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오늘까지만 일합니다.”
“저 오늘까지만 일합니다.”
아침 5시 30분쯤 일어나 6시에 헬스장에 가 간단히 운동하고 7시쯤 씻는다, 대개 내 하루는 이렇게 시작한다. 헬스장에서는 늘 보는 얼굴이 있다. 그중 헬스장 청소하시는 어르신이야말로 안 본 날이 없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헬스장을 닦고 쓸고 탕에 물을 받고 데우고 전기 수리며 문 부서진 것까지 참 부지런하시다. 작고 마른 몸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나시는지 의아스러울 정도다. 이런 분을 내보낸다는 것은 코로나 19의 영향이리라.
10여 년을 늘 간단한 인사는 했지만 이런 대화는 처음이다.
“며칠 전, 나를 부르더라구요. 그만두라고. 그러니, 그만두어야지요 뭐. … 새벽 4시에 일어나…11년이 그렇게 금방 가버렸어요.”
묻지도 않았건만 슬그머니 다가와 서둘러 당신이 하실 말씀만 하신다. 그러고는 “모두 회원님들 덕이지요.”라는 말씀을 할 때는 쓸쓸한 물기가 돌았다.
생각을 더듬어보니 이 분을 만난 게 10여 년이다. 내가 이 분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군대에서 하사관으로 제대했다는 것, 나이는 70 정도이고 슬쩍 트집을 잡는다면 늘 욕을 달고 사시며 말씀을 퉁명스럽게 하는 것 정도가 다다.
“예, 어르신 몸 건강하세요. 다음에 뵙지요.”
그러고 보니 웃으시는 까만 얼굴은 주름이 가득하고 바짝 말랐으며 악수를 하는 손은 뼈마디가 드러나 앙상하였다. 다음에 뵙자 했으나 우연히 길가에서 만나지 않는 한, 이 분과 나의 인연은 여기까지가 끝이다.
10년의 인연이 그렇게 이연이 되는 데 채 2분도 안 걸렸다. 언젠가 써 놓은 <인연과 이연>이란 글을 본다.
<인연(因緣)과 이연(離緣)>
내 서재에서 격주에 한 번, 목요일마다 책을 읽는 '목요 인문학팀'이 있다. 자연히 수업을 마치면 인근 주막을 찾아 저녁 겸, 술 한 잔 하며 시간을 공유한다. 그게 벌써 3년이 되었다. 그 첫 멤버 중 한 분이 사정상 어제로 작별을 고하였다.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했던가. 좋은 분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수업을 마치고 뒷자리가 꽤 쓸쓸했다. 모든 인연은 이연이란 것쯤은 누구나 안다. 우리는 모든 인연과 언젠가 작별을 고한다. 곱게 싼 인연으로 맺은 연인은 물론 천륜으로 맺어진 부모 자식 간도 모두 헤어지는 게 당연이다.
만남이 있는 모든 인연은 모두 그렇게 헤어지는 이연이다. 문제는 만남보다 헤어짐이다. 인연과 이연은 정을 주고 떼기의 문제여서 그렇다. 인연은 전에 만난 적이 없었기에 만남 뒤 행동만 바뀌면 된다. 그러니 인연은 만나 정을 주면 된다. 하지만 이연은 정을 떼야한다. 허나 그동안 든 정을 뗀다는 게 그리 쉽지 않다.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마라’고 한다. 옳은 말이다. 오고 가고 가고 오고, 만나고 헤어지고, 헤어지고 만나는 게 인생이다. 이는 사람과 사람만의 문제도 아니다. 자연도 만남과 헤어짐이 있고 사물과도 만남과 헤어짐이 있다. 수많은 봄을 만나고 헤어졌으며,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졌으며, 옷가지, 신발, 책상, 따위와도 만나고 헤어졌다.
우리네 삶은 늘 만남과 헤어짐이다. 아예 죽어 영원히 이별하는 경우도 있고 잠시 이별하는 경우도 있고 이별을 통고하는 경우도 있고 이별을 통고받는 경우도 있다. 싫어 헤어지는 이연이야 그렇다지만 싫지 않은 데도 어금니 앙다물고 정을 떼야하는 이연은 차마 못할 일이다.
그러니 이연이 오기 전, 이별을 통고받기 전에 인연의 끈을 단단히 잡아 볼 일이다. 이미 와버린 인연을 놓치지 말일이다. 차마 못 할 이연이 오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