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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조 Jul 19. 2021

첫 투자의 성공과 세 가지 비법

주식에 3천만원 꼬라박고 쓰는 글 10

2010년 파주. 임진강을 바라보는 모 사단 사령부 통신대. 그곳이 내가 배치받은 곳이었다. 앞으로의 내 삶이 어떻게 그려질지 전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삶은커녕 당장의 하루조차 내다보기 힘든 곳이 바로 군대. 20대 초반 멋모르고 들어갔기에 오히려 적응도 잘하고 그럭저럭 즐기는 자 모드로 돌입한 나였다. 그렇게 쏜살같이 일 년이 지났고 상병이 되었다. 


통신대에서의 업무는 무선통신과 유선통신으로 나뉜다. 5G 테마도 무선망과 유선망이 나뉘듯이 통신대에서도 중대가 나눠진다. 나는 무선병이었다. 그 왜 무전기 짊어지고 다니는 그 무전병이다. 보통 훈련을 나가도 중대장이나 대대장 옆에서 무전기 들고 따라다니는 그 무전병. 공교롭게도 나는 사단 사령부 소속이었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사단장 무전병이 되었다. 


사단장 무전병이 되면 좋은 점이 있다. 소형 지프 레토나 뒤에 참모, 비서와 함께 쭈그리고 앉아서 바깥세상 구경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바깥세상이라고 해 봐야 영내에서 GOP 또는 GP까지의 거리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냐 싶었다. 보통은 밭과 과수원 혹은 그냥 산 같은 광경이 펼쳐지다가 어느 순간 인적이 드물어지다가 군사시설이 보인다.


딱 하루 경로가 조금 달랐다. 그날은 저 멀리 LG디스플레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이 근방은 그저 시골일 뿐 건물다운 건물은 없는 줄 알았다. 근처에서 본 가장 큰 건물이 사단 정문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하나로마트 건물이었다. 그런데 근방에 대기업 공장이 있다고? 레토나 뒷좌석에서 본 깔끔한 아파트 같은 건물과 익숙한 로고가 생경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왠지 저 회사에서 근무하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공기 좋고 서울 접근성도 나름 좋고. (사단 입구에서 서울역에 정차하는 파란색 버스가 다닌다.)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잠깐 했었다. 왠지 모르게 관심이 갔다. 


아마도 상병 정기 휴가였을까? 아니면 이런저런 포상 휴가였을까? 그날 봤던 LG디스플레이가 뭐 하는 회사인지 궁금했던 나는 집에 와서 검색을 시작했다. 당시 LG디스플레이는 적자회사였다. 2010년부터 LCD TV 판가가 떨어지고 있었고 주가 역시 곤두박질쳤다. 그런 와중에도 회사의 R&D 지출은 줄지 않았다. 내가 봤던 번듯한 공장 이외에 신규 공장 건설도 추진하고 있었다. 주가를 확인해보니 올랐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는데 이게 바로 장치산업에서 보이는 사이클이 아닐까 싶었다. 지금은 그 사이클의 아래쪽에 위치해 있었고, 대규모 투자와 연구개발은 그대로 집행되고 있으니 지금의 위기만 넘기면 회사는 다시 흑자를 내지 않을까 생각했다. 


딱 거기까지 생각했다. 그리고 당시 나에게는 전재산인 50만 원으로 LG디스플레이 주식을 샀다. 매입 가격은 2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시기는 2011년 여름. 전역 이후 가끔 주가를 확인하던 나는 3만 원 부근에서 전량 매도했다. 왠지 50% 정도 벌었으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주가는 상승해서 35000원 근처를 몇 차례 터치하고 다시 고꾸라졌다. 그때는 이후 주가의 추이가 어떤지 몰랐다. 팔고 나서는 관심이 없었다. 첫 번째 투자로 50% 수익률을 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운이 좋았다. 


그런데 그저 운이 좋았다고 치부하기에는 지금의 나에게는 다소 버거운 결단들이 보인다. 


