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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조 Jul 05. 2021

지금처럼 하면 안 되는구나

주식에 3천만원 꼬라박고 쓰는 글 9


2020년 3월. 손절은 1월부터 시작됐다. 갖고 있던 종목들이 도저히 살아날 기미가 없었다. 시장 전체가 들썩거렸다. 계좌에 담긴 종목들은 더 큰 폭으로 하락했다. 한두 종목을 손절할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시장이 그럭저럭 괜찮을 때는 하나를 손절해도 나머지 종목은 그런대로 버텨주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먼저 손절하냐 늦게 손절하느냐 조삼모사의 문제일 뿐이었지만 어쨌든 그 속도가 느렸다. 적어도 내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는 느렸고, 나는 계좌가 침식되어 가는 것을 '수업료를 내는 것'으로 굳게 믿었다. 그렇게 계좌가 녹고 다시 채우고를 반복하기를 벌써 2년째.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모든 종목이 동시에 하락했다. 분명 지수는 5% 하락했을 뿐인데 계좌는 15%가 떨어졌다. 시장이 30% 떨어졌을 때, 계좌는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뭔가 잘못됐다. 그제서야 재무제표를 들여다봤다. 3년 연속 적자 기업이 있었다. 적자기업은 아니지만 벌어들이는 수익에 비해 시가총액이 너무 큰 기업이 있었다. 심지어 당장 이번년도 상장폐지를 걱정해야 하는 회사도 있었다. 시장이 흔들릴 때 더 크게 하락하는 건 당연했다. 나는 뭘 보고 이 회사들을 담았을까. 도대체 어떤 확신을 갖고 돈을 집어넣었을까. 사실 확신 따위는 없었다. 욕심만이 있었다. '믿음'을 가장한 '욕심'. 내가 고른 종목이 반드시 수익을 줄 거라는 믿음. 어떤 근거도 없는, 믿음을 위한 믿음. 그 뒤에는 그저 노력 없이 달콤한 과실만을 취하고 싶은, 탐욕에 찌든 혹부리 영감만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20년 1월, 2월, 3월에 걸쳐 자산의 거의 절반 가까이를 손절했다. 정말 패닉 그 자체였다. 손절하는 와중에도 다른 종목을 샀다. 그리고 다음날 그 종목마저 손절했다. 뇌의 사고가 정지되는 느낌으로 손절하고, 다시 멍한 머리로 다른 종목을 샀다. 그리고 다음날 그 종목을 다시 손절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무 종목이나 사고 다시 팔았다. 그렇게 손실은 차곡차곡 늘었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계좌를 비웠다. 다행히도 미수, 신용을 쓴 건 아니었기에 완전 깡통만 남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건더기가 남은 건 아니었다. 내게 주어진 건 깡통 바닥이 거의 드러날 정도의 구정물뿐이었다. 


당시 얼마나 정신이 나가 있었는지 손실 계산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2월 어느 날부터는 매일 시장을 들여다보지 않게 되었고, 3월 계좌를 비우고서는 주식의 주자도 쳐다보기 싫었다. 그저 도망가고만 싶었다. 트라우마는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1년 반이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대면할 수 있었다. 계좌 실현 손실액을 다 합쳐보니 생각보다 더 컸다. 주 계좌 이외 평소 사용하지 않는 계좌에서도 약 1000만 원 정도의 손절이 나갔었다. 일찍 알아챘더라면 이 시리즈물의 제목은 달라졌을 것이다. 어쨌든 그 액수의 절댓값이 중요한 건 아니다. 나를 감싸고 있었던 알의 가격이 그 정도였던 것이다. 욕망으로 점철된 허황된 믿음을 쌓아 올린 알의 가격이. 그 임계 금액을 지불하고 비로소 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타의에 의해서 깨어진 것이었기에 언제든지 스스로 다시 알을 구축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한 가지 배운 것은 있었다. 


지금처럼 하면 안 되는구나.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이렇게 하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걸 드디어 느꼈다. 어떤 대단한 깨달음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아니었다. 그저, 뜨거운 불에 손을 넣으면 화상을 입는구나. 전기 콘센트에 젓가락을 쑤시면 감전되는구나. 모래를 입에 넣으면 입이 텁텁하구나. 하는 정도의 아주 당연하고 자명하지만 한 번 경험하면 수긍하게 되는 정도의 단편적인 문장 몇 개를 내 것으로 만들었을 뿐이었다. 허탈했다. 비법 강의를 듣는다고 쓴 돈이며 시장에서 손절한 적지 않은 돈, 밤 낮 전전긍긍 마음 졸이며 시장을 관찰하고 녹방 없는 라이브 강의를 듣는다고 해외여행을 가서도 와이파이를 연결해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열정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느껴졌다. 


원점으로 돌아왔다. 계좌가 깨끗했다. 남은 주식은 한 주도 없이, 예수금만이 남아 있었다. 문득 이 계좌를 처음 만들었을 때가 생각났다. 주식을 처음 시작했던 그때.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2010년 파주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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