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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표맘 Nov 24. 2024

캐나다에서의 생일

식탐러의 캐나다 생일 적응기


1.

아들 친구 엄마의 생일이라고 bar에 모였다

작은 선물을 준비해왔다.

작지만 매우 알찬 걸로....

바에서 만났으니 각자 먹을 것을 주문한다.


1차로 살짝 빨간 불이 깜빡깜빡!

다른 엄마들의 손에 선물이 없는 것이다.

4명 중에 두 명만 뭘 들고 온 것 같다.

어어....이게 뭐지? 깜빡깜빡

선물은 따로 전달하는 것인가? 깜빡깜빡

잠깐,

왜 음식을  계산할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고

각자 시키는 거지?

한국에선 생일날 주인공이 거하게 밥을 사고

친구들이 선물을 사오는데 이곳 캐나다는 아니더란 말이냐?


옆 친구에게 소근소근 물어본다.

한국에서는 생일 당사자가 밥을 사는데

이곳에선 어케 하는 거니?

또박또박 알기쉬운 베이직 영어가 돌아온다.

선물은 선택이고 밥과 술은 각자 부담하는 거야

뭐?

(아니 선물이 얼만데.... 밥도 내가 사? 술도?

이거 부담시러워서 파티에 오겠나)

애니웨이, 밥도 내가 사고 술도 내가 사고 오케이   

다음에 선물을 사갈땐 초큼 가격을 조정하는 걸로~

2.

친구가 딴 친구 생일 파티를 자기 집에서 준비를 하겠다고 도와달랜다. 그래 밖에서 각자 사먹으면서 돈쓰는 대신 이렇게 모아서 하면 좋겠네~

난 뭘 준비할까 했더니 마실 술만 들고 오랜다.

캐나다가 술이 비싸니 술을 사오라고 하는 구나.

술은 가져 갈껀데 음식은 포틀럭이 낫지 않아?

너 혼자 준비하면 힘들잖어~

혼자 하시겠단다. 걱정말란다.

오옷 그 친구를 그렇게 좋아했다고?

생일 당일 세팅을 도와주러 흔치 않게 일찍 도착했다.

한국인 답게 준비된 음식을 먼저 스캔했다.

샤쿠테리( 햄과 치즈 크레카 따위를 나무도마에 썰어 놓은 것), 나초칩과 디핑소스, 야채스틱트레이(마트에서 종류별로 썰어서 파는) ,슈퍼마켓산 설탕범벅 생일 케익

끝!

정말 끝! (다른 테이블이 더 있나 찾아봤으나 끝끝!)

장난해?( 이럴꺼면 음식을 더 들고 오라하지, 이게 뭐야?)

생일 파티라면서 가스레인지 한번 안켜고 이렇게 심플하게 준비한다고?

생일 당사자가 도착후 각자 들고 온 와인이나 맥주로 건배를 하고 잡담을 하고 누군가가 불붙인 초가 얌전히 꽂힌 케익을 들고 나오면서 축하송을 불러댄다.

생일 당사자는 감동한 듯 눈물이 글썽글썽이고

나는 생일 케익 큰 덩어리를 먹고도 아직 배가 고팠다.


3.

내 생일이었다.

캐내디언 친구가 내 생일이라고 술을 사준단다.

'어 이런...' 일이 하며 바에 따라갔다.

맥주를 주문해준다.

이럴 때 난 뻘줌해지기 시작한다.

안주를 시키고 싶으나 사준다고 한 사람이 시킬 생각이 없어보인다.

내가 내 돈 내고 먹고 싶으나 사준다고 한 사람이 멋쩍어 질까봐

주문을 망설이게 된다.

내 생일을 매우 축하한다고 짠을 했고

나는 배가 고팠다.

내가 칩이라도 시킬까 했더니 시키란다.

물론 그 칩은 내가 계산한다고 하고 시켰다.

그 친구는 정말로 술을, 술만, 사주었다.

집에 와서 친구들이 준 선물을 풀어봤다.

직접 만든 블루베리쨈, 수놓은 컵 받침, 이상한 향의 비누

준 사람의 마음을 살짝 의심하게 되는 선물이 꽤 있다.

그 동안 내가 보낸 선물 리스트가 머리에서 교차비교 되기 시작된다.  

나보다 훨씬 더 큰 집에서 다들 외제차를 모는 친구들인데

뭘까....고맙긴 한데 너무 고맙지 많은 않은 이 느낌은...


