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란 무엇인가?
<글쓰기는 살아있더라>
어제, 한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에게 글쓰기는 뭐지요?”
난 이렇게 대답했다.
“글쓰기는 살아있더라. 나에게 글쓰기는 그래 애인이지. 늘 나를 지켜주니까. 모두가 나를 떠나도 글쓰기는 나를 떠나가지 않아. ---”
몰랐었다. 글쓰기는 생물(生物)이었다. 생물은 동물과 식물만 있는 게 아니었다. 글쓰기는 생생히 살아있는 활물(活物)이었다. 이제와 보니 글쓰기는 벗이요, 애인이요, 신이었다.
운치 있게 비 오는 날 저녁 벗과 술 한 잔도, 다음 날이면 서로 제 갈 길로 간다. 제 아무리 사랑하는 여인도 헤어지면 그뿐이다. 신을 섬기려 해도 신은 신의 자식들에게만 품을 허락한다.
글쓰기는 그렇지 않다. 내가 몇 날 며칠 서운케 해도 나를 버리지 않는다. 세상사 안간힘으로 살아내다 볼모로 잡혀 찌든 몸으로 열없이 다가가도 따뜻하게 맞아준다. 이래저래 한시름인 삶, 벙어리 냉가슴 앓듯 가슴앓이라도 할라치면 내 할머니 손주 가슴 정성으로 쓸어주듯 해원(解冤)의 약손을 내민다. 그렇게 언제, 어디서든, 내가 저를 생각하면 득달같이 달려와 수호신처럼 구해준다. 글쓰기에는 그렇게 내 삶을 거머당기는 맑은 힘이 있다.
물론 가끔은 쌩하고 여인네 치맛자락 훔치듯 암팡진 모습을 보일 때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럴 때면 쥐 죽은 듯이 글쓰기만 바라보고 있으면 된다. 그러면 도타운 눈매로 나를 쳐다보고 서너 줄 글줄을 누에 실 뽑듯 해 준다. 순간, 내 쪼들리는 삶은 가멸차고 내 흐릿한 눈빛은 한줄기 서광을 내뿜고 낙타 등 같이 굽은 허리는 쭉 호기롭게 펴져 당당함과 도도함이 흐른다. 이러고 보니 내 살아감도 글쓰기의 은혜요, 내 기쁨도 글쓰기의 은혜이다.
글과 나는 아마 전생에 부부였는지 모르겠다. 그랬으면 꽤 오순도순 다정하였으리라. 글과 나는 전생에 친구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랬으면 아마 티격태격 싸움깨나 하였으리라.
난 글쓰기가 있어 어제를 살았고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 것이다. 글쓰기는 늘 내 곁에 있으니 모두가 다 글감이다. 사물도 글감이요, 사건도 글감이다. 글쓰기는 그렇게 생생하게 살아있는 글감들 속에 있다. 난 그저 주제만 주으면 된다.
오늘, 탁료계변(濁醪溪邊)에 은린어(銀鱗魚) 안주 없어도, 늘 이태준 선생이 말한 “찬찬하고 짜르르한 맛, 실로 치면 명주실”같은 글은 못될지라도, 내 글방 휴휴헌에서 글쓰기와 어울렁 더울렁 하니 참 진미가 여기 있다. 생각사록 미친 흥이 그윽이 절로 난다. 이 또한 은혜 중, 그중 나은 글쓰기의 은혜 아니겠는가.
글쓰기는 이렇게 살아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