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17
[공지]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17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 한 정치인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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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17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 한 정치인의 초상
아일랜드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빅토리아 시대의 미학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히 아름다움의 찬미에 그치지 않는다. 작품은 ‘아름다움’이라는 껍질 아래 숨겨진 도덕적 부패를 미묘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도리언은 영원한 젊음[아름다움]을 대가로, 자신의 초상화가 대신 늙고 추해지게 하는 기묘한 계약을 맺는다. 그는 겉모습을 유지하는 대신 내면이 부패해 가는 과정을 그림 속에 가둔다. 그러나 숨겨진 추함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초상화는 추악해지고,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마다 그는 자신의 타락과 죄악을 확인하게 된다. 결국 도리언은 초상화를 파괴하려다 자신의 생명을 끊고 만다. 그의 죽음과 함께 초상화는 원래의 아름다움을 되찾지만, 그가 살았던 삶은 더 이상 복구할 수 없다.
최근 한국 정치에서 벌어진 사건 하나가 이 소설을 떠올리게 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 의원이 휴대전화로 타인 명의 계좌를 통해 주식을 거래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공인의 윤리 기준을 고려하면, 그것은 단순한 ‘투자 행위’가 아니라 ‘도덕적 선택’의 순간이었다. 주식 거래가 불법인지 합법인지는 법률이 판단할 몫이지만, 장소와 상황, 그리고 ‘차명 계좌’라는 점은 국민의 눈에 심각한 문제로 비쳤다. 해당 의원은 곧바로 탈당하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직도 사퇴하였다.
그는 ‘민주당’의 ‘4선 국회위원’이며 더욱이 ‘법제사법위원장’이란 대한민국 최고의 직함을 보유하고 있는 이다. 그러나 그의 몰락은 마치 도리언이 초상화 속 추함을 외면하며 여전히 상 앞에 완벽한 얼굴로 서 있던 모습과 겹쳐진다. 타락은 대개 서서히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순간의 선택이 전환점이 된다.
도리언의 경우, 그 순간은 ‘영원한 젊음’을 욕망한 날이었다. 이춘석 의원 사건에서라면, 본회의장에서 휴대전화를 켜고 주식을 거래한 그 짧은 찰나가 될 것이다. 이후의 모든 과정—자기합리화, 은폐, 사회적 신뢰 상실—은, 이미 그 한 순간에 다가왔다. 심리학적으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 큰 부담을 느낀다. 그래서 합리적인 이유를 만들어내고, 때로는 ‘나는 잘못하지 않았다’고 믿으며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러나 은폐된 잘못은 반드시 드러나고 만다. 도리언의 타락은 주변 인물들을 파괴했고, 결국 자신과 함께 관계망 전체를 무너뜨렸다. 정치인의 타락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사건은 해당 의원의 문제를 넘어서 민주당의 도덕성에 의문을 던졌다. 국회의장은 본회의장 내 전자기기 사용 규정을 강화하겠다고 했고, 당 대표는 윤리 감찰단 조사를 즉각 지시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했지만 이것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착잡하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결말은 매우 상징적이다. 도리언은 자신의 추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초상화를 찢어 없애려 하지만, 그 칼날은 초상화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찌른다. 타락의 기록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신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도덕성도 마찬가지다. 잘못을 기록한 언론의 기사와 국민의 비판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찢은 자신의 초상화가 바로 자신임을 깨달아야 한다.
정치인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국민이 지켜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권력과 지위’는 ‘젊음과 미모’처럼 시나브로 사라진다.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도덕을 버린다면, 초상화 속 도리언처럼 자신을 파괴하는 인간 실격의 날이 반드시 온다. 도덕적 타락은 은폐로 치유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권세와 지위라는 아름다운 외피를 쓰고 있어도 도덕적 타락을 감추지 못한다.
새 정부가 출발한 지 얼마나 되었나. 그것도 ‘여당[민주당]’의 ‘4선 국회위원’이며 ‘법제사법위원장’이 그려낸 <한 정치인의 초상>에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떠올린다는 것은, 사뭇, 씁쓸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