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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조 Aug 17. 2021

오늘도 롤 한판 하셨습니까?

거실 쇼파에 앉아서 비디오 게임에 열중하는 내 눈동자.

헤드셋으로 긴박한 오더를 주고받으며 5:5 미드한타에 집중하고 있는 내 얼굴.

모바일 게임에 쏟아부은 구글플레이 또는 앱스토어 결제 이력.


부모님이나 배우자, 또는 여자 친구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가?

아마 아닐 것이다. 보여주더라도 높은 확률로 욕을 들어먹을 것이다. 게임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하다못해 눈에 안 보이는 곳에서 하라는 소리만 듣고 끝나면 다행이다.


게임으로 경제생활이 가능한 사람은 사정이 좋다. 프로게이머, 유튜버, 인플루언서 등등 게임으로 밥 벌어먹고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런 분들은 계속 자신의 강점을 살려서 위치를 공고히 해 나가는 편이 현명하다. 이미 프로의 경지에 올랐으니 어중이떠중이의 조언은 불필요하다. 고개를 들고 더 빨리 달리는데 집중하면 된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비롯한 당신, 그리고 우리 주변 많은 사람들은 게임을 해서는 안된다. 당장 끊을 수는 없겠는가? 그럼 최소한 이 글이라도 읽고 게임하러 가야 한다.


먼저, 게임에서 우리가 얻는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열거할 수 있는 경험들이 11개는 더 되지만 오늘은 딱 두 가지만 가지고 말해보자.


1. 몰입의 경험


게임만큼 쉽게 몰입을 유도하는 무언가를 찾기 쉽지 않다. 책을 읽고, 여자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티비를 보고, 일을 하고, 하다못해 화장실에 가서 일을 보더라도 그 집중력이 오래 이어지기 어렵다. 하지만 게임은? 큐 잡고 게임에 들어가는 순간 빠져든다. 나의 움직임과 상대방의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가며 귀로 들리는 사운드에도 집중해야 한다. 정신없이 치고받고 싸우다 보면 어느새 삼십 분이 지나있고, 한 두 판 게임을 계속하다 보면 하루 이틀 지나가는 것은 일도 아니다. 


사람은 몰입을 통해 무아지경의 경지에 이른다. 나 자신을 잊어버릴 정도로 어떤 것에 집중함으로써 얻어지는 행복감이 상당하다. 예를 들면, 시험기간에 읽는 소설책. 연인과의 키스. 일곱 살 때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하던 놀이들. 영화관에서 영화에 집중하는 두 시간. 일요일 아침 8시 꼭 챙겨보던 디즈니 만화동산.  


이런 몰입의 단편을 이어나가며 사람은 행복감을 느끼고,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위에 열거한 몰입의 예시 외에도 수많은 몰입의 경험이 있다. 하지만 시공간을 초월하여 몰입의 경험을 가져다주는 것은 게임뿐이다.  


2. 성장의 경험


게임에는 MOBA, RPG, FPS, 슈팅, 샌드박스, 스포츠, 레이싱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 모든 종류의 게임을 관통하는 것이 '성장'이다. 게임을 하며 재화를 모으고 게임 내 캐릭터의 레벨을 올린다. 내 캐릭터는 점점 강해지고 경우에 따라서 캐릭터의 존재감이 점점 커져나가기도 한다. 또는 게이머로서의 내 실력이 점점 성장하면서 내 영향력의 범위가 넓어진다. 


성장은 희열을 안겨준다. 나의 레벨이 올라가고, 등급이 올라가고, 계급이 올라가며 게임 내에서의 내 영향력이 높아지고 지위가 상향되는 경험을 한 번 맛보면 현실 세계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 진다. 왜? 게임에서 나는 성공한 사람에 속하는데, 정작 현실세계의 나는 거기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을 거부하고 자신이 인정받을 수 있는 게임의 세계로 돌아간다. 


현실에서의 성장은 무척이나 어렵다. 학교 다닐 때 공부가 쉬웠는가? 누군가에겐 쉽다손 치더라도, 그 공부를 지속해온 시간이 얼마인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12년. 또는 대학교까지 무려 16년의 시간이다. 우리가 살아낸 시간이 이토록 길다. 공부가 아니면 사회생활은 쉬운가? 회사에 입사해 대리 달기까지 4년, 과장이 되기까지 또다시 4년이다. 팀장 또는 부장급이 되려면 적어도 15년은 굴러야 하고 20년 차에 부장 달기도 쉽지 않다. 사회에서의 성공은 공부보다도 더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인격적인 성장은? 말해 뭐하겠는가. 책 한 두 권으로는 택도 없고 백 권 이 백 권 읽는다고 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럼 천 권 읽으면 될까? 일단 읽고 나서 이야기하자. 많은 사람이 성장다운 성장의 경험을 평생 누리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성장의 경험은 현실에서 쉽게 맛보기 힘들다. 그것을 단기간에 안겨 주는 것이 게임이다. 물론 게임에 익숙해지고 실력을 키워나가는 과정에서 들이는 시간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 내 이름 석 자 걸고 나 스스로를 키워나가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게다가 그 과정 과정이 몰입과 함께한다. 지루할 틈 없이 몰두하고서 뒤를 돌아보면 스스로가 성장해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것도 생각보다 꽤 많이.


