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39

검찰개혁안, 개혁의 설계도인가 권력의 계약서인가

by 휴헌 간호윤



검찰개혁안, 개혁의 설계도인가 권력의 계약서인가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


인도에 이런 우언이 있다. 어느 화목한 동물의 나라에서 호랑이와 당나귀가 풀의 색을 두고 다툰다. 당나귀는 풀이 검은색이라 우기고, 호랑이는 초록색이라 한다. 호랑이가 아무리 설명해도 당나귀는 억지를 부리며 목청을 높인다. 구경하던 동물들도 친소 관계에 따라 편이 나뉘어 삿대질을 해댄다. 결국 왕인 사자에게 판결을 구하기로 했다.


사자는 뜻밖의 판결을 내린다. “당나귀가 맞고 호랑이가 틀렸다. 호랑이는 엉터리 말로 분란을 일으켰으니 1년간 추방한다!” 억울한 호랑이가 떠나기 전 사자에게 항의하자, 사자는 호랑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러게 왜 어리석은 당나귀와 싸웠느냐. 바보와 논쟁한 네 잘못이 더 크다. 논쟁은 모름지기 지식과 지혜가 어금지금(서로 엇비슷하여 정도나 수준에 큰 차이가 없다)한 자와 해야 하거늘, 너는 시간과 기운을 낭비하며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 그것이 네가 벌을 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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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발표된 검찰개혁안을 보며, 개혁의 설계도가 아니라 오래된 권력의 계약서를 다시 보는 듯한 기시감을 느낀다. 문장은 개혁을 말하지만, 행간에 숨은 '건드리지 않기로 합의한 규약'들이 섬뜩하다.


『명심보감』에 이르기를 “강산이개 본성난이(江山易改 本性難移)”라 했다. 강산은 바뀔지언정 사람의 본성은 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문구가 체념의 도구로 쓰일 때가 아니라, 변하지 않는 본성을 교묘하게 위장하는 명분으로 사용될 때다. 이때의 개혁(改革)은 본질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시키는 개악(改惡)이 된다.


검찰 개혁이 번번이 좌초되는 이유는 법 조항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법을 운용해온 '습속의 역사'에 있다. 성난개 습난이(性難改 習難移, 천성은 고치기 어렵고 습관은 바꾸기 어렵다)라 했다. 제도가 바뀌고 간판을 갈아치워도, 선택적 정의와 정치권력과의 공생이라는 교활한 습성은 살아남았다. 그래서 이번 발표는 본성을 겨냥한 칼날이라기보다, 검찰과 권력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안전한 공존의 설계도’로 읽힌다.


권력은 늘 스스로를 중립이라 부르지만, 중립은 위치가 아니라 관계의 결과다. 근묵자흑(近墨者黑,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이라 했듯이, 정치의 곁에 오래 머문 조직은 그 색에 물들기 마련이다. 문제는 ‘누가 옳으냐’가 아니라 ‘어떤 관계를 유지하느냐’다. 개혁이 늘 경계선에서 멈추는 이유는, 넘지 않기로 약속한 선이 이미 그어져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권력남용은 병재골수(病在骨髓, 병이 골수에 들었다)이다. 병은 뼈아픈 곳에 깊이 들었는데 겉의 열만 내리려 한 셈이다. 칼은 새로 갈았을지언정 그 칼을 쥔 손은 그대로이니, 이 또한 이도여구(以刀如舊, 칼은 새것이나 쓰임은 옛것)인 셈이다.


인도의 우언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어떤 대상은 논쟁이 아니라 꾸짖고 교정이 필요하며, 진실의 문제는 종종 권위가 누구 편에 서느냐에 따라 왜곡될 수 있음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이 우언 속 ‘바보 당나귀’를 ‘교활한 검찰 권력’으로 치환한들 그리 어색함이 없다. 풀의 색깔이 본질이 아니다. 진실 여부도 중요치 않다. 권력이 선택한 것은 진실이 아닌 '편리'였다. 바보를 바로잡기보다 바보와 다툰 자를 벌하는 구조 속에서, 정의는 소란을 일으키는 주범이 되고, 왜곡하는 쪽은 오히려 보호받는다.


우리는 이런 장면을 수없이 목격했다. “강산이 바뀌어도 왜 권력은 그 자리에 머무는가?”를 묻지 않는 한, 우리는 또 다른 계약서를 개혁안이라 읽게 될 것이다. “왜 우리는 진실을 말하는 자를 추방하고, 바보의 억지를 묵인해왔는가?” 이 질문에 끝까지 답을 요구하지 않는 한, 강산이 몇 번을 바뀌어도 저들의 본성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글┃간호윤(인하대학교 프런티어창의대학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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