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incheonnewspaper.com/news/articleView.html?idxno=208793
'임꺽정'을 가르치고 읽어 볼 이유
교육부에서 “임꺽정(林巨正)을 가르치지 마라” 한다. 이 무슨 궤변인가! 이유인 즉, '임꺽정'이 ‘공정성’을 떨어뜨려서란다.
'임꺽정'은 1562년 명종 17년 1월, 관군에게 죽임을 당한 실존인물 ‘임꺽정’을 소설화한 작품이다. 이 소설을 쓴 이는 벽초(碧初) 홍명희(洪命憙,1888~1968) 선생이다. 벽초 선생은 춘원 이광수, 육당 최남선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조선의 3대 천재’ 중 한 분으로 유일하게 변절하지 않은 독립투사요, 작가이다.
선생은 '삼천리'1호(1929, 27쪽)에서 '임꺽정'을 쓴 이유를 “임꺽정이란 옛날 봉건사회에서 가장 학대받던 백정계급의 한 인물이 아닙니까? 그가 가슴에 차 넘치는 해방의 불길을 품고 그때 사회에 대하여 반기를 든 것만 하여도 얼마나 장한 쾌거였습니까?…백정들의 단합을 꾀한 뒤 자기가 앞장서서 통쾌하게 의적 모양으로 활약한 것이 임꺽정이었습니다. 그러이러한 인물은 현대에 재현시켜도 능히 용납할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또 '삼천리'9호(1933, 665쪽)에서도 “조선문학이라 하면 예전 것은 거지반 지나(支那,중국)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사건이나 담기어진 정조들이 우리와 유리된 점이 많았고. 그리고 최근의 문학은 또 구미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양취(洋臭,서양 취향)가 있는 터인데 임꺽정만은 사건이나 인물이나 묘사로나 정조로나 모두 남에게서는 옷 한 벌 빌어 입지 않고 순조선 것으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조선정조에 일관된 작품’ 이것이 나의 목표였습니다.”
이는 선생이 독립운동의 일환으로서, 민족운동을 소설로 구현한 작품이란 점을 분명히 해준다. 따라서 '임꺽정'은 우리 민족(특히 핍박 받는 민중)의 ‘공정한 사회 건설을 위한 항쟁을 담아낸 민족문학’이다.
'메밀꽃 필 무렵' 작가 이효석(李孝石, 1907~1942)은 '임꺽정'에 이런 찬사를 보냈다. “이제 외람히 그 문학적 가치를 운위할 수는 없으나 큰 규모 속에 담은 한 시대 생활의 세밀한 기록이요, 민속적 재료의 집대성이요, 조선 어휘의 일대 어해(語海, 언어의 바다)를 이룬 점에서도 족히 조선문학의 한 큰 전적이 되리라 믿습니다. 문학권 안팎의 사람이 모두 이 책에서 얻음이 많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런 역사성을 지닌 작품을 2023년에 ‘평화 통일 교육에 공정성이 떨어진다’고 가르치지 말란다. 아마도 벽초 선생 고향이 충북 괴산인데 월북하여 그런 듯하다. 하지만 월북 작가는 이미 35년 전인 1988년에 해금되었다. 더욱이 '임꺽정'은 선생이 일제하 감옥에서도 연재한 글이다. 혹여 이 정부의 정책이 공공적이지 못하기에 '임꺽정'의 항쟁정신이 옮겨 붙을까 두려워 그런 것은 아닐까?
어쩌다 ‘쇠 멱미레 같은 이’를 뽑아 놓으니 나라꼴이 갈수록 수미산이다. 국수 못하는 년이 피나무 안반만 나무란다고 핑계는 모조리 전 정부 탓이요, 넋이야 신이야 퍼붓는 사설마다 물 덤벙 술 덤벙이고 대중없이 말을 불쑥불쑥한다. 이렇다보니 들을 이 짐작이건만 썩은 고기에 쇠파리 모이 듯, 주위에 모인 이들도 하는 짓이 꼭 쇠껍데기를 쓰고 도리질하는 격이다.
대통령 한 마디에 교육과정평가원장을 잘랐다. 명분은 ‘킬러 문항 잡아 공정 수능’ 운운한다. 40만 수험생을 혼수상태에 빠뜨려 놓은 교육부장관이란 작자는 “입시에 대해 수도 없이 연구하고 깊이 있게 고민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제가 진짜 많이 배우는 상황”이라고 대통령을 추켜세운다.
그 행태가 입 안의 혀요, 상전 앞의 종이다. 소금섬을 물로 끌어라 해도 끌 위인이다. 도대체 이런 쥐 밑살만한 알량한 깜냥으로 어떻게 한 나라 교육을 책임진단 말인가.
그런데도 요망한 만수받이들의 흰소리가 하늘에 방망이 달자고 나설 태세다. 용산에서 섬긴다는 용한 신끼 있다는 이가 “수능이 없어진다”며 수염을 쓰다듬는 장면도 보인다.
2023년 6월, 이 땅에 진정 공정한 사회를 실현하려면 더욱 '임꺽정'을 가르치고 읽어야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