 잘 쓴다한들 자기 속내를 어찌 말이나 글로 표현하겠는가. 그래 우리는 제 가슴을 치며 “아이고, 답답해라. 왜, 내 말을 못 알아들어?”하는 경우를 종종 보지 않는가? 


말은 다하였으나 뜻은 아직 다하지 않았네’라는 ‘사진의부진(辭盡意不盡)’이나, ‘글 밖에 뜻이 있다’는 언외지의(言外之意), 그리고 심행수묵(尋行數墨)이라 하여, ‘문자 밖의 참뜻을 찾아라’하는 주자의 말, 모두 ‘언불진의’와 통성명을 하고 지내는 용어들이다. 


그래 ‘말을 안다(知言)’는 것이 여간 만만히 볼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해 선인들도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중 《맹자》 <공손추 장구>상을 보면 공손추가 맹자에게 ‘말을 안다’함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맹자는 “한쪽으로 치우친 말에서 그의 마음이 가려 있음을 알며, 지나친 말에서 마음이 빠져 있음을 알며, 사악한 말에서 마음이 바른 도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을 알며, 회피하는 말에서 논리가 궁함을 알 수 있다(詖辭知其所蔽 淫辭知其所陷 邪辭知其所離 遁辭知其所窮)”라고 한다. 말속을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말을 들을 수 없다는 뜻이다. 


독서 역시 그렇다. 책을 읽는데, 문자에만 구애되면 눌러 넣어 둔 문자 밖의 참뜻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말에 나타난 뜻 이외의 숨은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데도 글자 읽은 것만으로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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