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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표맘 7시간전

짐을 싸고 있는 그대에게

4년 전 캐나다로 출발하려는 너에게

지금 캐나다를 가려고 짐을 싸고 있는 그대,

먼저 보낸 아들 보러 간다고 신나 있구나..

엄마 아빠 4년이나 못 보게 될 줄도 모르고 바보,

몇 달 전 보낸 아들 보러 간다고 뭐 그리 신이 났니?

그 아들이 얼마나 니 속을 까맣게 태울 줄도 모르고...

그 아들 16시간 떨어진 도시로 보내고 맨날 전화통 붙잡고 살게 될 것도 모르고.

지금 니가 가진 계획 중에 이뤄진 건 음...... 없네 ㅋㅎㅎㅎㅎ

우선 1년 뒤에 예약해 둔 돌아오는 비행기 티켓, 그냥 날릴 거야.

넌 회사에 돌아가지 못했어. 몹쓸 코비드 때문에...

니가 애 들쳐없고 다니면서 어떻게든 유지했던 니 커리어는 어제로 끝났어.

넌 휴직계에서 사직계를 제출하게 될 거고 니가 그렇게 혐오했던 맨날 드라마 보는 아줌마로 변신할 거야.

2년 정도면 자리를 잡을 거라 예상했지만 4년이 다되어 가는 지금에야 일할 수 있는 신분을 얻게 되었고

어머님댁에 2년 정도만 부탁한 남편은 아직 꾸엑꾸엑 기러기 아빠로 떨어져 살고 있어.

비싼 돈 내고 유학을 가도 한 6개월은 돈만 내고 학교는 가지 못하는 희한한 상황을 맞이하게 될 거야.

보지도 않고 정한 집은 많이 낡아서 싱크대 보면서 한 1년은 한숨을 쉬게 될 거고

영어도 공부도 하키도 따라가기 힘들어하는 아들 때문에 지금 통장에 넣어가는 돈을 정말 홀라당 다 쓰게 될 거야.

다행히 아들이 친구들을 잘 사귀어서 어떻게 저떻게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게 되는데

맨날 일한다고 밖으로 나돌던 넌 영하 30도 눈 덮인 마을 낡은 집에 갇혀 맨날 울면서 빵을 굽게 될 거야.

상상이나 가니? 니가 빵을 굽는다는 게?

선진국으로 떠나온 줄 알지만 이곳은 한국 80년대처럼 낡고 느려서 속이 문 드러 질 거야.

여행 다닐 때는 잘 통했던 쌤쌤프라이스 영어는 생활하기엔 너무 부족해서 화가 날 거고,

그나마 4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영어 실력은 별로 나아진 게 없어. 맴맴 딱 고자리.

아 그때는 영어 한마디도 못하던 둘째가 엄마 영어를 부끄러워하게 될 거라는 걸 지금은 모르겠네.

매년 한국을 다니러 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전염병 때문에

또 아들 경기 스케줄 때문에 비자 때문에 겨우 4년이 지난 뒤 갈 수 있게 될 거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 동료들 가족들과는 처음의 마음과는 달리 점점 멀어지고

나중에는 스스로가 한심해서 점점 더 고립이 될 거야.

너가 어떤 일을 하던 사람인지, 너가 어떤 사람들과 어울렸는지, 정말 아스라해져서

쫄바지에 몸을 구겨 넣고 동네 마실에도 신나 하는 시골 아줌마가 되어 있을 거야.

너가 그렇게 좋아했던 종이책을 읽지 못해 당분간 책을 손에서 놓을 건데

책을 하루라도 안 보면 입안에 머가 돋는다는 거 그거 개뻥이야. 안나! 잘 살아!!

한국에서도 안 타던 기아차를 타게 될 거고

여행에 가산을 탕진한 니가 여행과 호텔이 지긋지긋해 질만큼 지도에 너무나 작게 표기된 시골마을들로만

굽이굽이 운전을 하고 다니게 될 거야. 아 미국도 포함... 아주 타이니 한 타운으로만 골라서.

3시간 운전도 겁나하던 니가 이젠 10시간 정도면 할만하네 라는 이상한 운전부심이 생기게 될 거고

아, 니가 조왕신을 접신하게 되어서 맨날 집에서 요리를 하게 될 거야.

