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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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19
대립이 극심한 사회, 원효의 화쟁사상을 생각해 본다
엊그제 ‘원효대사(元曉大師,617~686)의 오도처’에 대한 논문을 마무리 지었다. 한여름 내내 잡고 있던 화두가 ‘원효대사’였기에, 생각은 자연 그의 화쟁사상(和諍思想)으로 작금의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 사회 갈등 양상은 꽤나 복잡하다. 정치적 진영의 대립은 극한에 치닫고, 노동과 자본의 갈등, 세대 간 불화, 젠더 논쟁까지 우리 일상은 서로 다른 주장과 관점이 충돌하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의견의 차이는 민주사회에서 당연한 일이라지만, 문제는 이 의견의 차이가 증오와 혐오로까지 번져 대한민국 자체를 흔든다는 데 있다. 상대의 논리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사라지고, ‘내 편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만이 지배한다.
‘화쟁’이란, 말 그대로 ‘화합과 논쟁’ 두 글자의 결합이다. 이는 단순히 싸움을 그치고 화해하자는 수준이 아니다. 원효는 당시 신라 불교계에 존재하던 여러 학파(화엄, 열반, 유식, 중관 등)의 대립을 직접 경험했다. 그렇기에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을 지어, 서로 다른 교리들이 결국은 ‘일심(一心)’이라는 근원적 진리에서 비롯되었음을 설파하였다. 모든 분열된 주장도 결국은 하나의 마음, 하나의 진리를 비추는 다양한 거울일 뿐이라는 것이다.
즉 화쟁은 단순한 ‘화해’가 아니라, 철저한 교리 비판과 이해 과정을 거쳐 얻어낸 종합적 통찰이다. 이를 우리 사회에 적용한다면 ‘화쟁은 비판 없는 포용이 아니라, 상대의 주장을 정확히 이해하고, 공통된 진리를 찾아내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 이 화쟁을 적용해 보면 그 의미가 자못 웅숭깊다.
정치적 진영논리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가진 가치만 옳다고 믿고, 상대방의 주장은 배척한다. 그러나 원효는 “일체개시 일체개비(一切皆是, 一切皆非: 일체가 옳으면서도 그르다)”라 한다. 부분적 관점에 매몰될 때 생기는 절대화의 오류를 경계한 것이며, 상대주의와 절대주의를 동시에 넘어서는 사유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누가 옳으냐’가 아니라, 서로 다른 주장 속에서 ‘어떤 공통의 가치를 발현’하느냐이다.
예컨대 경제 성장을 우선시하는 쪽과 분배 정의를 강조하는 쪽은 늘 대립한다. 그러나 성장 없는 분배는 불가능하며, 분배 없는 성장 또한 공동체를 파괴한다. 그렇기에 양쪽 모두 진리의 한 부분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는 순간, 해법의 지평은 넓어진다. 여기서 화쟁은 단순한 타협이 아니라, 대립을 통해 더 큰 진리로 나아간다는 지혜이다.
또한 화쟁은 우리 사회의 갈등 담론이 지나치게 ‘승자독식’의 논리에 기댄다는 사실을 반성하게 만든다. 우리는 논쟁에서 이기는 것만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원효의 태도는 다르다. 그는 상대 학파의 주장을 꿰뚫어 파헤친 뒤, 그 안에서 자신과 공통된 근거를 찾아내려 했다. 이것이야말로 성숙한 지성인의 태도이다. 갈등은 피할 수 없지만, 그것을 통해 성찰과 변화를 이끌어낸다면 갈등은 오히려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된다.
물론 현실의 정치와 사회 문제에 원효의 사상을 단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대립이 격화할수록 더 큰 조화를 향해야 한다’는 그의 통찰은 작금의 이 세상에 여전히 유효하다. 다양한 가치와 의견이 존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묶어낼 것인가이다. 서로를 배제하고 적대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미래를 열지 못한다.
원효는 과부인 요석공주와 혼인하여 설총을 낳은 파격적인 승려요, 대중들과 어울려 노래와 춤으로 불법을 전하려 했던 실학가였다. 원효는 탑돌이나 의례에 얽매이지 않고, 대중 속에서 설법하며 불교를 생활화했다. 그가 강조한 화쟁은 추상적 사변이 아니라, 일상의 갈등을 풀어내는 실천적 태도였고 ‘해골물 일화’도 이에 연유한다. 오늘 우리가 그를 다시 기억해야 하는 준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화쟁사상’은 박제된 책 속의 먼지 앉은 이념이 아니다. 현실의 갈등을 풀어내는 실천적 지혜이니, 한번 쯤 곱씹어 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