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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조 Feb 26. 2022

밀레니얼 세대의 변명

요즘애들/앤 헬렌 피터슨

번아웃을 해결하려면, 당신의 하루를 채우는 것들이 -당신의 인생을 채우는 것들이 -
당신이 살고 싶은 인생, 당신이 살고 싶은 의미와 결이 다르다는 착각을 지워야 한다. 
번아웃은 자아로부터의, 욕구로부터의 소외다. 당신에게서 일할 능력을 뺏는다면, 당신은 누구인가?
더 발굴해 낼 자아가 남아있을까? 아무도 당신을 지켜보지 않을 때, 제일 저항이 적은 경로를 선택하지 않아도 될 때, 당신이 뭘 좋아하고 뭘 좋아하지 않는지 알고 있는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법을 아는가?
자신에게 다시금 전념하고 자신을 아끼는 것은 이기적이지도, 자기중심적이지도 않다. 도리어 이는 가치의 선언이다. 당신이 일을 하고 소비하고 생산해서 가치 있는 게 아니라, 당신이 그저 존재하기 때문에 가치 있다는 선언이다. 이것이 번아웃을 떨치고 이러나 다시 그 수렁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기억해야 할 사실이다. 


번아웃이라는 말이 대중화되지 않았을 시절에는, 번아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삶을 살아낸다는 건 시대를 불문하고 어려운 것이었다. 삶의 목적성에 대한 갈망은 존재했지만 현실적으로 목적을 찾기 위한 시간을 낸다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죽을 만큼 힘들어도 다음날 일어나 회사에 출근하고, 집에 와서는 집에서 해내야 할 몫을 해 내는 것. 그렇게 챗바퀴를 돌려가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나가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었다. 


그렇게 번아웃을 번아웃인지 모르고 오롯이 견뎌내며 살아온 세대가 바로 베이비부머 세대다. 그들이 겪어온 번아웃 증후군은 자녀 세대인 밀레니얼 세대까지 물려 내려왔다. 그럼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힘들어야지 왜 유독 밀레니얼 세대가 더 징징댈까. 요즘애들은 나 때와는 다르게 패기가 부족하고 의지가 나약해서 어떻게든 편하게만 살려고 얌체처럼 행동해서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인간 한 명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견문으로는 어쩌면 합리적인 결론이다. 과정이야 어떻든 삶의 풍파를 헤쳐온 입장으로서 이미 겪은 일이기에 더 쉽게 이야기할 수 있다. 사람의 기억도, 인류의 역사도 결국 현재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이기에 과거는 쉽게 왜곡되고, 현재의 붓에 의해 덧칠해진다. 


부머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와의 큰 차이점은 개인에게 있지 않다. 사회 전반적인 구조의 변화와 시대상의 변화에 있다. 부머 세대의 성장과 함께해온 전 지구적인 성장의 흐름은 슬슬 마무리되어가고 있는 모양새다. 일반 직원과 CEO의 연봉 차이로 극명하게 대변되는 부의 양극화는 점차 심해지고 있다. 글로벌 기업의 경우 그 차이가 1000배를 넘는 경우가 우습다. 차이는 날로 벌어지며 사회의 부가 아래에서 위로 분배되고 있음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그나마도 원청회사의 정규직인 경우는 사정이 낫다. 부머 세대까지는 유지되어온 전통적인 직장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기업에서 사람을 채용해서 일을 시킨다는 개념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우리 머릿속에 박혀있다. 하지만 실제 기업의 인력 고용 현황을 들여다보면 미묘하게 다르다. 이전과 같은 일을 동일한 수의 사람이 하지만 출근 게이트에서 목걸이 색이 다른 -소속이 다른-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웃소싱을 통해 타 업체에 업무를 위탁한 것이다. 이른바 파견근무의 시대가 열렸다. A기업의 B업무를 하는 데 있어서 예전 같으면 당연하게도 A기업에 채용되어 그들의 복지와 회사 내규에 따라 일을 했다. 지금은 A기업의 B업무를 A기업에 출근해서 수행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소속은 C기업이다. 월급도 복지도 전혀 다르다. A기업 입장에서는 일의 결과만을 관리하니 편하다. 개개인의 시시콜콜한 사정도 힘들게 직원을 가려 뽑아야 하는 인사 시스템도 필요 없다. 그저 공개 입찰을 통해 같은 일을 가장 적은 돈으로 가져올 수 있는 업체와 계약만 하면 된다. 이 간편한 시스템을 기업들은 점차 늘려가기 시작했다. 이전 같았으면 A기업에 채용되어 일했을 사람들이 이제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처우 차이가 심하게는 두 배 이상되는 C회사에 속해서 일을 한다. 부머 세대의 노동환경에서는 아직 대중화되기 전의 발명품이 지금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당연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 보니 더 이상 직장이 나의 인생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부머 세대였으면 마땅히 누렸을 혜택들이 아웃소싱 업체 사장의 주머니로, 원청회사의 곳간으로 재 흡수된다. 그렇게 소득은 줄어든다. 중산층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줄어든 소득만큼 벌충을 해야 한다. 더 이상 아내가 집에서 아이를 보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가족의 모습을 지탱하기 힘들어졌다. 이제는 여자들도 당연한듯이 사회로 나와 노동 전선에 뛰어든다. 그래도 모자란 경제적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나온 개념들이 부업이고, 부캐고, N잡이다.


