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패[실패]란 때로 거룩한 스승

낭패[실패]는 바느질할 때나 ‘실패’로 쓰시길

by 휴헌 간호윤

책에는 그렇게 '성공' 이야기가 많은 데 주위를 둘러보면 '낭패[실패]'본 사람들이 태반이다. 하다못해 글 한 줄 쓰는 데도 허다한 자음과 모음을 썼다 지웠다 하니 '낭패[실패]'는 '낭패[실패]'이다. 그러니 내 인생이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좋은 날보다 '낭패[실패]' 본 날이, 좋은 일보다 '낭패[실패]' 본 일이 허다하다.


어른들이 모두 일터에 나간 빈 동네를 아이들 뛰놀았다. 한참 놀고 있을 때, 한 아이가 물이 가득 찬 큰 독에 빠졌다. 함께 놀던 아이들은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저 큰 독 속에 빠진 아이를 건질 수 없었다. 아무리 소리쳐도 들에 나간 마을 어른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이때 한 아이가 나와 큰 돌을 집어 독을 힘차게 내리쳤다. 독은 깨졌고 아이는 목숨을 건졌다.


독을 깬 아이가 후일 송나라 시대의 대학자로 <자치통감>을 짓고 재상이 된 사마광(司馬光,1019~1086)이다.


알고 나면 ‘그까짓 것!’ 하지만 사실 독을 깨기란 쉽지 않다. '독을 깨서는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지나치게 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더욱 심하다. 아무리 사고의 유연성이니 창의적인 발상이니 하지만 낭패[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낭패[실패]란 때로 거룩한 스승이 되기도 하지만 그 수업료는 참으로 비싸다. 그 수업으로 얻은 이익은 때론 거기에 든 비용보다 못할 때가 많다.”


루소의 말이다.


성공은 늘 낭패[실패]와 다니지만 낭패[실패]가 항상 성공을 벗하지는 못한다. 루소가 말한 뜻은 저러한 이유가 아닌가 한다. 그래, 낭패[실패]란 놈이 때로는 성공에게 앙탈을 부리고 종주먹을 들어 을러대기도 하지만, 별무소용이다. 실패와 성공, 말의 생김조차도 다르지만 어감을 볼작시면 더욱 영판 남남이다.


성공은 ‘ㅓ,ㅗ’로 밝고, 여기에 유성음 ‘o’으로 묶여 끌밋하니 푼푼하다. 실패란 놈은 ‘ㅣ’ 모음이 우선 맥이 없고, 여기에 목젖으로 콧길을 막고 두 입술을 다물었다가 뗄 때에 거세게 나는 파열음인 ‘ㅍ’이 이어진다. 이 녀석, 흉흉하니 여간 짓궂게 생겨먹은 게 아니다.


낭패[실패]가 인생의 대세인 사람들이 참 많은 세상이다. 낭패[실패]는 바느질할 때나 ‘실패’로 쓰고 “낭패[실패]한 후에야 도리어 성공이 있는 법(敗後 或反成功)”(<채근담(菜根譚)>)이라 했으니 믿어보는 오늘이다.


(‘실패’는 일본말이니, 우리말로 ‘낭패’ 정도가 어떨까요? 약간 어감이 다른 까닭은 이미 '실패'란 말에 익숙해져서입니다. 언어 습관이란 이렇게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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