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 140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 140
민주주의의 시간은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가? — 거리와 속도의 정치철학
요즘 한국 사회의 풍경은 민주주의의 시간이 왜 지체되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상식과 법 감정에서 한참 벗어난 판결들이 반복되고, 일부 판사들의 처신은 사법이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권력 내부의 언어를 학습한 로봇 조직처럼 보이게 한다.(한덕수 28년 선고는 제외)
행정부 역시 예외가 아니다. 각 부처는 그들만을 위한 방만한 경영을 일삼고, 그 이면에서는 사익과 책임 회피가 관행처럼 굳어졌다. 견제와 균형은 형식만 남고, 권력은 서로를 감시하기보다 서로를 안심시키는 쪽으로 작동한다. 이런 현실에서 민주주의까지의 거리는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제도는 유지된 채, 시민이 체감하는 민주주의는 멀어진다.
물리학에는 단순한 공식이 있다. 거리 ÷ 속도 = 시간. 이를 민주주의에 대입해 보자. 민주주의의 ‘시간’은 단순한 연도가 아니라, 자유와 권리가 제도와 삶 속에 스며드는 데 걸린 누적의 역사다. 민주주의의 ‘시간’은 단순한 연도가 아니다. 그것은 자유와 권리가 제도와 삶 속에 스며드는 데 걸린 역사적 누적 시간이다. 그렇다면 공식의 다른 항목, 거리와 속도는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정치의 기준을 분명히 했다. “정치는 공동선을 위한 것이고, 타락한 정치는 사익을 위한 것이다.” 이 문장을 오늘의 한국 사회에 옮기면, 민주주의까지의 ‘거리’란 사익의 권력이 공동선의 권력으로 전환되기까지의 변화량이다. 선거의 유무가 아니라, 권력이 누구를 위해 작동하는가의 문제다.
법 위에 군림하는 권력, 책임지지 않는 행정, 자유를 말하면서 불평등을 방치하는 제도는 여전히 남아 있는 거리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도착점이 아니라 미완의 이동 상태로 남는다. 공자는 이를 더 간결하게 말했다. “정치란 바르게 하는 것이다(政者 正也).” 바름이 무너지면, 제도가 있어도 민주주의는 멀어진다. 거리는 줄지 않는다.
그렇다면 ‘속도’는 무엇인가. 맹자의 말이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볍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민주주의의 속도는 제도나 엘리트의 결단에서 나오지 않는다. 시민의 각성과 연대, 행동의 밀도에서 나온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이를 반복해 증명해 왔다.
4·19는 헌법이 아니라 학생의 분노가 만들었고, 5·18은 법률이 아니라 시민의 연대가 지켜 냈으며, 1987년 6월은 권력의 선의가 아니라 넥타이 부대의 압력으로 열렸고, 12·3 내란은 시민들의 빛의 광장으로 막아 냈다.
노자의 『도덕경』 74장은 이 장면을 이미 예언한 듯하다. 의역하면 이렇다. “백성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어찌 죽음으로 위협할 수 있겠는가(民不畏死 奈何以死懼之).” 이 문장은 저항의 선언이 아니라 통치 실패의 진단서다. 백성이 공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순간은 용감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삶이 이미 권력과 계엄의 공포보다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속도란 곧 백성들의 침묵하지 않는 힘이다. 질문하고, 기록하고, 감시하는 지속성이다. 권력은 늘 속도를 늦추려 하며, 백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독주한다. 그래서 민주주의에서 시민은 언제나 불편한 존재여야 한다.
많은 이들이 말한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그러나 이 믿음은 경계해야 한다. 투키디데스는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자는 당해야 할 것을 당한다”고 했다. 시간은 중립적이지 않다. 속도가 없는 시간은 지배를 공고히 할 뿐이다. 시민이 물러난 자리에는 언제나 권력이 들어섰고, 감시가 느슨해질수록 민주주의까지의 거리는 다시 늘어났다.
다시 물리학의 공식으로 돌아가 보자. 민주주의의 시간은 민주주의까지의 거리를 시민의 속도로 나눈 값이다. 거리는 역사적으로 주어진 조건이지만, 속도는 백성[국민·시민]의 선택의 문제다. 말할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 기억할 것인가, 망각할 것인가. 연대할 것인가, 각자도생으로 흩어질 것인가. 이 선택들이 모여 민주주의 사회의 속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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