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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헌 간호윤 Mar 13. 2023

<글쓰기에 대하여>

내용은 읽으나마나한 아롱이다롱이요


<글쓰기에 대하여>





휴헌 간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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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초등학교만 마치더라도 다 글을 읽고 쓰는데 아무 문제없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기에 글을 못 쓴다는 말인가? 왜, 주제는 실종 신고요, 문장은 앞뒤가 묵은 원수처럼 서걱거리고, 내용은 읽으나마나한 아롱이다롱이요, 더욱이 글과 글쓴이가 어쩌면 저리도 데면데면하단 말인가? 그것은 글을 쓰려는 마음 자세부터가 없어서이다.



글을 곰곰 살펴보면 첫째 글재주로 쓴 글, 둘째 글쓰기 기술을 습득하여 쓴 글, 셋째 마음으로 쓴 글이 보인다. 첫째와 둘째는 사실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글쓰기 재주로 문장을 희롱하고, 서론,본론,결론 등 글쓰기 구성 방법에 맞추어 국수기계로 국숫발 뽑듯 하면 된다. 이른바 뽐내는 글발도 있고 구성도 나무랄 데 없으나 마음, 즉 글을 쓰려는 진정성이 없다. 재치 문답과 요설과 재담이 설레발을 치고 경직된 어휘들만이 기계적으로 연결되어있을 뿐이다. 글 치장만 요란한 ‘포로노성 글’과 인간으로서 모양만 갖춘 ‘로보트성 글’은 여기서 나온다. 



짙은 화장으로 치장했으되 마음이 없는 여인을 사랑할 사내가 없듯, 억센 근육과 떡 벌어진 어깨, 근육질 몸매이나 차디찬 심장만이 뛰는 사내를 사랑할 여인도 없다. 잠시 눈길을 주었다가도 겉꾸림을 알아챈 독자는 이내 돌아앉는다. 이런 글들은 대개 허섭스레기가 된다.



글쓰기에서 가장 큰 문제는 셋째이다. 셋째는 재주와 기술이 아닌 마음이다. 이태준 선생은 이제는 글쓰기 정전이 되어버린 『문장강화』에서 “글은 아무리 소품이든 대작이든 마치 개미면 개미, 호랑이면 호랑이처럼, 머리가 있고 꼬리가 있는, 일종의 생명체이기를 요구하는 것이다”라 하였다. 글이 생명체가 되기 위해서는 이 마음이 없으면 안 된다. 눈과 귀로 낚아 온 사물을 마음으로 조리할 줄 아는 글쓰기에 대한 정열, 진정성이 있어야만 글은 생명력을 얻는다. 글쓰기 문제의식, 풀이하여 ‘글은 왜 쓰는가?’ 출발점은 그래서 이 마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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