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가까온 시간에 현관문을 살그머니 열고 들어오는 남편. 그 남편에게 나는 평소와는 달리 정색을 하고 극존칭을 써가며 남편에게 물었다.
얼큰히 술에 취한 남편은 몸을 비틀거리다 움찔 놀란다. 벌겋던 얼굴색이 금방 파랗게 변하면서 현관에 서있는 내 얼굴을 뚫어지도록 빤히 쳐다본다. "나~, 나란 말이야! 자기 남편도 몰라~" "처음 보는 아저씨인데요. 누구세요?" "정말 왜 그래? 당신! 나 술 취하지 않았단 말이야"
ㅋㅋㅋ... 겉모습과는 반대로 내 가슴속에 있는 또 하나의 나는 남편의 황당한 몸짓에 웃음보가 터져 죽는다고 킬킬대고 있다. 그렇다. 나의 차디찬 존댓말이 순진한 남편에겐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을 아프게 찌르는가 보다. 저렇게 당황한 표정을 짓는 걸 보면.
"써글 년. 또 지 냄편을 잡는구먼!" 이럴 때마다 불쑥 불쑥 나타나 한 바가지 가득 욕설을 퍼부었던 친정 엄마는 오늘따라 웬일인지 나타날 낌새가 도통 보이질 않는다. 허구한 날 사위 편에만 서시던 엄마도 오늘만은 내 편 쪽에 서서 나의 행동만을 살며시 지켜보시는 것 같다.
보세요. 엄마! 당신 사위가 쩔쩔매는 저 표정이 보이시죠? 그 옛날 엄마가 술 취해 들어오시는 아빠를 진즉 이렇게 다뤘어야지요. 때늦었지만 오늘은 딸에게 지혜를 배우세요. 왜 아무 말씀도 없으세요? 엄마!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