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르소의 거울에 비친 한국의 사법부: ‘이방인’으로 살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28

by 휴헌 간호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28 뫼르소의 거울에 비친 한국의 사법부: ‘이방인’으로 살아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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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윤

2019

경진출판







http://www.incheonnewspaper.com/news/articleView.html?idxno=226723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28


뫼르소의 거울에 비친 한국의 사법부: ‘이방인’으로 살아내는 것



흔히 소설가를 ‘세상의 거울을 지고 다니는 자’라 한다. 그래서인가, 요절한 비평가 김현(金炫, 1942~1990)은 『분석과 해석』에서 “이 세계는 과연 살 만한 세상인가? 우리는 그런 질문을 던지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고 했다.



20세기 프랑스 소설을 대표하는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는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그의 소설 『페스트』 등은 인간의 양심과 정의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다. 그중 『이방인』은 어머니의 죽음에도 눈물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살인죄보다 더 큰 ‘부조리’의 죄를 심판받는 뫼르소가 주인공이다.



이 소설은 감정에 무관심한 남자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도 슬퍼하지 않고, 우연히 일어난 사건 속에서 ‘태양 때문에’ 아랍인을 살해한 뒤 재판을 받아 사형을 선고받는 이야기다. 태양 아래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지중해의 어느 해변을 바라보는 뫼르소의 시선, 그 시선으로 21세기 대한민국의 풍경을 비춰본다.



그 거울은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세상의 무질서 앞에서,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 ‘이방인’의 자리를 택하거나 강요받고 있는 우리를 비춘다. 특히 사법부의 판결 앞에서 느껴지는 그 부조리함은 뫼르소가 법정에서 느꼈던 소외와 무력감을 생생히 재현한다.



뫼르소가 자신의 삶의 진실, 즉 뜨거운 태양과 우연의 연속이었던 살인의 순간 대신, 사회적 통념과 위선에 맞춰 슬퍼하지 않은 ‘죄’로 단죄를 받았듯이, 한국의 사법부는 ‘내란’이라는 중대한 역사적 범죄의 실체적 진실보다 ‘법리적 다툼의 여지나 증거인멸 우려 없음’ 등의 명분을 앞세워 저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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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사진_위키피디아)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고 혐의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라는 영장 기각 사유는, 국민 대다수가 불법적 비상계엄의 위협을 인식했던 상황 앞에서 과연 그 ‘다툼의 여지’가 누구의 상식과 위법성 인식에 기반한 것인지 묻게 만든다. 이는 곧 한국 사회의 기득권층과 그 잔존 세력, 특히 내란과 연결되는 일부 세력에게 여전히 견고한 법의 보호막이 존재하며, 그들만의 질서와 룰이 작동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질서는 뫼르소를 단죄했던 사회의 위선적 규범처럼, 권력을 가진 자에게는 관대하고 진실을 요구하는 국민에게는 냉담한 부조리한 법 행태다.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사법부 스스로 ‘국민적 불신’을 키우고 있는 현실 앞에서, 이방인으로 서 있는 우리는 묻는다. 우리가 목격한 불의와 불법은 무엇으로 단죄받을 수 있는가? 우리가 믿었던 ‘법치’와 ‘정의’는 기득권 카르텔 내부에만 작동하는 특권인가?



뫼르소가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판정에서 자신의 존재 자체가 심판받았듯, 오늘날 우리는 이 부조리한 사법부의 결정 앞에서 ‘정의롭고 상식적인 시민’으로서 자신의 존재와 신념을 의심하게 된다. 불의에 저항하는 이들에게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권력자들의 명백한 잘못에는 관용을 보이는 사법부의 모습은, 우리를 사회의 정상성에서 멀어진 ‘이방인’으로 규정해버린다.



하지만 뫼르소가 사제의 신앙 권유에 격렬히 분노하며 자신의 ‘무의미함’을 긍정한 것처럼, 이방인으로 남겨진 우리는 이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분노’와 ‘성찰’을 통해 역설적으로 ‘무의미하지 않은 자신의 존재와 양심’을 확인하려 애쓴다.



카뮈는 ‘진정한 이방인은 사회의 통념과 위선에 복종하지 않고, 자신의 진실한 감정과 사유를 지키는 자’라고 뫼르소를 통해 말한다. 뫼르소의 거울에 비친 한국의 사법부—과거 황제 의식의 잔재와 부조리한 엘리트 의식으로 가두리를 친—, 그 가두리 밖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양심적인 시민의 유일한 저항이자, 이 부조리한 세상에 균열을 내는 작은 망치가 될 것임을 믿어본다.



http://www.kong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5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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