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음난리

부를 통해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

나는 나에게 사랑받고 싶다

by 신조

부를 얻고 사람들에게 내보임으로써 인정받고 싶다. 내가 페라리를 탄다면 내 차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감탄하며 나를 인정해 줄 것 같다. 사실은 나를 인정하는 게 아니라 그 페라리 자체에 감탄하고 그 차 자체를 인정하는 것인데 말이다. 이렇게 저 차만 있으면, 저 집만 있으면, 저 구두만 있으면, 저 가방만 있으면, 저 장신구만 있으면, 저 여자만 있으면, 저 남자만 있으면 인정받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 물건들과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에 대한 인정은 그것들 그 자체에 대한 인정일뿐, 그 화려함을 소비하는 '나'라는 매개체에 대한 인정이 아니다.

생각해 보라. 페라리를 타는 젊은 배우를 봤을 때 바로 떠오르는 감상은?

'와, 저 배우는 얼마나 열심히 살았길래 젊은 나이에 페라리를 탈까.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나도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 오늘도 힘을 내야지!' 일까? 아니면,

'와, 부럽다. 나도 저렇게 태어났으면 저 정도는 누리고 살 수 있었을 텐데' 일까?

후자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페라리를 타는 사람에 대한 인정보다는 대상에 대한 동경과 내 현실과의 괴리를 느끼고 그 간극을 질투로 채운다.


일반 직장인이 돈을 아끼고 아껴서 평생 모은 돈으로 페라리를 타는 모습을 상상해도 마찬가지다. 이때도

'와, 저분은 정말 대단하다. 평생 모은 돈으로 꿈을 이루다니 나도 열심히 살아서 저분처럼 멋진 삶을 살아봐야겠어!' 라기보다는,

'와, 저렇게까지 해서 굳이 페라리를 타야 되나? 어차피 유지도 안 될 건데 다 늙어서 저게 뭐 하는 짓이지. 쯧쯧.'

이라는 감상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다.


이렇게 페라리를 탄다고 해서 사람들의 인정은커녕 질투와 시기의 대상, 어떤 사람들에게는 페라리를 탄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음의 증명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내가 생각했던 인정과 사랑과는 정말 반대되는 평가를 받는다. 물건과 화려함에 대한 추구가 인정과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인정 욕구는 그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싶다. 아무리 못나고 보잘것없어 보이고 쓸모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해 줄 누군가를 기다린다. 나 스스로가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그 욕구는 타인에게로 향한다. 나 스스로가 있는 그대로의 나의 맨얼굴을 쳐다보려 하지 않으니 낙담한다. 맨얼굴을 내보이면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맨얼굴을 들키지 않을 수 있는 각종 물건과 화려함으로 치장하려 한다. 스스로가 나의 맨얼굴을 거부하니, 맨얼굴을 가리면 가릴수록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수단으로 부를 추구하고, 부에 집착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들이 부를 숭상하고, 화려함을 동경하는 것처럼 보인다. 각종 미디어와 방송, 유튜브뿐 아니라 실제 만나는 사람들의 대화에서도 겉으로 드러나는 부와 화려함이 대화의 중심이 되고 욕망의 대상이 된다. 물론 그 사람들의 내면이 우리의 내면과 다르지 않기에, 겉으로 드러나는 부에 집착하는 것이 그들의 진짜 본심이 아니다. 그저 그렇게 보일 뿐이다.


피상적으로는 모두가 부와 화려함에 매몰되는 것을 보니 나도 부와 화려함으로 치장하면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렇게 부에 집착한다. 그 끝에 원하던 부와 화려함을 손에 넣을지라도 원하던 만큼의 인정과 사랑은 받지 못한다. 계속해서 더 큰 부와 더 높은 단계의 화려함을 갈구한다. 진짜 채우고 싶은 것은 부와 화려함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맨얼굴에 대한 인정과 사랑이고, 구체적으로는 스스로가 나를 인정하고 사랑해 주는 것이기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어긋나고 비뚤어진다.


이 어긋남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을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 나의 맨 얼굴을 나 스스로가 사랑하는 것. 그것이 시작이고 끝이다. 나의 맨얼굴을 긍정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타인은 나의 맨얼굴을 마주할 기회도 없을뿐더러 그 맨얼굴을 온전히 긍정할 수도 없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 전에는 말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또, 내가 나를 사랑하는데 누가 나를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무슨 상관이 있을까?


옷을 벗고 거울 앞에 선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한다. 눈을 감는다. 눈에 보이는 부분뿐 아니라 내가 하는 생각과 내가 느끼는 감정 내가 가진 고정관념들과 아주 고약한 부분들 그리고 아집까지도 긍정한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타인의 인정과 사랑이 아니다. 부도 아니고 화려함도 아니다.


나는 나에게 사랑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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