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와 인간적 거리두기>(1-3)

나는 향원은 아니 되련다

by 휴헌 간호윤

<사회적 거리두기와 인간적 거리두기>(3)

마음을 추스르려 오랜만에 산에 오른다. 상황이 그렇지만 여하간 개강은 개강이다. 비록 줌수업일지라도. 이번 학기에는 어떤 학생들과 만날까? 서로에게 좋은 인연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계속이지만 인간적 거리두기는 안될 말이다.

작년 3월에 써 둔 글이 보인다.

2021년 8월 29일



<사회적 거리두기와 인간적 거리두기>(2)

이 세상은 자체가 난세(亂世)이다. 언제 태평성대인 세상이 있었던가. 못 가진 자에게는(나 같은 자는 당연히 포함된다.) 늘 난세였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인간적 거리두기>라는 글을 쓴 지 열여드레가 되었다. ‘코로나19’의 기세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퍼졌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전에 등재될 만큼 그 위력이 대단하다. 내 주위만 하여도 그렇다. 개강을 한 지 세 주가 되었지만 아직 나는 학생들 얼굴조차 못 보았다.(3월 초에 만났다면 지금쯤 나와 학생들 사이에는 꽤 유대감이 형성되었을 시간이다.) 지금쯤이면 여러 곳에서 들어올 외부 강의도 단 한 건 없다. 하다못해 전화마저도 확연히 줄었다. “요즈음은 안부 전화마저 안 옵니다. 장사가 안 되는 것보다 그게 더 무섭더군요.” 어제 헬스장에서 눈인사를 주고받는 건축업을 한다는 이가 서운한 목소리로 나에게 건네는 말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어느새 ‘인간적 거리두기’로 변했다. 모두 ‘코로나19’라는 상황이 벌어진 이후에 발생한 매우 신비로운 현상이다.

문제는 이 ‘코로나19’가 사라진 뒤이다. ‘인간적 거리두기’를 겪은 사람이 ‘코로나19’ 이전의 인간관계로 돌아갈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란,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 기본 전제이다. 사회는 살아있는 생물체이다. 생물체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변하는 게 본질이다. 상황이 변했다고 나를 ‘인간적 거리두기’한 그 사람과 섭섭한 마음을 쓸어버리고 ‘코로나19’ 이전으로 복원될까. 이미 저 사람이 멀리한 만큼 이 사람도 멀어졌거늘.

우리는 오늘만 산다. 그것도 혼자 살 수 없다. 반드시 사람은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간다. 세상을 살아가며 확연히 깨닫는 게 한 가지 있다. 오래 사귀었다고, 친구라고, 연인이라고, 사제 간이라고, 부모 자식 형제간이라도 인간적 거리를 유지하지 않으면 오늘 만난 이웃집 사람만도 못한 게 이치이다. 그렇게 필연이니 인연으로 만난 사이지만, 인연이 이연이 되는 것은 대단한 까닭이 있어서가 아니다. 물리적인 거리가 아니라 마음이 멀어져서이다. ‘마음이 멀어져서’를 풀어 말하면 ‘인간적으로 거리가 멀어져 타인이 되었다’는 의미다. 80억에 가까운 사람이 이 세상에 살지만, 나와 인간적인 거리를 맺는 사람은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 그런 소중한 인연이 ‘코로나19’로 인하여 떠나간다는 것은 꽤 큰 비극이 아닐까.


자칫 게도 잃고 구럭도 잃을 수 있다. 이미 우리는 잃어버린 게 많다. 큰 것은 '카론의 동전 한 닢(물질)'일 것이다. 그러나 더 큰 것은 내 옆에 있는 소중한 ' 80억 분의 그 인연'이다.(80억 명이 내 옆에 있다고 내 삶이 풍요로울까? 행복할까?) 사회적 거리두기는 개인과 집단이지 개인과 개인이 아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정녕 인간적 거리두기로 변하기 전에 소중한 사람을 챙겨보자. 당장 옆에 있는 손전화를 들어 안부라도 묻자. ‘코로나19’가 전화선을 타고 옮기는 것도 아닌데 무에 그리 어려운가.

나도 내 수첩을 뒤적인다. 혹 소중한 인연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것은 아닌지.

2020년 3월 19일, 휴휴헌에서


아래는 전에 쓴 <사회적 거리두기와 인간적 거리두기>라는 글이다.

어제, 2020년 3월 1일, 날씨는 우물쭈물, 맑은 것도 아니고 흐린 것도 아니다. 삼일절인데 태극기가 내 집만 꽂혀있다. 어느 사이에 국경일에 국기를 거는 게 아니라고 법령이 바뀐 듯하다.

‘코로나19’의 기세가 자못 등등하다. 모두들 ‘코로나19’만 넋 놓고 근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다본다. 마치 “학이 ‘뚜르르’하고 울면 황새도 ‘뚜르르’하고 운다”는 속담과 어슷비슷하다.

그니(순우리말로 남녀 모두를 칭한다. 이런 우리말이 점차 사라진다.)의 전화이다. ‘코로나19’의 영향인 듯 꽤 오랜만이다. 그런데 나는 그니를 쳐다보는데 그니는 ‘코로나19’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 내가 “떡집에서 술을 찾는 격”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라고 연일 방송을 해서인지, 이제는 ‘인간적 거리두기마저 오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오늘, 여느 때 같으면 개강 준비로 바쁠 3월이다. 개강은 2주나 연기되었고. 등산 가방을 주섬주섬 챙긴다. 산을 오르면 이 어수선한 마음이 좀 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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