그래서 우리는 게임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게임을 그만 해야 한다.


왜? 그렇게 몰입의 행복을 주고 현실에서 쉽게 느끼기 힘든 성장의 기쁨을 안겨주는데? 

    그래서! 우리는 게임을 그만 해야 한다.


무슨 말이냐고? 게임에서 몰입을 경험하고 그 경험의 끝에서 오는 성장의 과실을 쉽게 느껴버리기 때문에, 정작 현실에 안주하고 현실을 거부하는 방향으로 뇌가 움직인다. 그 열정과 노력, 시간 투자를 현실에 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게임에서 얻는 행복과 성장에 비할 바 없는 현실 세계에서의 진짜 성공이 있다. 솔직히 말해서 현실에서 도피하는 많은 사람들이 진짜로 현실 그 자체가 싫어서 도피를 하는 걸까? 정말로? 당장 연금복권에 당첨된다고 하면 그 누가 골방에서 애니메이션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인터넷으로 기어들어가 부끄러움도 모른 채 열등감이 뚝뚝 떨어지는 악플을 달며 혐오를 조장할까. 


문제는, 반복된 게임으로 인해 보상체계가 흐트러지면 현실로의 복귀가 힘들어진다. 빠른 몰입과 압축성장을 경험한 많은 게이머들은 계속 게이머로 남게 된다. 당연하다. 현실 세계의 냉혹함을 알아서가 아니다. 너무나 쉽게 정말 쉽게 몰입과 성장이라는 달디 단 열매를 양 손에 쥐어버렸기에, 현실에서의 작은 노력과 적은 시간 투자조차도 꺼리게 된다. "아 몰라 모르겠어. 그냥 게임이나 할래." "어떻게든 되겠지." 게임에서는 어떻게든 된다. 손으로 하든 발로 하든 어쨌든 레벨은 오르고 누군가 내 게임을 캐리해주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그런 거 없다. 아주 작은 발걸음만 내디디면 되는 일도 실행하기가 너무나도 힘들어진다. 사람이 점점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런 경험이 하루 이틀 쌓이다 보면 현실에서 무언가를 감히 시도하기 힘든 겁쟁이가 된다. 그렇게 되면? 끝이다. 어쩌다가 나 왜 이러고 있지? 생각하지만 현실에서의 변화를 가져오기엔 너무 늦었다고 포기해버린다. 그리고는 빠른 행복과 쉬운 성공을 누리기 위해 게임을 켜겠지. 그것이 너 나 우리가 빠져 있는 함정이다. 


그래 그건 알겠는데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냐고? 그건 지금부터 찾아 나서야 한다. 게임에서처럼 알기 쉽게 튜토리얼이 짜여 있는 게 이 사회가 아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튜토리얼이 존재한다. 좋은 대학 가는 법. 유명 기업에 취직하는 법. 돈만 주면 알려주는 '학원'이 있다. 공부도 시켜주고 자기소개서도 대신 써주고 면접 준비도 같이 도와준다. 여기까지는 튜토리얼이 있어서 남들 하는 거 비슷하게 따라갈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진짜 내면의 성장을 위한 방법. 그 방법은 매뉴얼이 정립되어 있지 않다. 최근까지는. 하지만 유튜브가 나오면서 그 매뉴얼이 하나 둘 공개되기 시작했다. 고맙게도. 그전까지는 직접 머리 박아가며 정말 뚝배기 깨져가면서 부딪쳐서 겨우 깨우칠까 말까 한 것들이 지금은 무료로 오픈되어 공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에 안주하며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자위하고 살아간다. 그다음으로 한 발자국만, 아니 반 발자국만, 그것도 아니고 문고리를 돌리기만 해도 열리는 새로운 세계가 있지만 그 작은 시작을 하지 못한다. 왜냐? 배운 적이 없으니까. 그리고 안 배운 거 하면 안 된다고 세뇌되어 왔으니까. 학교에서고 직장에서고 군대에서고 배우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은 철저하게 학습된다. 


누군가가 깔아놓은 길만 가도록 훈련된 사람들. 규격화된 틀을 벗어나는 순간 어디선가 날아오는 펀치. 그 펀치를 한 방 두 방 맞다 보면 누구라도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 고분고분 누군가가 깔아놓은 레일 위로 기어올라간다. 그렇게 노예로 길어지는 것 이외 다른 길을 걷는다는 개념 자체가 거세된 사람들. 그런 존재가 우리다. 


그렇기에 더 치열하게 생각해야 한다. 내 성장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한 판 두 판 게임하며 시간을 버릴게 아니라, 진짜 나 자신을 위한 걸음을 내디뎌보자. 



수고했다. 여기까지 왔다면 성공이다. 게임으로 향하는 문을 닫고 현실의 문을 열어젖히자. 어떤 문을 열어야 할지는 스스로의 몫이다. 어떤 문을 열어도 상관없고, 열었다가 금방 닫아도 상관없다. 심지어 실제로 열지 않아도 된다. 열어볼까?라는 생각만 해도 충분하다. 여기까지 읽어내려온 것 자체가 성공이다. 때가 되면 언젠가 현실의 문을 열 포텐셜이 있다는 증거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백스페이스 버튼을 누른 지 오래, 이미 두 번째 게임에 빠져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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