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뭐 그렇게 정치에 관심이 많나?

곽우록을 쓰는 이유

by 휴헌 간호윤



“거, 뭐 그렇게 정치에 관심이 많나?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


엊그제 지인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요즈음 내가 정치적인 발언(?)을 많이(?) 해서 그런가 보다.
이익(李瀷,1681(숙종 7)∼1763(영조 39) 선생의 『곽우록(藿憂錄)』이라는 책이 있다. 곽식자가 육식자에게 쓴 책이다. ‘콩 곽(藿)’은 백성이요, ‘근심 우(憂)’는 걱정이니 책 제목은 ‘백성의 걱정’이라는 뜻이다. 즉 ‘곽식자’는 콩잎을 먹고사는 백성으로 '육식자'인 고기 반찬을 먹고사는 관리에 빗댄 말이다.

이익이 『곽우록(藿憂錄)』을 쓴 취지는 ‘간뇌도지(肝腦塗地)’ 넉 자로 정의되니 이렇다.

“육식자(肉食者:고기를 먹는 관리)가 묘당(廟堂:의정부로 지금은 정부)에서 하루아침이라도 계획을 잘못하면 곽식자(藿食者:콩(잎)을 먹는 백성)의 간(肝)과 뇌(腦)가 들판에 흩어지는 일이 어찌 없겠습니까?”

'간뇌도지'는 조조(祖朝)라는 백성이 진 헌공(晉獻公)에게 글을 올려 나라 다스리는 계책을 듣기를 요청하자, 헌공이 “고기 먹는 자가 이미 다 염려하고 있는데, 콩잎 먹는 자가 정사에 참견할 것이 뭐 있느냐. [肉食者謀之 藿食者何有]”라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그렇다면 끝은 어떻게 되었을까? 진 헌공은 조조를 스승으로 삼는다.(『설원』 ‘선설’항)


이익 선생은 ‘관리가 잘못하면 간(肝)과 뇌수(腦髓)가 들판에 흩어져 죽는 것은 백성’이라며, 그러니 ‘목숨이 달린 일에 어떻게 간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묻는다. 선생은 백성들의 간과 뇌수가 들판에 흩어져 죽는다는 ‘간뇌도지(肝腦塗地)’라는 말을 끌어왔다. 참혹한 죽음을 형상화한 말이다.


이 말을 하는 선생의 심정을 구차하게 몇 자 글줄로 설명할 필요 없다. 선생 자신은 곽식자인 천한 백성이기에 국가의 문제를 논할 자격이 없지만, 곽식자들인 당신들이 나라 정책을 잘못하니 우리 백성들이 이렇게 간뇌도지하지 않느냐? 는 항변이다. 그러니 『곽우록』을 지을 수밖에 없다는 선생의 절규요 격정의 토로이다.


이왕 나온 말이니 다산 선생 말씀도 몇 자 덧붙인다.

다산이 36살 되던 해, 황해도 곡산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곡산은 황해도와 평안도, 함경도가 접하는 지역이다. 민란의 원인은 이전 군수의 가혹한 세금 징수였다. 7천여 주민들 중 1천여 명이 민란을 일으켜 관가를 습격하였다. 주모자는 이계심(李啓心)이었다. 조정에서 즉시 이계심을 잡으려 하였지만 도무지 잡을 수가 없었다.

조정에선 다산을 신임군수로 임명하여 민란을 수습하고자 했다. 다산이 고을로 부임하는 도중 이계심이 제 발로 걸어 나와 12 항목의 탄원서를 제출하였다.


다산 선생이 탄원서를 읽어보고 하나 같이 타당하다 판단내리고 이계심을 그 자리에서 죄가 없다고 방면한다. 그때 방면한 이유를 다산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관리가 밝지 못한 까닭은 백성들이 제 한 몸 건사하는 데만 열중할 뿐 그 고통으로 관에 항의하지 않기 때문이다.(官所以不明者 民工於謨身 不以瘼犯官也)”

다산은 ‘이계심이 제 한 몸 건사하는 데 열심이었던 게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관에 항의하며 관의 어두움을 밝히고 그 어리석음을 깨우치도록 했으니 그것이 어찌 죄라 할 수 있는가!’였다.

바로 ‘범관(犯官)’이란 말이다. ‘범관’은 ‘관청을 범한다’는 말인데, 백성이 그 고통으로써 관청에 항의해야만 비로소 관이 밝아지고 현명해진다는 생각이다. 백성들이 정치에 관심 가져야 함을 다산은 저렇게 말한 것이다.

다산의 민본주의가 저 문장 속에 그대로 드러난다. 다산은 또 『목민심서』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고 있는데, 이 역시 백성이 근본임을 되새기게 한다.


“지극히 천해 어디 호소할 데도 없는 사람이 소민(백성)이다. 높고 무겁기가 산과 같은 자도 역시 백성이다. 윗사람이 아무리 존귀하고 높더라도 백성을 이고(떠받들고) 다툰다면 굴복시키지 못할 것이 뭐가 있겠나(至賤無告者 小民也 隆重如山者 亦小民也 上司雖尊 戴民以爭 鮮不屈焉)”


다산은 또 ‘戴民以爭(대민이쟁)’이란 말도 했다. ‘대민이쟁’은 백성을 떠받들고 윗사람과 다투라는 말이다.


저 시절은 왕권 국가 시절이다. 자칫 왕의 권력에 대드는 글줄을 쓴다는 것은 목숨 줄을 여러 개 달고 있지 않다면 할 수 없는 매우 비효율적인 행위였다. 그런데도 일개 백성(더욱이 선생은 귀양 중이었다)이 저러한 책을 쓰고 외쳤다.


나는 '곽우록'을 쓰고 싶지 않다. 하지만 대통령을 하겠다는 이는 언론 앞에서 삿대질을 하고 검찰은 잡으라는 범법자보다는 권력에 관심 있고 언론은 대중보다는 광고료에 더 관심 있다. 그러니 백성은 오로지 돈을 전지전능한 신으로 여기고 교육은 코흘리기 때부터 상호 경쟁만 부추긴다. 오죽하면 OECD 국가 중 자살률 부동의 1위를 굳건히 지키겠는가.


작금의 이 사태를 보고서 어찌 '곽우록'을 아니 쓰겠는가. 수많은 곽우록이 쓰이고 말해져야 한다. 곽우록을 쓰고 말하는 것은 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백성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이다.

이전 04화지식백화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