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 즈음에
제 아무리 코로나 19가 맹위를 떨쳐도 세월은 흐른다. 계절은 어느새 가을로 접어들고 긴긴 폭염 속 여름방학을 지나 개강도 하였다. 이 맘 때면 늘 마음이 불안하다. ‘개강 즈음에’라는 글을 쓰려다 보니 이미 써 놓은 글이 있다. 지금 내가 쓰려던 글과 빈틈없이 들어맞는다. 더하고 뺄 게 전혀 없다.
그래도 줌수업으로 학기를 시작하는 첫날, 올려다본 하늘은 아침부터 참 청명하다.
<교수평가와 선생, 그리고 글쓰기 사이>
“여기 다시 태어나도 선생과 글쓰기를 하고 싶은 자 잠들다.”
내 묘비명으로 생각해둔 글귀다. 내 삶의 의미, 마침표는 저렇게 찍었으면 한다.
허나 선생으로 산다는 것, 시간이 흐를수록 참 고역이다. ‘교수평가’는 더욱 그렇다. 누구에게 평가받는다는 것은. (받는 자나 하는 자나 고역은 매일반이 아닐까.)언젠가부터 교수평가를 보지 않는다. 고역을 넘어 고통이 따라서다. 난 나름 최선을 다해 산다고 생각한다. 수업도 마라톤도 내 깜냥이 미치는 한까지 열심히 하려 한다.
오늘 개학을 앞두고 전 학기 교수평가를 몰래 들춰보았다. 내심 내 수업에 내가 준 학점은 ‘A-’ 정도였다. 우선 내가 최선을 다했고, 글쓰기에서 가장 필요한 나를 강조했고, 세상 보는 눈과 책 읽는 마음도 알려줬다,--- 등. 그러나 아예 처음부터 계산법이 잘못되었다.
학생들이 내게 준 학점은 ‘B-’에서 ‘c+’ 그 어디쯤인 듯하다. 더욱이 글쓰기 수업이다. 분명 학생들과 나와 관계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문제점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 이유를 잘 모른다는 점이다.
학생들과 수업하기 점점 더 어렵다는 생각이다. 생각해보니 분명 나이 먹는 세상살이건만, 살았고 살아내는 것이 어제오늘이 아니건만, 아직도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도 모르는 것처럼.
‘어떻게 수업을 해야 하나?’
오늘, 교수평가와 선생, 그리고 글쓰기 사이의 ‘화두’이다. 참 학생들 마주하기가 고역에 고통이더니, 이제는 두렵다. 선생, 참 하기 어렵다. 묘비명은 진작부터 쓰레기통에 쳐 박혔다.
2017년 8월 28일 개강 첫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