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작금법란(論昨今法亂, 작금의 법란을 논하다)- 사법이 공법의 탈을 쓰고
-논작금법란(論昨今法亂, 작금의 법란을 논하다)
근래 사법부(司法府, 법을 적용하여 그 적법성과 위법성 따위를 확정하여 선언하는 국가기관)의 기강이 해이하매, 일개 판관(判官, 재판을 맡은 관리)의 손끝에서 공법(公法, 공적인 법)이 사법(私法, 사사로운 개인 사이의 법)으로 전락하더니, 급기야는 사법(邪法, 사악한 법)으로 뒤틀려, 세상에 언필칭 “사법이 공법의 탈을 쓰고 나라를 휘두른다”라는 말이 장안에 횡행하도다.
법을 맡은 판관들이 서로 짬짜미하여 ‘판관동일체(判官同一體)’를 부르짖고, 스스로를 둘러 법성(法城, 법의 성)을 쌓아 올리며, 법림(法林, 법의 숲)을 우거지게 하여 성역을 삼고, 법망(法網, 법의 그물)으로 백성의 삶을 옥죄는 일이 날로 잦아지니, 이는 법이 사람을 살리는 그물이 아니라 사람을 걸어 죄는 올무가 된 형국이로다.
예로부터 이르기를, “나라의 근본은 예법(禮法, 인간의 도리)에 있고, 백성의 생명은 율법(律法, 법령과 규율)에 있으니, 법이 바르게 서면 천하가 편안하고, 법이 흔들리면 편법(偏法, 제 입맛에 따른 법 적용)과 곡법(曲法, 왜곡된 법 집행)이 성행하여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하였거늘, 오늘의 형세를 살피건대, 법전(法典, 국가의 정당한 법전)과 법치(法治, 법에 의한 다스림)는 있으되, 그 속에 깃든 법 정신은 이미 무너져 흙먼지 속에 휩쓸린 듯하니, 이를 어찌 법란(法亂, 법질서가 어지러워진 상태)이라 아니 하랴.
옛 선비들이 말하길, “법은 큰 그릇과 같아 만백성을 고루 담고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고 하였으나, 이제 그 그릇이 이미 기울어 한쪽으로 쏠렸으니, 약한 자는 작은 허물에도 곧바로 쇠사슬을 차고, 강한 자는 무거운 죄도 바람결에 흩어지는 듯하도다. 이에 백성들이 장터와 주막에서 서로 수군대며 이르되, “이제는 법이 우리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판관의 심기가 곧 법이 되었구나” 하니, 들을수록 피가 거꾸로 솟는 통탄이 아니고 무엇이랴.
조희대 탄핵을 촉구하며 <사법쿠데타 박살내자> 펼침막과 함께 행진하는 모습 (출처 : 2025년 5월 8일자 한겨레21 이종근 기자)
법관(法官)이라 함은 본디 공정(公正)의 거울이요, 그 판결은 천명(天命)을 대행하는 칼날과 같아야 하거늘, 이제 그 칼날이 권력과 정치라는 숫돌에 갈리고 또 갈려 무디어져, 마침내는 칼등과 다르지 않게 되었도다. 권세(權勢, 권력과 세력)와 야합하여 이법위사(以法爲私, 법을 사유물로 삼음)를 일삼으니, 곡법행권(曲法行權, 법을 비틀어 권력을 행사함)이요, 의법영사(倚法營私, 법에 기대어 사익을 챙김)의 도구로 전락해버렸다. 이는 곧 법의 정신이 흐려진 까닭이요, 국가의 뿌리인 삼권분립이 붕괴되는 징조라 하겠다.
그럼에도 ‘조희대 사법부’의 판관들은 서로 책임을 미루며 말하기를, “제도는 온전하니 다만 운용이 문제로다” 하나, 이는 마치 이미 속이 썩어 문드러진 나무를 두고 껍질이 반들하니 아직 쓸 만하다 하는 격이 아니겠는가. 법의 자리는 그 자체로 백성의 신뢰를 양식 삼아 존재하는바, 한 번 그 믿음이 깨지고 나면 아무리 화려한 법문(法文, 법 조문의 글귀)을 늘어놓아도 이는 허법(虛法, 이름뿐인 법)에 지나지 않으리라. 지금의 희대의 법란은 어떤 한두 사례의 일탈이 아니라, 이미 골수에 스민 구조적 적폐라 하지 않을 수 없도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조희대 사법’은 스스로를 더욱 성역이라 일컫고, 기레기 언론까지 나팔수로 내세워 사법치(私法治, 법치주의를 흉내 낸 사익 지배)와 법사화(法私化, 법이 공공재가 아니라 사유재로 변질됨)는 ‘조희대 사문파(私門派, 법 집단·정파·패거리)’에 의해서만 해결이 가능하다는 ‘조희대 판관신권주의(判官神權主義)’로 결사 항전을 맹세하니, 이는 곧 ‘도둑이 스스로 제 손과 목에 차코를 채우겠다’는 격이다. 결코 이루어질 리 만무(萬無)한 헛수작이라 하겠다.
지금이야말로 작금법란, 곧 이 시대의 법이 어지러이 흔들리는 이 난세를 똑바로 직시하고, 새로이 법의 길을 바로잡아야 할 때다. 하늘 아래 땅은 넓다 하나, 백성이 몸을 기대어 살 곳은 오직 법의 품뿐이니, 법이 곧으면 백성은 숨 쉬고, 법이 어그러지면 나라는 안으로부터 썩어 무너져 내린다.
예로부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였거니와, 그 구멍은 하늘이 뚫어 주는 것이 아니라 백성이 스스로 뚫는 것이다. 사법이 공법의 탈을 쓰고 나라를 휘두른다. 저들이 쌓아 올린 ‘법성’을 허물고, 저들이 우거지게 만든 ‘법림’을 베어내며, 저들이 던진 ‘법망’을 찢어버릴 각오를 진작해야한다. 침묵은 방조요, 체념은 공범이다. 이 나라의 주권자는 ‘법성’의 판관이 아니라, 고개 숙여 살아온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글┃간호윤(인하대학교 프런티어창의대학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