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이러려 한 것은 아니었다.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하니
<아침부터 이러려 한 것은 아니었다.>
“00 님. 마케팅부와 연락이 되었습니다. 가슴 아프더군요. 그런 마인드를 갖고 어떻게 마케팅을 하고 있는지 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00 님과 정말 어렵게 책을 냈는데, 정말 가슴이 아프더군요. 나는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출판사, 아니 어떤 회사라도 다니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급기야 나는 이런 글을 편집자에게 보냈다.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2020년 3월 3일, 봄 여름 가을 겨울 몇 해를 가슴에 품고 있던 책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책은 표지는 물론 아직까지 오타 하나 발견 못할 정도로 만족했다. 나는 지금까지 40여 권의 책을 냈다. 이런 편집자를 만났다는 것은 작가로서 대단한 행운이다.
이제 몫은 마케팅부로 넘어갔다. 책을 출간한 지 보름이 되나 언론 반응이 한 곳도 없다. 18세기 실학자 열다섯 분에 이어 19세기 실학자 열네 분을 일반 독자에 맞춰 쓴 책이다. 이런 책은 내가 알기로는 없다. 인터넷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보급망을 소유한 교보문고에 들어가 보았다. 전국 매장 중에 딱 세 군데만 한 권씩 있었다. 이래서야 책이 나온 것을 누가 알겠는가? 어제 오후에 출판사 마케팅 부서로 전화를 걸었다. 외근이라 하여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기다리겠습니다.”하였다.
어제 끝내 전화가 없었다.
오늘 아침 댓바람부터 수화기를 들었다 놨다 했다. 출근 시간 9시가 그렇게 긴지 몰랐다.
“마케팅부이지요. 난 간호윤입니다.”
심드렁한 소리가 건너왔다.
“예, 그런데요.”
어제 내용을 전달받지 못하였겠거니 하며 전화 건 목적을 이야기했다.
“교보문고에 가 보니 ----. 사람들에게 책이 나온 것을 알려야 사든 지 말든 지 할 것 아닌가요. ----이 책은 열네 분의 실학자분들을 엮은 것이니 각 문중에 한 권씩이라도 보내는 게 어떠신지요.”
역시 심드렁한 대답이 건너왔다.
“우리는 기독교 전문 출판사입니다. CBS 하고 국민일보에는 보냈고요. 홍보용으로는 5권 밖에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내 인내심이 기어코 폭발하고 말았다.
“아니, 내가 지금 전화받으시는 분에게 책 팔러 전화합니까. 내 책은 19세기 실학자들 수 백 권 책을 읽고 쓴 책입니다. ---그러고 출판사에서 책 마케팅을 하는데 기독교면 어떻고 불교면 어떻습니까. 편협하게 종교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도대체 마케팅 부서가 하는 일이 뭡니까.---. 인세 아직 안 받았으니 책 보내고 거기서 감하세요.---- ”
아침부터 이러려 한 것은 아니었다. 10% 인세를 7%로 깎자고 하여도 흔쾌히 그러라 했다. 대한민국인이 책 안 읽는 것은 내가 잘 안다. 출판사의 고충을 이해 못 할 내가 아니다. 난 대중 베스트셀러를 쓰려는 의도도 없고 책 팔아 그 이익을 챙기려는 의도는 아예 없다. 나는 그저 저이들의 삶을 이 시대 읽고 싶은 이들에게 전달해주는 학자로 족하다. 인세를 못 받아도 책만 잘 만들고 많은 이들에게 읽힌다면 그것으로 대만족이다. 그것이 최고의 수확이다.
인격이 모자라 저러한 대화가 오간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난 그렇게 안 살았다. 안 살았다기보다는 못 살았다. 그렇게 살았으면 나 같이 지극히 평범한 둔재(鈍才:이 대한민국이란 세계에서 확실히 나는 둔재다.)는 이미 길거리에 나앉았다. 책 한 권을 쓰려면 내 머리는 거의 용광로와 다름없다. 밤낮도 없다. 반미치광이처럼 끙끙 매달리고 매달려야 책 한 권 겨우 얻는다. 그 글자 한 자 한 자에는 내 온 삶이 들어있다. 난 지적인 향연을 찾거나 교양을 위해 이 길을 가는 게 아니다. (이것이 한 번밖에 없는 생, 16년 차에 고등학교 교사를 미련 없이 버리고 학문의 길로 들어 선 내 삶 그 자체이다.)
이렇게 책을 마무리 한 다음에는 출판사를 찾아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돌린다. 그 뒤엔 편집자와 교정을 보고 또 본다. 그렇게 봄이 겨울이 되고 다시 겨울이 여름이 되고 하여 몇 년을 걸려 겨우 세상 빛을 본 책이다. 내가 어리석은 것인지, 내 책이 못난 것인지, 저 출판사가가 믿는다는 신께 묻고 싶다.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하니, 저 마케팅 부서라고 왜 이유가 없겠는가마는---.
아침부터 이러려 한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