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렐>을 보고

'학문의 용기'와 '사랑의 용기'

by 휴헌 간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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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렐> 감독: 피터 솔레트/ 출연: 줄리안 무어, 엘렌 페이지, 마이클 섀넌, 스티브 카렐, 루크 그림즈/개봉: 2015, 미국



<사랑은 용기(?)일지도 모른다>

전연 수상쩍지 않았다. 포스터를 보곤 모녀간 정도로 생각했다. 보다 보니, <로렐>은 동성애를 다룬 영화였다. '동성애' 영화라는 낌새만 느꼈어도 아예 제목조차 안 보았다. 유교를 삶의 동선으로 살아온 나에게 동성애라는 '석 자'가 주는 선입관은 갑각류 등껍데기만큼이나 완강해서다.

<로렐>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다. 영화는 잔잔한 한 장의 순수 음악처럼 영상이 흘렀다. 형사인 로렐과 스테이시의 사랑은 작고도 맑은 선율을 그려나갔다. 스테이시[엘렌 페이지 분(扮)]가 암에 걸린 로렐[줄리안 무어 분(扮)]을 가만히 바라보는 순수한 눈은 선율의 극점이다. 로렐은 이러한 스테이시에게 자신이 죽은 뒤 연금을 주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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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완고한 남녀의 사랑만을 고집하는 법이 이를 막는다. 그러고---. 로렐과 스테이시는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법적인 부부처럼 연금 혜택을 주고받게 된다.(이 사건 이후 2016년, 미국 대법원은 동성 간에 사랑도 합헌으로 인정한다.)

'사랑'은 두 사람만이 안다. 그것은 남녀만이 아니다. 나이는 물론이고 동성 간이든 이성 간이든 성별도 상관치 않는다. (영화 <로렐>의 실제 인물들 나이 차도 근 20년이다.) 문제는 사랑이고, '사랑을 하느냐 안 하느냐'는 두 사람의 몫이란 점이다.

‘두 사람의 몫’은 바로 ‘용기’라는 두 단어이다. 두 사람의 사랑에, 사회적 인식과 가족관계 등 수많은 타자들이 개입해서이다. 로렐과 스테이시가 사랑을 이루어내는 데 세상과 맞서는 용기가 필요한 이유이다. 그래, 저들의 온 삶을 건 용기 있는 사랑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내 머릿속에 강고하게 둥지를 틀고 앉은 '동성애'라는 글자를 꽤 많이 지워놓은 영화였다. 겸하여, 스테이시처럼 그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있는가?(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는가? 자꾸만 기억을 더듬적더듬적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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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책상 옆에 지남철로 삼으려 붙여둔 말이 있다. '인지학부진 지시불용(人之學不進 只是不勇, 학문하는 사람이 배움에 진보가 없는 까닭은 다만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근사록>에 보이는 정명도 선생의 말이다. 학문은 흐르는 물과 같다. 배운 지식을 지혜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 나아가려면 남과 다른 소리를 내야 하니 현실의 벽과 부딪친다. 주저앉아 썩어버린 지식만 챙길 것인가? 아니면 끊임없이 현실을 바꾸려는가? 학문하는 이에게 용기가 필요한 이유다. 이 '학문의 용기'를 저 '사랑의 용기'에서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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