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대왕』과 내란 세력의 광기 ― 그 야수의 이름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25

by 휴헌 간호윤

간호윤의 실학으로 읽은 지금


『파리 대왕』과 내란 세력의 광기 ― 그 야수의 이름으로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


“돼지를 죽여라! 목을 베어라! 피를 흘려라! (Kill the pig! Cut her throat! Spill her blood!)” 영국 소설가 윌리엄 골딩(William Gerald Golding, 1911~1993)이 1954년에 발표한 『파리 대왕(Lord of the Flies)』에 보이는 대사이다. 이 구호는 소년들이 문명에서 이탈해 야만으로 몰락하는 순간을 상징한다. 처음에는 사냥의 성공을 축하하는 구호였지만, 점차 집단적 광기와 폭력의 언어로 변질되며 인간 내면의 본능과 잔혹성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파리 대왕』은 전쟁 중 무인도에 표류한 영국 소년들이 문명과 야만 사이에서 어떻게 분열하고 타락하는지를 보여준다. 랄프는 민주적 규칙과 공동체 질서를 지키려 하지만, 잭은 사냥과 공포를 무기 삼아 권력을 쥔다. 아이들은 실체 없는 ‘짐승(야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끝내 순수한 소년 사이먼을 ‘짐승’으로 오인해 집단적으로 살해한다. 그 순간 문명은 무너지고, 야수가 현실이 된다. 문명의 상징이던 소라는 산산조각 나고, 이성의 상징이던 피기는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15151_32962_427.jpg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 대왕』 초판본 표지




이러한 파괴의 핵심이 ‘파리 대왕’이라는 상징이다. 이 용어는 히브리어 ‘바알제붑(Baal-zebub 또는 Baal-zebul)’에서 유래한 것으로, ‘바알’은 고대 가나안 지역에서 숭배된 신의 이름으로 ‘주인’ 또는 ‘지배자’를 뜻하고, ‘제붑’은 ‘파리’를 의미한다. 『마태복음』 12장 24절에서 예수가 귀신 들린 자를 고치자 바리새인들이 “그가 바알제붑의 힘을 빌려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한다. 이후 이 ‘바알제붑’은 부패, 더러움, 악령, 죽음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골딩은 이 고대 개념을 소설 속 상징으로 끌어와, 부패한 돼지머리에 들끓는 파리들을 ‘파리 대왕’이라 명명하였다. 소설에서 이 용어는 단순한 오물의 상징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자리한 사탄적 악과 원초적 폭력성을 형상화한다. 소년들이 두려워하던 ‘야수’는 외부에 존재하는 괴물이 아니라, 저들 마음속의 바알제붑, 곧 야만성과 악이라는 상징이다.




35758_98871_4234.jpg



작금의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이 소설의 상징에 매우 근접하다. 대법원이 ‘대법관 12명 증원에 1조 4천억 원이 든다’는 어이없는 발표, 국회의 청문회 요구에 단 한 명의 법관도 출석하지 않고 의견서만 제출하는 오만, 김건희 특검을 둘러싼 검찰수사관의 집단적 태업, 지귀연 재판의 반복적 지연,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국민의힘 지도부의 적대적 정치 행태 등은 마치 실체 없는 ‘짐승’에 대한 공포에 휘둘리는 광기처럼 보인다. 이를 통칭 ‘12.3쿠데타 동조 내란 세력’이라 부른들 크게 어긋나지 않을 듯하다.


이들의 행동은 『파리 대왕』 속 부패한 돼지머리에 몰려든 파리들과 흡사하다. 『파리 대왕』에서 잭과 그의 무리는 실체 없는 짐승을 믿으며 그 공포를 통해 집단을 결속시켰다. 그리고 결국 무고한 사이먼을 희생양 삼아 민주적 규칙과 공동체 질서를 무너뜨린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 집단(국민의힘), 사법 집단(대법원, 검찰), 그리고 권력의 테두리 안에서 특권을 누리는 일부 고위직 공무원들 또한 자신들의 이해에 조금이라도 반하는 인물(개혁)을 ‘야수(짐승)’처럼 낙인찍고 증오한다.



15151_32964_4637.jpg

영화 『파리 대왕』(1990) 스틸컷




정청래 의원이 국회 연설에서 “쿠데타가 성공했다면 대통령이나 자신은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라 말하자, 국민의힘 대표가 “그렇게 되었으면 좋았을 것을”이라 저주를 퍼붓거나 경상도 산불 피해 복구 예산 투표 과정에서 “전라도는 불이 안 나나”라는 발언 역시 그 일례이다.


“괴물은 어쩌면 우리 자신일지도 몰라(Maybe it’s only us).” 이 대사는 사이먼이 숲속에서 ‘야수’의 정체를 깨달으며 던진 말이다. 괴물은 외부에 있지 않고, 두려움·증오·탐욕으로 가득 찬 인간의 내면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내란적 행태를 보이는 저들이 두려워하는 광기 어린 언행 또한 외부의 적 때문이 아니라, 저들 스스로의 편견과 타락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그래, 야수의 이름으로 저들에게 물어본다. “괴물은 어쩌면 당신들 자신일지도 몰라?”




글┃간호윤(인하대학교 프런티어창의대학 초빙교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검사는 세상에 그렇게 무서운 게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