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려(金鑢, 1766-1822 [21?], 조선 후기의 실학자 겸 작가) 선생은 이옥과 함께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천지만물을 글로 표현해내는 것을 문학적 사명으로 삼았다. 인간을 다룰 때라도 남들이 돌보지 않는 소외된 인간에 주목하고, 세계를 다루더라도 관념적 자연이 아니라 구체적 사물에 주목했다. 인정물태(人情物態)에 대한 곡진한 묘사는 선생이 추구한 글쓰기의 요체였다.
때론 가장 보편적인 곳에 가장 진실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당대 한문을 쓰는 지식인들 대다수는 성리학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성리학적 세계야말로 인간 최고의 학문이요, 진실이라 여겼다. 인정물태는 이 성리학적 세계 밖에 존재하는 그저 그러한 일상이었다.
선생이 다룬 인물은 성리학 세계 밖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일상을 살았다. 그가 쓴 글의 중심인물은 포수, 의원, 거지, 도둑, 장사꾼, 병졸, 기생과 같은 미천한 삶들이었다. 선생의 붓끝은 개구리, 벌레, 물고기, 봉선화, 거미, 벼룩, 나비, 나귀와 같은 미물까지도 써냈다.
이런 자질구레한 것을 소재로 삼아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선생은 소재 면에서 이미 탈중심적인 글쓰기를 지향하였다. 이는 개별성과 맥이 통한다. 그래서인가 「제도화 유수관소고권후」(題桃花流水館小稿卷後)에서 선생은 벗 이옥의 문체를 이렇게 꽃 감상으로 비평하였다.
글이란 마치 꽃을 감상하는 것과 같다. 모란·작약이 부하고 풍성한 아름다움이 있다 하여 패랭이꽃·수구화(繡毬花, 수국)를 내버리며, 국화와 매화가 꾸밈이 없는 담담함이 있다 하여 붉은 복사꽃·붉은 살구꽃을 미 워한다면 어찌 꽃을 안다고 말하겠는가?(文如看花 以牡丹芍藥之富艶而棄竹繡毬 以秋菊冬梅之枯淡而惡緋桃紅杏 是可謂知花者乎)
각각의 글 나름대로 다양성을 옹호하였다. 글을 꽃에 비유하여 설명하는 것이 여간 흥미롭지 않다. 그러니 여담 한 마디 하자. 이 글을 소태 같은 글, 설겅거리는 글이라, 건건한 국물만 많고 건더기는 없는 멀건 월천(越川)국이라고 타박하지만 마시라. 잘만 읽어보면 가래떡을 어슷썰기로 맵시 있게 썰어, 맑은 장국에 넣고 끓여내서는, 빨간 실고추, 알고명, 야린 쇠고기 살짝 얹은 위에, 후춧가루 살살 뿌려 낸 떡국 같은 글이 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선생의 글은 중세사회의 유교중심주의를 벗어났기에 당시의 글과는 주제, 격식, 문체, 어휘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백성들의 일상생활을 그려낸 인간적인 글이었고 우리네 주변에 늘 있는 생생한 사물을 돌아보는 생태적인 글이었다. 선생의 고민거리는 자신이 선택한 소재를 얼마나 진실하게 잘 그려낼 수 있는지였다. 그리고 이게 바로 선생 글쓰기로서 실학사상이요, 우리가 선생 글에 공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