안 믿기지? 하하하 며칠만 더 있으면 알게 될 거야...

캐나다에선 내 손으로 만들지 않으면 아들들 입에 한국음식 넣어주기가 정말 비싸고 어렵다는 걸.

음식 해주는 분이 주변에 늘 계시던 네가 울면서 별의별 음식을 다 만들고 있단다.

한국 음식 안 먹으면 힘들어하는 큰 놈 때문에 아이스 박스에 한국 음식을 쟁여서

시골마을 에어비엔비를 돌며 삼시 세 끼를 찍을 거고 미국 시골로 간 아들 때문에 한국 음식 구해서 매달 택배로 보내고 있을 거야.

그래서 너 쟁여두는 병이 생겼어. 마트만 가면 물건을 그렇게 사다가 쟁여두네.

아들 보내줄 거라고 사고 아들 오면 해줄 거라 사고, 세일한다고 또 사고 맨날 버리면서도 맨날 쟁여둬.

너한텐 아직 이곳 캐나다가 전시상황인가 봐.  

하키는 너가 생각한 거보다 훨씬 힘들고 맵고 아린 길이야.

아들이 제일 잘 본시험이 캐나다 입단 테스트였어.

하키 종주국을 내가 너무 쉬이 봤지... 아암. 2살부터 스케이트 신겨서 온 동네가 온 나라가 가르치는 이곳에

넌 무슨 배짱으로 10살에 시작한 애를 여기서는 평균밖에 안 되는 키 하나 믿고 덜렁 데리고 왔니?

한국에선 잘하는 애가 10손가락에 꼽히잖아?

흐흐 여기선 하키 잘하는 애가 동네마다 바퀴벌레처럼 많다.

그리고 선수들 키가 막 190을 넘겨. 180도 크다 하고 있을 넌 조금 있으면 입을 벌리고 승표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물어볼 거야 저 애는 키가 몇이니 하고.

아, 니 아들 188까지 커 그건 모르고 있겠네. 그렇게 키우려고 니가 얼마나 부엌에서 울었을지도.

매년 위로 올라갈수록 가슴에 대 못을 수십 개 꽂아야 된다는 걸.

맨날 떨어지고 입단 테스트받으러 다닌다 돈도 니가 생각하는 거보다 오방 많이 들어가는 걸

넌 좋겠다 지금은 몰라서...

캐나다 올 때 호기롭게 먹었던 국가대표를 한 번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은 고사하고 매일 경기에 한숨을 쉬고

거친 체킹에 아들 다칠까 봐 벌벌 떨고, 떨면서 못한다 욕하고, 넘어진 아들보고 속상하다가 또 쌍욕 하는 미친년이 되어 있을 거야.

그러면서 나보다 더 몸도 마음도 다친 아들 때문에 티도 못 내고 속으로 천불을 다스리고 있을 거야.

기대해도 좋아. 이 길이 얼마나 다이내믹하고 사람을 코딱지만큼 작아지게 만드는 지.

지금 짐싸고 있는 너를 정말 말리고 싶은데

딱 하나 희망이 되는 말이 있다면

너 처음으로 남편 돈받아서 살게 된다.

니가 회사그만두면 굶을 줄 알았지? ㅋㅋㅋ

물론 4년 쯤 뒤엔 바닥을 보이게 될 거지만

어찌저찌 먹고 살게 된단다...

좀 힘이나니?

좋은 일은 없냐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도 당하고, 돈도 떼이고, 처음 겪는 인간관계들에 힘들어 하기는 하는데

다행히 겨우겨우 영주권 승인도 나오고, 살짝 맛간 분들도 만나고, 노는데 적응도 좀 되고

추위에도 쪼매 익숙해져서 쪼꼼씩 쪼꼼씩 이 곳에 마음을 붙여 가는 듯해.

짐싸던 너를 욕하던 순간이 너무 많았는데

짐싸던 너를 칭찬하는 순간이 앞으로는 오겠지?  

아, 궁금해 할까봐 덧붙이는데...

살은 안빠졌어...여긴 살 찐 나에겐 천국이었어.


어여 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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