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백화점

나는 향원은 아니 되겠다

by 휴헌 간호윤


"어디를 봐도 쓸모없는 인간쓰레기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도처에서 무리를 지어 살고 있으며 아무에게나 정신을 의지하고 손에 닿는 모든 것을 더럽힌다. 한마디로 여름철의 파리떼 같은 인종이다.… 금전을 목적으로, 또는 관직을 바라는 열망으로 쓰인 악서(惡書)가 독자의 눈과 귀를 어둡게 만드는데 앞장서고 있다.… 자신의 저속한 머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쓰는 작가, 다시 말해 쓸어버리고 싶을 만큼 수많은 작가들의 신간을 일반 대중은 적절한 시기에 지속적으로 읽어야만 문화에 뒤떨어지지 않는 상류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쇼펜하우어의 <문장론>이란 책에 보이는 글입니다. 글깨나 쓰고 공부깨나 한다는 이들에 대한 경종이요 충고입니다.


공부랍시고 하다 보니, 자연 저 학문이란 세계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봅니다. 외국물을 먹어야만 일류라 생각하는 이들도 꽤나 되더군요. 그들은 예외 없이 맨드리가 화사하고 지성미가 넘치는 ‘지식백화점(知識百貨店:knowledge department store)’이란 상점을 경영합니다. ‘지식백화점’ 곳곳은 서양 이곳저곳에서 닥치는 대로 도매금으로 끊어다 놓은 상품이 잘 포장되어있습니다. 물론 큼직하니 ‘Made In America’, ‘Made In France’, ‘Made In England’, ‘Made In Japan’, ‘Made In China’(요즈음은 다시 조선 복고풍으로 중국산도 1류 상품입니다.)라는 상표도 잊지 않습니다.
1류요, 물 건너왔기에 값은 물론 도매가 아닌 소매입니다. 즐비한 상품 대부분이 고가이지만, 늘 지식꾼을 자처하는 이들로 북적입니다. 고백하건대 나 역시 이곳을 기웃거리다가 몇 상품을 비싸게 구입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 온 물건이 좀체 쓰기가 어렵거니와, 학문적으로 가사(假死) 상태에 이르게 합니다. 영 내 몸에 맞지가 않을뿐더러, 약은 수를 써서 공부를 하려 해서입니다.
그래 이런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제 고향엔 잎이 떨어진 버드나무만 있습니다.>

여요(餘姚) 출신 선생들은 오 지방에서 훈장 노릇을 하느라, 이른 봄에 떠나 섣달이 되어서야 고향에 돌아왔답니다. 그러다 보니 고향의 풍물은 오히려 잘 알지 못하였겠지요.

한 여요선생이 훈장질을 다니다 잎이 푸른 버들을 보았습니다. 그래 주인에게 고향에 가 심으려 하니 한 가지만 꺾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수양버들이었지요.


그래 주인이 “이것은 아주 흔한 종자로 없는 곳이 없을 텐데요. 선생 고향에만 없을 리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여요선생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무슨 말씀을 제 고향엔 잎이 떨어진 버드나무만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명대(明代)의 소화집(笑話集)인《종리호로(鐘離葫蘆)》<여요선생(餘姚先生)>에 보입니다. 남을 가르치는 훈장으로 이른 봄에 떠나 겨울에 돌아오니 제 고향의 푸른 버들잎을 못 본 것이지요. '여요'는 중국 절강성(浙江省) 여요(餘姚)지방으로 왕수인(王守仁), 구양순(歐陽詢) 등 유명한 학자가 많이 난 곳입니다. 그래서인지 여요 지방 사람들은 훈장이 많았답니다. 허나, 훈장 노릇을 할지언정 그야말로 방안풍수요, 촌학구(村學究)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 ‘정신’, 제 ‘문화’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박래품(특히 서양)만 고집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이들이 바로 삼류겠지요. 쇼펜하우어의 저 독설이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조선중화(朝鮮中華)’라고도 하였습니다. 조선이 문화의 중심이란 뜻이지요. ‘조선사람이기에 조선시를 쓴다’는 다산의 선언입니다.
다산 선생은 ‘나는 천성적으로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쓴 시들은 모두 조국 조선을 위한 시였습니다. 다산은 글을 쓸 때, 고사를 잘 사용하라고 하였지만, 그가 말한 고사는 《삼국사기》 ․《고려사》 ․《국조보감》 ․《징비록》 ․《연려실기술》등 우리 자료였지 중국의 문헌도 아니었습니다. 다산 선생의 시에 보이는 보릿고개를 맥령(麥嶺)이라 한다든지, 높새바람을 고조풍(高鳥風), 마파람을 마아풍(馬兒風), 새색시를 아가(兒哥)라 차음 사용한 것도, ‘조선시 정신’으로 한자를 우리말화 시켜버린 소산이지요. 2400여 수나 되는 다산 선생의 시는 모두 이 ‘조선시 정신’입니다. 다산 선생의 <늙은이의 한 가지 통쾌하고 기쁜 일(老人一快事)>이란 아래 시 두 구를 곰곰 음미해 보십시오.

나는 누구인가. 조선사람이다. 我是朝鮮人(아시조선인)
달갑게 조선의 시를 짓겠노라. 甘作朝鮮詩(감작조선시)

*우리 지식인들의 독점적 권위를 부여하는 ‘논문’을 서양문화의 수입으로 여기고 자생적 글쓰기를 주장하는 전주 한일신학대학교 김영민 교수의 글도 있다(김영민,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 민음사, 199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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