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무척 잘 내는 얼굴이 빨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빨간 사람은 너무 화를 많이 내서 지쳐버렸습니다.
그래서 말이 없어지고 사람들도 모두 싫어지고 말았습니다.
생각 끝에 빨간 사람은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숲으로 들어가 하루 종일 하늘만을 보고 지냈습니다.
어느 날 밤, 모닥불 앞에 조용히 앉아 있던 빨간 사람에게 갑자기 누군가가 말을 걸어 왔어요.
"안아 줘. 안아 줘.”
깜짝 놀라 돌아보니 거기에 서 있는 것은 슬픔입니다.
빨간 사람은 얼떨결에 팔을 벌려 슬픔을 안아주었습니다.
슬픔의 몸은 아주 차가웠지요.
그날부터 빨간 사람은 차가운 슬픔을 안은 채로 밥을 먹고 잠을 잤습니다.
밤이 되어 슬픔이 훌쩍훌쩍 울면 몸을 토닥여주기도 했어요.
며칠이 지나자 슬픔은 절반만큼 작아지고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밤이되어도 슬픔은 처음보다 조금만 울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슬픔이 스르륵 사라졌습니다.
빨간 사람은 조금은 쓸쓸해져서
‘어디로 사라졌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그 때, 등 뒤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말을 걸어 왔습니다.
“안아 줘. 안아 줘.”
거기에 서 있는 것은 활활 타오르는 주황빛의 분노입니다.
빨간 사람은 하는 수 없이 슬픔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분노를 안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안기는 힘이 어찌나 센 지 숨이 막힐 것 같습니다.
그렇게 기세등등했던 분노도 며칠이 지나자 팔의 힘이 약해지고
가벼워 지더니 마침내 슬픔이 사라진 것과 똑같이 스르륵 사라졌어요.
빨간 사람은 또 다시 조금은 허전해져서
‘어디로 사라졌을까’ 생각했습니다.
그 때, 또 누군가가 말을 걸었지요.
“안아 줘어. 안아 줘어어.”
거기에 쓰러질 듯이 서 있는 것은 절망입니다.
빨간 사람은 조심스레 절망을 안아주었습니다.
절망은 끈적끈적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이 썩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절망도 며칠이 지나자 조금씩 가벼워 지더니
끝내는 흔적도 남지 않았습니다.
빨간 사람은 고개를 조금 갸우뚱 하며
‘어디로 사라진 걸까’ 생각 했습니다.
그 때, 또 누군가가 말을 거네요.
거기에 서 있는 것은 뾰족뾰족한 외로움입니다.
빨간 사람은 기꺼이 외로움도 안아 주었습니다.
외로움은 바스락 바스락 마른 소리를 내며 가슴을 콕콕 찌릅니다.
외로움은 꼭 3일 만에 완전히 가벼워지더니 부서지듯 사라졌습니다.
빨간 사람은 빨간 두 손을 펼치며
‘어디로 사라졌을까’ 생각했습니다.
그 때, 누군가가 뒤에서 팔을 뻗었습니다.
그리고 빨간 사람의 목을 가만히 안아 주었습니다.
“안아 줄게”
여느 때와는 다른 촉촉한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고개를 돌리니 누군가가 달님처럼 웃고 서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라졌던 슬픔, 분노, 절망, 외로움이 섞여있었습니다.
“모든 감정을 똑같이 안아줘서 고마워. 그래서 내가 만들어졌어. 나는 평온이야.”
빨간 사람은 평온의 품에 안기어 눈을 감았어요.
더 이상 화가 나지도 지치지도 않는 게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빨간 사람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생각 했습니다.
‘내일은 사람들을 만나러 내려가 볼까'
안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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