4.

정말 친하게 지내는 아들 친구네 할아버지가 팔순 생일 파티를 한단다.

큰 맘 먹고 캐나다에서 특히 더 비싼 인삼제품을 장만했다.

선물에 힘쓰지 않기로 했으나 팔순이니까, 팔순이자나...

캐내디언 할매 할배들로 꽉 찬 바에 들어서니

역시나...선물은...선택이었다.

혹시나...봉투로?... 안보이는데....

팔순상 이런 것도 없었다. 한 30-40명이 온 듯한데

테이블에 풍선을 제외하고 세팅된 것은 없었다.

기본 안주도 없다.

역시 내 음식은 내가 시키고, 내 술은 내가 시킨다.

주최측의 무성의함이 스멀스멀 느껴지려는 순간  

그래도 팔순인데 하면서 뭔가를 기대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지켜보니..

다들 축하한다며 생일자에게 술을 한 잔씩 사주고 있었다.

자기 음식 사먹으며 자기 술 사먹으며 팔순 할배에게 술을 사주는 팔순잔치...

이렇게 쉬운 팔순 잔치는 맨날 해드리겠다고 속으로 꽁시랑 꽁시랑 거렸다.


5.

지금은 아니지만  아들이 고등학교때 생일이었다.

아들에게 생일 파티를 어케 하겠느냐 물었다.

그동안 차를 숱하게 얻어 타고 다녔으니 공짜로 라이드 해준 애들에게 밥이라도 한 끼 사야되지 않겠냐고 물었다.

얼굴에 '왜 내가 사야되지?" 라는 표정이 써진다.

엄마대신 운전해준 애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싶으니 엄마가 사겠다고 했다.

얼굴에 "왜 엄마가 사는거지?" 라는 표정이 함께 써진다.

운동 선수들이니 좀 많이 먹겠나 싶어 한국 바베큐 뷔페에서 만나자고 했다. 시켜주고 계산해주고 난 먼저 왔다.

밥을 다먹어갈 때쯤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마틴이 자기 먹은 건 자기가 계산하겠다는데 그렇게 하라고 할까?"

" 다 계산했다고 해"

" 왜 계산을 했는지 묻는데"

"생일이라서 한 턱 낸다고 해"

"왜 엄마가 계산했는지 이해를 못하는데?"

"한국 스타일이라 그래, 그리고 니가 애들에게 2차로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와"

"왜에?"

( 아들 친구들을 만나서 아이스크림이나 음료를 사주겠다고 하면 자기도 돈이 있다는 말을 주로 들었다.

 한국에서 아들 친구들과 편의점에 가면 계산은 당연히 어른이 내야 한다고 믿던 난 10살 짜리가 본인도 돈이 있다고 내 제안을 거절할 때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었다.)


캐나다 사람들은 한국 사람보다 음식에 신경을 확실히 덜 쓴다.

초대를 할 때도, 갈 때도, 축하를 할 때도 해 줄때도

뭔가 부족하고 위가 허한 순간이 참으로 많았다.   

무엇을 먹고 마시는 데는 좋은 말로 쿨해 보이는,

내 입장에선 이거 차려놓고 사람을 부르나 어이가 없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시간이 지나

더 진하게 노랗고, 매우 까맣고, 더 까만 분들을 만나게 되면서

음식이 터질듯이 많은 초대도,

하루 종일 얻어먹는 파티도,

분에 넘치는 생일 상도 받아보았으나

축하하는 마음을 음식으로 보답하고

고마운 순간에 음식을 건네며  

전생에 굶어 죽었었나 싶을만큼

음식으로 애정을 표하는 내가

여기 사람들에겐 이상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 입장에선 음식이 주가 아니기에 '

“사람' 혹은 '생일' 혹은 '축하'에 방점을 둔 자리에

내 눈은 항상 분주히 음식의 가짓수와 양을 체크하고 있었으니 허허허허허


캐나다 사람들 중에서도 쿠키와 초콜릿 등으로

감사인사를 전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여기저기에서 직접 구운 쿠키가 날아들기도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적당한 선물과

그들이 선호하는 적절한 생일축하는

식탐 많은 한쿡 아줌마인 나에겐

아직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수학문제처럼

늘 풀다 만 숙제같이 느껴진다.


tip

한국 사람들이 확실히 선물의 퀄러티에 민감하고

캐나다 사람들이 확실히 선물의 퀄러티에 관대하다.

요건 매우 학실하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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