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글을 쓰시오?

나는 향원은 아니 되겠다.

by 휴헌 간호윤

재주를 쓰지 못하여 마음이 간질간질(기양: 技癢)


‘발싸심’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을 하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고 들먹거리며 애를 쓰는 짓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정신의학적으로 창작행위를 일종의 심리적 자위행위自慰行爲라 하는데 기양이 바로 이러한 용어이다. 소설의 급소로 전승력 또한 대단한 비평어였다. 이 고소설비평어는 고소설을 저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적 이해를 하는데 상당한 가치를 부여한다.


하버드 대학 교수로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인 에드워드 윌슨(Edward osborne wilson)의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란 책이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 행동의 유전적인 중요성을 중시했다. 요점은 이렇다.

“닭은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생산하기 위하여 잠시 만들어 낸 매개체에 불과하다.”

DNA야 말로 진정한 생명의 주체라는 말이다. 만약 소설 역사 또한 사회생물학으로 본다면 ‘기양’이 바로 DNA, 즉 소설의 주체가 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진정 소설이 욕망의 구현체具現体라면 기양은 바로 그러한 욕망이다.


<중문대사전中文大辭典>에 보이는 기양의 정의를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인간에게는 긁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가려움증과 같이 표현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기술 내지 재주가 있는 바, 이 쓰지 않고 견딜 수 없는 표현욕表現慾을 기양이라고 한다(伎癢者 謂人有技藝 不能自認 如人之癢也 伎癢 謂懷伎欲求表現也).”

풀이하자면, 심성적 동기로서 단순한 표현욕이다.


뜬금없는 질문이다.

왜 글을 쓰시오?(Why do you write literature?)

왜냐하면 기양技癢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지요.(Burning to show talent Because Ki-yang is there.)


기양을 만나고픈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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