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김건희 부부 신드롬?’ 아니면, ‘윤석열‧김건희 부부 효과?’라 할까? 윤석열의 건들건들 걷는 걸음, 도리도리, 말할 때 허두사, 어떻게 저런 지식으로 검사가 되었는지 의심될 정도의 무식과 과격한 말들, 여기에 부인 김건희 가족의 물질에 대한 탐욕과 이력서 변조, 기자 회견과 기자 대화의 이중적 모습은 또 어떠한가. 특히 부부 모두 정제되지 않은 직설적 화법에 무속까지 집안을 휘감고 있다. 여기저기 무당이 작두를 타고 선 무당이 사람을 잡는, 마치 한바탕 거대한 굿판이 벌어진 모양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대통령 후보로서 남편 윤석열 지지율은 40%를 오르내리며 MBC 보도 후에 부인 김건희 팬카페에는 58000명 마니아들이 몰려들고 있다. 그들은 “정권 교체를 위해 그녀가 온다”며 “건희 언니”의 정제되지 않은 말을 “적폐들을 입 다물게 만든 호탕함”이라고 추켜세웠다.
나는 정당인이 아니다. 정치인은 더욱 아니다. 그냥 대한민국이 '상식이 통하는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방안풍수 선생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인터넷을 열고 들여다본 대한민국은 ‘이게 상식이 통하는 나라에서 있을 법한 일인가? 도대체 이러한 현상이 왜 일어나는 걸까?’를 곰곰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다 언제가 본 듯한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꼭 지금 돌아가는 현상이 이명박 대통령 될 때와 판박이인 듯하다. 그때도 그랬다. 그냥 노무현 대통령이 싫다는 사람들이 열에 아홉은 되는 듯했다. 국가의 미래니 정책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무엇엔가 홀린 듯 신들린 듯 이명박 대통령을 연호했다. 그러고는 이 광풍으로 ‘이명박 이미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이어졌다. (난장판 언론 보도나 악다구니를 퍼붓는 댓글들이 꼭 그때 그 모습이다.)
지금대로라면 ‘윤석열 이미 대통령과 김건희 이미 대통령 영부인’이 대통령과 영부인이 될 듯하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와 상식과는 거리가 먼 엄혹한 저 시절로 또 돌아가야 한다.(전두환‧이명박‧박근혜 증후군'이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블로그에 몇 줄 적바림하려는데, 전에 써 둔 <마음 죽이기>가 보인다. 문득, 앞으로 5년을 잘 견디려면 ‘마음 죽이기’ 연습을 게을리 말아야겠다는 다짐장을 놓아본다. 잘못하면 화병으로 5년을 견디지 못할지도 모르기에.
<마음 죽이기>
나에게 마음을 죽이라 한다. 내 마음을 경계함이다.
성인들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요 탐진치(貪瞋癡)’를 경계하였다. 지나치기보다는 차라리 미치지 못하는 게 낫고 탐욕(貪欲)과 진에(瞋恚)와 우치(愚癡), 즉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 이 세 가지 번뇌가 열반(涅槃)에 장애가 되는 삼독(三毒)이라 하였다. 과유불급이든 탐진치이든 모두 마음 작용이다. 모든 것이 오로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화엄경(華嚴經)》의 중심 사상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도 이것이다.
글귀야 하나하나 흠잡을 데 없지만 범인(凡人)인 나로서는 따라잡기 어렵다. '문둥이 옻나무 피하듯' 저 말들을 멀리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하루에도 만무방처럼 수 백 번 이리저리 널뛰는 마음을 고요히 죽이라는 것은 꽤 난감한 일임을 절감한다.
장자는 이 마음 죽이기를 좌망(坐忘)이라 하였고 맹자는 이를 진심(盡心)이라 하였다. 형이하학적으로 풀이하자면 마음을 죽여 ‘적당히’하라는 말이다. ‘마음을 죽여 적당히’ 참 어려운 말이다.
생각해보니 이 난감함이 되려 맞는지도 모른다. 과유불급, 탐진치, 좌망, 진심 모두 성인들이 운용(運用)하는 어휘들이다. 오욕(五慾)과 칠정(七情) 사이를 서성거리는 나로서는 마음 죽이기를 못하는 것이 정(定)한 이치 아닐까. 그저 보통 사람이기에 그 마음이 때로는 흘러넘치기도 때로는 택도 없이 모자라기도 한다. 그러니 마음이 많이 가면 많이 가는 대로 적게 가면 적게 가는 대로 살아가는 것, 그게 사람살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