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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음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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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조 Dec 17. 2021

문득, 거울을 보다.

12월 16일 23시 15분. 약 한 시간 전부터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마음난리가 시작되는 기미가 보여서 명상을 하며 생각을 녹여내다가 잠에 들어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쉽게 되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를 뒤척이며 머릿속에서는 근심이 늘어났다. 근심의 내용은 회사일이었다. 맡은 일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들. 대충 이렇게 저렇게 하고 덮어야지 생각을 하다가도 그걸로는 해결이 안 되는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무거운 생각이 이어진다. 여기에 소시오패스 같은 상사에 대한 공상까지 끼어들어 잠을 망쳤다. 


어쩌면 퇴근 후 30분 정도 낮잠을 잔 터라 10시에 잠자리에 드는건 내 몸이 받아들이기에 너무 이른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평화로운 생각을 접어두고 잠을 설치게 만드는 쓸데없는 회사일 걱정을 만들어낸 게 아닐까. 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고요한 상태로 다이브 하고 싶었지만 그런 다이브를 위해서는 머릿속에 얽히고설킨 내용을 풀어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한 시간 동안의 뒤척거림과 점점 불편해지는 마음을 접고 눈을 떴다. 귀마개를 빼고 이어폰을 꽂았다. 평소 좋아하는 펀치의 노래를 재생하고 침대 옆 노트북을 열었다.


퇴사를 하고 싶은 생각은 입사 전부터 있었다. 대학을 다닐 때부터 월급쟁이는 하고 싶지 않았다. 꼭 그래서는 아니었지만 나는 제대로 된 토익점수 하나 없이 학교를 졸업했다. 자격증도 당연히 없었다. 공모전이나 봉사활동 역시 마찬가지. 학점까지도 엉망이었다. 이력서에 적을 수 있는 건 적당한 4년제 공대 간판과 20대의 나이. 육군 병장 만기제대. 그게 다였다. 


사회생활을 해본건 아니지만 너무 뻔했다. 기업에서 어떻게 구성원을 생각하는지, 어떤 대우를 하는지, 그 구성원들은 어떤 생각들을 갖고 생활을 하게 되는지. 굳이 회사를 다녀보지 않아도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미 다녀본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있었고, 인류의 역사가 있었고, 같은 실수를 영원히 반복해 오는 인간의 심리가 있었다. 


그런 곳에 가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회사 생활이 상상보다는 더 나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기에 다니다 보면 적당히 적응하고 살 만할 거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 나도 어떻게든 적응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막상 조직에 속하면 걱정과는 다르게 나름 조직 생활을 즐기며 적당히 인정 받는 레벨의 생활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정말 감사하게도, 타고난 눈치와 고만고만한 환경에서는 어떻게든 평균은 유지해 온 내 습성이 판단 근거였다.


나는 취업을 했다. 취업에 필요한 준비물도 어떻게 준비를 했고, 그나마 가고 싶었던 회사에 다니기로 했다. 회사에 출근해보니 역시나 생각보다는 괜찮은 곳이었다. 군대에서와 비슷했다. 군대에 가면 정말 숨도 못 쉴 정도로 공포 분위기에, 몸은 항상 피곤에 절어서 강도 높은 훈련과 작업을 반복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닥쳐보니 그 정도는 아니었다. 할 만했다. 나름대로 재밌었다. 진로에 대한 걱정, 인생에 대한 걱정을 잠시 놓아둘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니 전역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오는 것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쉽기까지 했던 기억.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군대보다는 난이도가 높았지만 그래도 당장 때려치우지 않으면 안 될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돈이 나오는 게 컸다. 이게 많은 돈인가 적은 돈인가 헷갈리는 금액이 입금되지만 통계를 보면 그래도 많은 쪽에 속하는 액수였다. 아마 적은쪽이었다면 미련이 더 없지 않았을까 싶다.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며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그리고 새로 생긴 여유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회사에서 요구하는 희생 역시 커져만 갔다.


그렇게 미적미적 살다 보니까 벌써 5년여를 회사와 함께 살아오고 있었다. 5년간 내가 회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져갔고 회사가 나를 잠식하는 비율도 늘어만 갔다. 이제는 쉬는 날에도 회사 일 생각을 하고 수시로 회사 메신저를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회사 가기 전날은 회사일 걱정을 하고 금요일 퇴근하면서도 무슨 일 없겠지? 하는 생각이 항상 깔려있게 되었다.


오늘도 내일 회사일 걱정을 하며 잠에 드는 나를 발견했다. 사실 잠에 들었으면 그냥 그대로 끝이었겠지만 잠에 들지 못해 이 글을 녹여내고 있다. 내가 내 인생을 사는 걸까 회사의 인생을 사는 걸까. 하루하루 지나면 지날수록 회사라는 숙주에 감염된 좀비가 되어가는 게 아닐까 싶다. 눈치채지 못할 만큼 조금씩 젖어들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거울을 보면 거기엔 내가 모르는 내 얼굴이 보인다. 내 눈에 비친 좀비의 얼굴은 경악으로 일그러진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언제 그런 생각을 했냐는 듯 다시 본인이 '있어야 할'곳으로 돌아가는 좀비의 모습. 


지금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걱정, 불안, 분노의 감정은 사라졌고 마음은 평온해졌다. 그런데 그 반대로 슬픔이 올라온다. 이런 감정이 슬픈 감정이구나. 그동안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살아왔다. 슬픔 위에 항상 걱정과 불안이 쌓여 있었고 걱정과 불안은 분노를 불러왔다. 그 강렬한 감정들을 치워내니 그 아래는 슬픔이 있었다. 슬퍼하는 나를 무시한 채 억지로 나를 굴리는 지금의 상황. 


이런 와중에도 머리는 이런 생각을 한다. 1년만 더 다니면 모을 수 있는 돈이 이만큼이야. 3년을 더 다니면 얼마야. 이것만 있으면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어. 조금만 더 버티면 돼. 


그럴 순 없다. 더 이상 나를 잃어버리기 전에. 내 얼굴이 다 녹아버리기 전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저 사람이었던 무엇이 되기 전에. 그전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 


사실, 손에 쥔 한 줌 흙모래를 털어낼 수 있는 정도의 용기면 충분한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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