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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헌 간호윤 Mar 14. 2023

<글쓰기와 독장수>

이 글 써 출판하고

<글쓰기와 독장수>



1. 독장수 셈


옛날에 한 가난한 옹기(독)장수가 있었다. 온종일 달랑 옹기 하나만 팔았다. 마침 길에서 비를 만나 옹기 속에 들어앉아 계획해 보았다. ‘옹기 한 개를 팔아서 두 개로, 두 개를 팔아서 세 개로, 세 개를 팔아서 …’ “와! 난 부자다!” 독장수는 기뻐서 춤을 추다가 옹기가 다 깨졌다. 


독장수는 헛된 셈을 하다가 독을 다 깨뜨렸다. 헛수고로 애만 쓸 때 이 말로 비유한다.



<글쓰기와 독장수 셈>


책상에 온종일,

이 글 써 출판하고,

다른 글 써 출판하고,

또 다른 글 써 출판하고,

이키나! ‘독장수 셈’을 하고 있다.


언젠가 법정스님 숨결이 깃든 길상사에서 본 청마 유치환의 시가 떠오른다. 법정스님 애송시란다.



〈심산(深山,깊은 살골)〉


심심(深深) 산골에는

산울림 영감이

바위에 앉아

나같이 이나 잡고

홀로 살더라.


혹 산울림 영감이나 만나려나….

2. 타증불고

또 다른 독장수 이야기다. 타증불고(墮甑不顧)란 말이 있다. ‘떨어뜨린 시루는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후한(後漢) 시절, 젊은 독장수가 곽태(郭泰)와 같은 방향으로 길을 걸었다. 얼마쯤 가다 젊은 독장수가 비틀하고 지게에서 독이 떨어져 깨졌다. 독장수는 한번 돌아보고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가던 길을 간다. 놀란 곽태가 독장수에게 독이 깨졌다고 말했지만 독장수는 태연했다. 곽태가 독장수에게 왜 그러냐고 물으니 대답이 이렇다.


“시루가 이미 깨졌는데 돌아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곽태는 학문이 대단하고 제자가 수천 명에 달한 이였다. 독장수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10년간 글을 가르쳤다. 이 독장수가 후일 삼공(三公)의 지위에 오른 맹민(孟敏)이다. 

같은 독장수와 시루장수 이야기다. 모두 독과 시루가 깨졌지만 결과는 달렸다. 내게 글쓰기는 독장수 셈이다. 그래도 하는 이유는 산울림 영감을 만날지 몰라서다. 누가 아나 곽태를 만날지도 모른다. 오늘도 끙끙 글쓰기를 지게에 한 짐 짊어진다. 또 한번의 독장수 셈을 하며. 


‘독장수 이야기’는 조재삼(趙在三, 1808~1866) 『송남잡지(松南雜識)』에, ‘맹민 이야기’는 『후한서 곽태열전』 등 여러 곳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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