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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애했던 작가들

by 투표맘

선배 이 책 알아요?

어느 동네의 놀이터였다.

영화 동아리 후배였던 걸로 기억나는데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왜 놀이터에 둘이 있었는지도.

남자후배가 나에게 뭘 소개하는 일은 흔치 않아서

그것도 책을 소개하는 일은 더더구나 없어서

뭔데? 무라카미 하루끼? 일본 작가네?

주로 영미문학만 읽고 있던 나에게 처음으로 일본문학이 노크를 해왔다.

책때문이었는지 그 후배때문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상실의 시대를 시작으로 출판되었던 모든 책을 격파하기 시작했다.

살짝 썸을 타던 그 시기와 잘 맞아떨어지며 달큰하면서도 왠지 나른하고 슬쩍 무심하면서도 맥주, 재즈 등의 겉멋도 잘 버무려진, 현실인지 판타지인지 분간이 안가는, 생긴 것과 달리 섹스 내용이 많이 나오던 그의 소설들로 대학시절을 채워나갔다. 상실의 시대, 노르웨이의 숲, 댄스댄스댄스, 양을 쫓는 모험(제일 좋아한, 이유는 까먹은) 등 나오는 모든 책을 족족 사보며 기사단장의 죽음에서 절필이 아닌 절독을 선언했다.

동아리 후배만큼이나 아련해진 내용들이고 직장생활하며 애 낳고 다시 봤을 땐 뭔가 한량인 동생이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를 하는 것 처럼 느껴져서 내려놓긴 했지만 오랫동안 너무나 애정했던 이제는 할배가 된 작가다.

아, 달리기 책을 읽고 뛰기 시작했네...

일본 광고 카피를 필사하며 줄 그으며 공부할 때 일본 작가들 책을 많이 읽었었는데 지금 머릿속에 기억나는 작가는 미야베 미유키 정도? 지금이야 일반화된 형식이지만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취재하듯 쓰면서 나중에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는 스토리텔링 기법이 그때는 정말 신선하게 느껴졌던, '화차'로 유명하지만 '이유'라는 책을 정말 좋아했었다. 성경보다 더 두꺼운 '모방범 1,2,3'을 책꽂이에 꽂아놓고 밤새 읽어 내려가게 했던 할머니 작가시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잡지와 주간지를 정독해 보던 시절이 있었다.

PAPER라는 잡지의 작가들 글도 모두 촘촘히 찾아봤었고 씨네 21의 편집장 글과 칼럼은 스크랩을 하면서 10년 넘게 구독을 했었다. 지금은 많이들 모르겠지만 씨네 21 초대 편집장 조선희씨의 광팬이었다.

한겨례신문 창간 멤버이셨고 기자를 시작으로 씨네 21 퇴직후 소설가, 에세이스트로 꾸준히 글을 쓰신 그분의 책인 "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 이 책을 아직도 가지고 있고 애정해왔다.

카피라이터로 살면서 수없이 쓴 맛을 볼 때, 서로 뒤통수를 잘 쳐대던 직장생활을 할때 이 책을 보며 여자들끼리의 연대가 뭔지. 일하면서 의리가 무엇인지, 선배의 역할이 어떤 맛인지, 그리고 쪽팔리지 않는 삶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사실 내 책을 시댁 벽장에 다 같이 두고 빠빠이하며 캐나다에 오는 바람에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캐나다와서 향수병을 드라마로 달래며 살다보니 책과는 매우 격조한 스텐스를 취하고 있지만 책을 읽으며 이 년은 대체 뭐지? 라는 생각을 한 작가가 몇명 있었다.


나보다 나이 많은 작가분들중에서는

'새의 선물'을 시작으로 정말 빠져들었던 은희경 작가, '7년의 밤' 책을 펼쳐들고 밤새 읽다가 머하시던 분인가 홀린 듯 찾게했던 이제는 너무나 유명한 정유정 작가( 내겐 아직도 나의 스프링 캠프가 최고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정지아 작가,나보다 어린 작가들 중에는 '밝은 밤'의 최은영, '피프티피프티', '보건교사 안은영'의 정세랑, 등이 좋아했던, 또 좋아하는 작가들이다.


대부분 웃긴 글을 좋아했고, 실없는 농담을 툭툭 던지는 책을 편애했으며 그러면서도 나는 발끝도 따라가지 못하는 아프고 깊은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는 작가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덕분에 지루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발랄한 아줌마가 되고 싶었고 어느 귀퉁이에서라도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점점 지루한 으르신이 되어 가고 있다고 느껴지는 오늘 같은 밤에는 또 누군가의 책 얹어리에 놓여진 농담 한자락으로 깔깔거리며 책장을 넘기는 시간이 필요해진다.

이제 좀 영어소설을 읽으며 깔깔댈 때도 되지 않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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