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음난리

마지막 출근길

퇴사와 현재와 미래, 그리고 황금빛 무언가

by 신조

퇴사 서류를 제출하고 왔다. 선배들, 동기들, 동료들과 인사를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8년을 넘게 다닌 직장에서의 마지막 날을 겪으며 기분이 좋으면서도 어딘가 아쉽기도 했다. 퇴사 날이 얼마나 즐거울까에 대해 망상을 펼치던 때가 있었는데, 망상과는 달리 그저 좋지만은 않았다. 마치 군대에서의 전역날과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군대에서도, 회사에서도 마지막 발걸음에는 다음과 같은 물음이 따라왔다. 일단은 여기서 벗어났는데 앞으로 뭘 하면 좋을까?


사실 죽도록 퇴사하고 싶던 때는 몇 년 전이었다. 22년 정초에 너무나도 퇴사를 하고 싶었다.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그 관계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정말 정말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마음만 앞섰을 뿐, 현실의 벽 앞에 주저앉았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현실의 벽이라는 건 스스로 만든 마음의 벽이었다. 실제 벽이 존재하지는 않았다. 당장 퇴사 할 수 없는 이유를 하늘 높이 쌓아 올릴 뿐이었다. 주가가 떨어져서 퇴사할 수 없어. 인간관계 스트레스로부터 도망치는 건 비겁한 일이야. 집도 사야 되고 결혼도 해야 되는데 회사에 다니지 않고서는 불가능해. 그렇다고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건 너무 힘들어. 요새 사람도 안 뽑잖아. 그리고 설령 뽑힌다고 해도 새로 적응하는 게 너무 무서워. 그냥 익숙한 여기 계속 다니는 수밖에 없어. 이런 변명들을 그러모아 높다랗게 쌓고서는 스스로 '현실의 벽'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다. 그러고서 퇴사를 삼켰다. 삼킨 퇴사는 소화되지 않고 뱃속에 남아 있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회사에 다니면서 회사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다. 성과를 인정받아 좋은 고과를 몇 년씩 받기도 하고 전혀 기대에 없었던 특별 성과급도 주어졌다. 그냥 회사에 남아서 하던 대로만 하면 동기들보다 높은 연봉을 받고, 빠른 승진을 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 목전에 퇴사를 결심했다.


왜냐하면, 위에서 언급한 마음의 벽이 지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가가 떨어져서 퇴사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현재 주가는 신고가를 경신하며 고공행진하고 있다. 인간관계 스트레스로부터 도망치는 건 비겁하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 않다. 집도 사야 되고 결혼도 해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집을 꼭 당장 사야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고 결혼은 이미 했다.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건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면서 인력에 대한 수요는 계속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새 회사에 적응하는 것도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변화에서 오는 설렘을 느끼는 것도 아주 좋은 경험이다.


결국 나의 퇴사를 가로막았던 건 내 생각이었고, 그 생각들이 해소된 지금 퇴사를 할 수 있었다. 무너진 벽을 대신해 새로운 벽을 세울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상황이 바뀜에 따라 얼마든지 벽이든 무엇이든 둘러치는 건 어렵지 않다. 아이가 태어났으니까 퇴사할 수 없어. 진급이 목적인데 퇴사할 수 없어.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는데 이 사다리를 걷어차는 건 너무나도 아까운 일이야. 양가 어른들께 마땅히 드릴 말씀이 없어. 상급지에 집을 사려면 퇴사는 어림도 없는 일이야. 자동차도 더 큰 차로 바꿔야 되는데 퇴사하고도 그게 될까? 앞으로 국제 정세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데 아무튼 퇴사는 안 돼. 끝도 없이 이어진다.


퇴사를 결정한 지금, 미래에 대한 계획은 없다. 지금까지는 미래에 현재를 저당 잡히며 살아왔다. 오늘 공부해야 내일 좋은 대학에 가고, 학점을 잘 받아야 취업이 된다. 회사에 다니며 열심히 돈을 모아야 결혼을 하고 결혼해서는 아파트 청약을 밀어 넣으며 대출금의 이자를 갚는다. 조금 지나면 노후 대비를 위해 벌 수 있을 때 최대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최대한 버티고 버틴다. 그렇게 은퇴하면 그 자체로도 아주 훌륭한 인생이다. 그때라도 '현실'을 살아갈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는 게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미래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 '개념'일뿐이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개념을 위해 유일하게 존재하는 현재를 포기한다? 무언가 말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미래라는 걸 너무 올려치기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현재가 가면 현재가 온다. 현재는 또 다른 현재에 대체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현재의 반복이다. 쌓인 현재를 과거라고 부르고 앞으로 올 현재를 미래라고 부르지만 사실 과거도 미래도 개념으로만 존재할 뿐 실체가 없다. 그렇다면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게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혹 새로운 현재가 나타나면 그 현재에 맞게 살아가면 될 뿐이다. 가능성을 미리 걱정하고 대비하는건 가능한 일도 아니고 의미가 있는 일도 아니다. 우리의 삶이 그렇다. 계획대로 되는 일이 있던가. 마음먹은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있던가. 그런 통제 욕구를 내려놓고 현재를 살아가면 순간순간이 황금빛으로 빛이 난다. 그리고 그 황금빛 현재가 모이면 마치 금장 성경처럼 인생 전체가 반짝인다. 미래를 위한다는 뒤틀린 관념으로 현재를 똥칠해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퇴사할 수 있었다. 22년에 현실의 벽을 핑계로 삼킨 퇴사는 소화되어 황금빛 똥이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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