이제는 전문 인력이 아닌 일반인들도 각자 자동차로, 오토바이로, 전기 킥보드로, 자전거로, 도보로까지 민트색 네모 가방을 메고 바삐 배달에 나서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누군가는 저렇게라도 용돈벌이 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니 좋지 않은가라고 이야기하지만 온 국민의 라이더화는 결국 배달 단가를 떨어뜨릴 것이고 생계를 위해 배달하는 사람들의 삶의 수준을 끌어내린다. 그들 역시 줄어든 소득만큼의 부족분을 메꾸기 위해 다른 돈벌이에 눈을 돌린다. 


온라인 플랫폼이 많아지며 글쓰기에 대한 접근성이 낮아졌고, 취미로 글을 기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칼럼을 비롯한 글 단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책 한 권 써서 1,2쇄 찍고 마는 경우 이건 독자에 대한 봉사활동 또는 출판 자체로 자기만족을 느끼는 정도로 끝난다. 들인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대가조차 돌아오지 않게 된 것이다. 언제는 작가로 살아가는 것이 쉬웠겠냐마는, 이제는 정말 집에서 키보드 두드리는 것만으로는 삶을 꾸려나가기 힘들어졌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점차 삶의 모든 걸 경제화시키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요리, 여행, 꽃구경, 목공, 만들기, 게임, 데이트, 운동, 애완동물, 심지어 공부까지 어떤 취미도 그냥 순수하게 즐기기 어려워졌다. 먼저 그런 것들을 순수하게 즐기기에는 죄책감이 심하다. 지금 때가 어느 땐데 한가롭게 취미생활이나 하고 있을 때인가? 해야 할 일은 얼마나 많으며 더 좋은 직장, 더 높은 소득을 확보해서 '안정적인' 상황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쉴 수 없다며 채찍질한다. 두 번째로는 만성적으로 부족한 돈에 대한 갈망으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들을 어떻게든 돈으로 바꾸려고 한다는 점이다. 사회에서도 그렇게 부추기고 나 스스로도 어떻게 하면 내가 가진걸 잘 포장해서 시장에 내놓을 수 있을까 생각한다. 초등학생 장래희망 1위가 유튜버인 것이 지금의 시대상을 증명한다.


전통적인 직장은 무너졌고, 빈부격차는 점차 늘어만 간다.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란 부머시대의 '중산층'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한다. 삶의 여유를 잃어버리고 줄곧 방전되어있으니 결혼은커녕 섹스마저 귀찮아진 세대, 여가시간에 즐기던 취미마저 돈벌이로 치환해야 할 정도로 내몰린 슬픈 세대가 바로 밀레니얼 세대이다. 


뾰족한 대책은 없다. 개개인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발버둥치며 그나마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궁리할 뿐. 그리고 한 걸음 나아가 삶을 바꾸는 정치를 만들어 가는 것. 더 나은 방향으로 사회가 움직일 수 있도록 올바른 방향을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것. 마지막으로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걸 받아들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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