1. 주가 폭락 시기에 매수


아무리 기업 펀더멘탈이 좋다고 해도 당장 떨어지는 주가를 보면 패닉이 온다. 위기는 반복되고 그때마다 기업의 본질과 상관없이 주가는 떨어졌다. 내가 LG디스플레이를 매수했던 2011년도 여름, 그리스발 경제위기로 우리나라 주식시장 역시 출렁하던 시기였다. 당시 시장 밖에 있었던 나는 낮은 주가를 기회로 인식했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숲을 관찰하면 어떤 나무가 크고 작은지 한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2. 가끔 주가를 확인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가끔 주가를 확인한다는 개념은, 출근해서 업무 보다가 한두 시간에 한 번 꼴로 핸드폰을 꺼내서 보유종목의 등락을 훑어보고 빨간색이 많으면 안도 파란색이 많으면 인상을 구긴다는 의미다. 그러나 10년 전의 나에게 가끔 주가를 확인함은 카톡을 훑어보다가 이 친구 잘 지내나? 싶은 생각에 '잘 있냐' 슬며시 카톡 하나 남기는 정도의 빈도이다. 이 빈도가 얼마나 중요할까. 아래 차트를 보자.

당시 매매시점이 노란색 형광펜으로 표시한 부근이다. 사고 나서도 올랐다 떨어졌다가 반복하다가 최저 17300원까지도 하락했다. 지금이었으면 이 하락을 버틸 수 있었을까? 게다가 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21000원 넘어서까지 상승했던 주가가 어느새 -10% 정도를 찍고 있다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주가 추이를 확인했더라면 과연 2만 원 언저리에서 산 주식을 3만 원까지 들고 갈 수 있었을까? 매수시점 이전 5개월까지 돌려본 차트를 보면 더 가관이다.

불과 4월만 하더라도 4만 원 넘게 거래되던 종목이 하염없이 빠지기만을 반복하다가 살짝 반등이 오는 척하다가 다시 빠진다. 첫 번째 차트를 보고서는 쌍바닥이니 쓰리바닥이니 하면서 바닥을 다지고 상승할 일만 남은 거 아니냐 하겠지만 두 번째 차트에서 보는 실시간 시점에서 그런 판단이 바로 나오기는 힘들다. 지금의 나였다면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면서 들고 있거나,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끝에 손절하고 뒤늦게 주가 추이를 확인하고서 그래도 원칙을 지켰으니 괜찮아 자기위로 하며 쓴맛 나는 아이스크림을 씹어먹는 상황. 둘 중의 하나다. 어느 쪽이든 마음고생은 디폴트로 따라온다.


3. 왠지 50% 벌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빠져나옴


내가 들고 있는 종목이 한 번 신을 내서 상승하기 시작하면 이 추세가 끝까지 가지 않을까? 스스로를 기만하게 된다. 혹시나 달까지 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할 때가 아주 위험한 시기임을 알지만 막상 그 상황이 닥치면 이번에는 다르지 않을까?라고 또 자신을 속여 넘긴다. 당연하게도 그 이후 주가는 하락을 맞이하고 그때 팔았으면 얼마 벌었는데.. 병에 걸려서 그나마 남은 수익도 미처 챙기지 못하고 약손절로 마무리하게 된다. 사실 약손절이라도 하고 떠나면 다행인데 완전히 추세를 잃고 지하로 처박히는 종목을 부여잡고 죽은 자식 부랄 만지듯이 쓰다듬고 있노라면 이 종목 사려고 손절한 그때 그 종목이 52주 신고가를 연일 갱신하며 뒷목 잡게 되는 것이 일상다반사다.


지금이야 50%면 감지덕지해야지 라고 생각하겠지만 막상 50% 수익이 나면 상한가 한 번은 더 가지 않을까? 싶은 게 사람 마음이고 정말로 상한가에 안착하면 오 혹시 내일은 쩜상? 기대하며 자기 확신 이외 아무 의미도 없는 상한가 잔량 체크하며 이 정도 매수세면 내일은 확실한 쩜상이야 기대하다가 갭하락 맞고 정신이 번쩍 들어 물량을 넘기고 마는 게 그래도 상상할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라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도 이 케이스에서는 당초 목표한 수익이 났다. 상한가 먹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보통은 50% 수익은 커녕 5% 하락에도 가슴이 벌렁벌렁하며 손절이 나가게 되니까 말이다.



어쩌면 초심자의 행운은 사실 행운이 아니라 실력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친다. 주식투자를 하면 할수록 멍청이가 돼가고 있는 게 아닐까? 공부를 하던 일을 하던 심지어 화투를 치더라도 꾸준히 하면 늘기 마련인데 이놈의 주식은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는 건 손실뿐이니 처음 주식에 손을 댔던 그때가 내 주식인생 최고 포텐셜을 자랑하던 때가 아닐까? 그렇다면 처음 그때 그 마음을 되짚어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처음으로 돌아가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방향, 올바른 길로 말이다.  




2011년 첫 번째 투자를 마무리하고, 한동안 시장을 떠났던 나는 2018년 홍대에서 다시 기회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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