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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헌 간호윤 Mar 02. 2023

<3.1절 기념사는 망발(妄發)이다>

망발이란, 말이나 행동을 잘못하여 자신이나 조상을 욕되게 하는 그런 언행


<3.1절 기념사는 망발(妄發)이다>  * 본래 '3.1절 경축사'라하여야 옳다. 하지만 '경축사'는 커녕, '기념사'라하기도 후손으로서 너무 부끄럽다.


있을 수 없는 ‘망발(妄發)’이다. 망발이란 ‘말이나 행동을 잘못하여 자신이나 조상을 욕되게 하는 그런 언행’이다.


3월 2일, 오늘 개강이다. 이 시간이면 수업에 들어가기 전, 이런저런 준비를 하건만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어제 3.1절 기념사를 듣고는 눈과 귀를 의심하였다. 지금까지 이런 기념사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 나라 대통령 기념사이기에 소름이 돋고 분노가 치민다.



① 3.1절은 ‘세계만방에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알린 쾌거의 날’이다. 과거를 반성하는 날이 아니다. 망발의 기념사는 이랬다



“그로부터 104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합니다.…우리가 변화하는 세계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불행이 반복될 것이 자명합니다.”


이날 우리 2000만 동포는 일본의 식민통치에 비폭력 저항운동을 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제암리 교회 방화’ 등 폭압적으로 우리의 만세운동을 진압했다. 박은식의 『한국 독립운동 지혈사』에 의하면 3.1 운동에 참여한 시위 인원은 약 200여만 명이다. 이중, 7,509명이 사망, 15,850명이 부상, 45,306명이 체포되었으며, 헐리고 불탄 민가가 715호, 교회가 47개소, 학교가 2개소였다.


이러한 한 날, 이 나라 대통령의 기념사가 어떻게 저러한가. ‘우리 선조가 변화하는 세계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여 나라를 빼앗겼다는 말이다. 이 웬 망발로 조상을 모욕하는 식민사관인가. 영국이, 프랑스가 못나서, 유럽이 못나서, 유태인이 어리석어 히틀러의 만행이 일어났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으로 빚어진 것을 왜 우리에게 책임을 전가하나. 이 논리대로라면 학교 폭력도 당한 쪽에 문제 있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3.1 운동 만세를 부른 날, 우리 조상들을 욕 먹이고 빈정거리는 망발 기념사다.



② 일본 수상, 혹은 미국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인 줄 알았다.


“3.1운동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특히, 복합 위기와 심각한 북핵 위협 등 안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미‧일 3자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이 또한 구구절절 궤변(詭辯)이다. ‘일본과 보편적 가치를 공유한 파트너’라 한다. 묻는다. 일본이 언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했는가. 정의, 인도, 예의, 존중, 그리고 평화, 이런 것이 보편적 가치다. 일본은 한반도 침략과 식민지배, 동아시아에 대한 침탈과 무고한 백성들의 삶을 빼앗고 유린한 것에 대한 진정한 사과조차 없었다. 독일을 보라. 2015년 1월 27일 독일 메르켈 총리는 '책임은 영원하다'며 46년째 머리 숙여 사과하였다. 일본이 언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였다는 말인가. 


뜬금없는 ‘북핵’도 그렇다. 이 땅의 2000만 민중이 맨손을 불끈 쥐고 일어나 남녀노소 태극기를 들고 조선의 독립과 나아가 항구적인 동양 평화, 더 나아가 세계 인류 평화와 행복을 위해 3.1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장쾌하고 경사스러운 날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경축일(慶祝日)로 삼았다. 1948년 이래 헌법 전문에서 밝히고 있듯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건국이 처음 시작된 출발 날이다. 따라서 삼일절은 국가 경축일이기에 태극기도 깃봉 사이에 틈을 두지 않고 높게 달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가. (조의를 뜻하면 반기(半旗)로 내려 단다.)  ‘북핵’을 운운할 장소와 시간은 얼마든 많다. 


이제는 아예 ‘한‧미‧일 3자 협력’까지 등장한다.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는지 역사관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식민지가 되었는지 전혀 모르는 수준이다. 1905년 7월 29일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특사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를 필리핀과 일본에 파견한다. 이 태프트는 일본에 들러 가쓰라 다로(桂太郞) 총리를 만난다. 이 회담에서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조선의 이권을 나눠 갖기로 밀약을 맺는다.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러일전쟁 때, “조선은 자치능력이 없으므로 일본이 조선을 질서 있게 통치한다면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이라고도 하였다. 이후 일본제국주의는 이 나라를 1905년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 1907년 정미 7조약을 통해 입법권과 인사권, 행정권을 장악, 1909년 기유각서로 사법권까지 장악해 중앙 통치권력을 무력화했다. 그렇게 우리는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를 빼앗기게 된 것이다. 이때에 가쓰라 다로는 두 번째 총리직을 맡고 있었다.


③ 지나치게 짧다. 글이 짧다고 뜻을 못 전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쓰고 싶은 마음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쓰고 싶지 않아 짧게 쓴 것이라 볼밖에 없다. 저런 대통령을 후세에 두려 3.1 독립 만세운동을 불렀는지. 그날, 조상들의 함성이 지하에서 울부짖는 듯하다.



어찌 이런 기념사를 한단 말인가.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 하였다. 현재 이 나라 대통령이 과거를 읽지 못하면 우리의 역사는 어디로 가는가?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안타까운 것은 이 나라 주요 언론이다.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 기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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