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향원이 아니 되련다
유희 선생은 1819년에 지은 「희보본초(戱補本艸二條)」 제2조와 1831년 9월에 지은 「문책(文責)」 따위 글에서 글 쓰는 것에 대해 자조하면서도 자부심을 내비쳤다.
「희보본초」는 ‘장난스레 본초경에 보충을 한다’는 뜻으로 본초학의 글 형식을 빌려 통보(通寶,돈)와 문장의 쓰임에 대해 논한 글이다. 제2조에서는 문장이 본래 입언(立言)이란 이름을 지니고 있고 그 맛은 맵고 쓰다고 서술함으로써 문장의 본질을 규정하였다. 「희보본초」 제2조의 해설부는 이렇다.
"문장은 본래 이름이 입언(立言)이다. 맛은 맵고 쓰며 기운은 차다. 양기 가운데 양기로 독이 없지만 조금 독이 있다고도 하였다. 심경(心經)으로 들어가고 또 간담경(肝膽經)이 된다. 약으로 먹으면 주로 장부의 온갖 병을 치료할 수 있는데 또한 어린아이를 기르고 부인을 조절할 수 있다. 일체의 탁한 기운을 치료하여 가슴에 가득하면 마음을 활짝 열어, 귀와 눈을 아주 밝게 하고 지혜를 더하고 담을 장대하게 한다. 기품과 인격을 길러주고 음성을 윤택하게 하며 더러운 때를 없애고 신명을 통하게 한다. 그 가운데 좋은 것은 조화롭게 하고 천지를 편안하게 하며 온갖 잡무를 안정되게 하여 마침내 만물을 낳는 공이 곳곳마다 있게 된다.
본디 종자가 없는데 한때에 감응하여 청수한 기운이 명산대천 사이에서 생겨난다. 채취하는데 정해진 시간이 없고 조제하는데 방법이 일정치 않다. 대개 대부분 진부하고 오래된 조박(糟粕, 옛 서적과 문장)에서 취하여 삼키고 씹고 하기를 여러 번에 걸쳐 한다. 사용할 때는 소나무 그을음[먹]과 토끼털[붓]에 넣고 닥나무의 흰 껍질로 완성한다. 혹은 네 글자를 한 단으로 하되, 다섯 글자나 일곱 글자도 있다. 혹은 많고 적음에 구애받지 않고 길게 끌어서 크게 만들기도 한다. 혹은 두 단을 서로 같게 하는데, 그것을 하나의 대구라 한다. 여러 종류들이 그때그때 만들 때마다 다른데 각각 명칭이 있으니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다. 이것을 복용하는 사람들은 그 소리를 취하기도 하고 그 빛깔을 택하기도 하며, 혹은 그 맛만 취하기도 하고 혹은 그 성질까지 아울러 취하기도 하며 혹은 그 뼈만 전적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혹은 그 마음까지 아울러 쓰기도 한다.
복용을 다 하고 나면 문득 배와 대추나무[목판]에 얹혀서 후대 사람이 또 그것을 삼키고 씹도록 갖추어 두어 비록 연한이 오래되어 좀이 생기더라도 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약은 때때로 귀하기도 하지만 또 때때로 천하기도 하다. 귀하게 되면 무소뿔, 코끼리 상아, 구슬, 옥이라도 이것과 값을 따질 수 없지만, 천하게 되면 한 시대의 박대를 당하고 온 사람의 짓밟힘을 입으니, 그 치욕스러운 꼴을 당하는 것이 도리어 견줄 데가 없을 정도다."
선생은 『본초강목』의 서술법을 이용하여 ‘문장’을 여러 가지 약재를 섞어 조제한 약으로 취급하였다. 우선 선생이 문장의 본래 이름이 ‘입언’이라는 것부터 본다.
『춘추좌전』 양공 24년 조에 전하는 이야기다. 기원전 500여 년쯤 춘추시대 때, 노나라의 숙손표와 진나라의 범선자가 죽어서도 오래 남는 불후(不朽, 세월이 흘러도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것)가 무엇인가를 놓고 한바탕 설전이 벌어졌다.
범선자는 선조가 대대로 귀족임을 들었다.
"집안이 대를 이어 현달하고 제사가 끊이지 않은 게 불후이지요."
그러자 숙손표는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말했다.
"벼슬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야 훌륭한 일이지만 불후라고 할 수 없지요. 덕을 쌓는 ‘입덕(立德)’, 공을 세우는 ‘입공(立功)’, 문장을 남기는 ‘입언(立言)’ 세 가지가 ‘삼불후(三不朽)’가 아니겠는지요"
죽어서도 오래도록 남는 덕과 공, 문장을 남기는 일은 쉽지 않다. 그야말로 부모로부터 받은 천혜의 재주에 시대의 운수 또한 받쳐줘야 한다. 순수한 개인의 노력만으로 솔직히 어려운 일이다.
유희 선생의 위 글은 삼불후 중, 입언에 대한 서술이다. 입언은 다름 아닌 글쓰기이다. 선생은 이 글쓰기(입언)가 귀하게도 천하게 된다고 한다. 귀하게 되는 것이야 언급할 바 없지만 천하게 되면 ‘시대의 박대를 당하고 온 사람의 짓밟힘을 입는다며 그 치욕스러운 꼴을 당하는 게 견줄 데가 없다.’고 하였다. 문장 밖의 선생의 삶과 문맥의 전후로 미루어 볼 때 선생의 글은 선생의 자조와 자부심과 상관없이 누구 하나 보아주지 않는 천한 물건이 되어버렸다. 가만 생각하니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앞 문장과 이하동문인 듯싶다. 그래도 쓰고 또 써 문장을 복용하는 이유는 '탁한 기운이 조금은 덜어지지 않으려나'하는 마음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