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 어쩔 수 없다

by 바다유희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는 머리를 잘랐지

치마저고리 벗어던지고

바지저고리 입으셨지

그날부터

지게를 지고

나무꾼이 되었네


들판에

소 몰고 가 쟁기질 하시더니

여러 해 지난 어느 날

남자가 되었네


손마디는 거칠어지고

장딴지는 훈장처럼 단단해졌지

농부의 엄지발톱은 무뎌져 가지


막다른 궁지로 몰리면

사람도 거짓말처럼

여자가 남자가 되고야 마는

별난 세상을 나는 보았네

어미가 자식 앞에서 못할 게 없는 그 세상을

나는 보고야 말았지


청춘의 마흔 어느 날

여자였던 내 어머니는

어린 막내딸이

그 청춘의 마흔 어머니가 되어서도

끝까지 여자로 돌아오지 못하고

살아서도

죽어서도

엄마는 엄마로 남아서

끝내 여자가 되지 못했네

그림/문선미:제목/그래도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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