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한식대첩
유럽의 마트는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무엇보다 한국에 비해서 채소와 과일 가격이 저렴했다. 특히 식품 코너와 유제품 코너를 구경하는 게 제일 재밌었는데 세상에 그렇게 많은 종류의 치즈가 존재하는지 몰랐다. 초콜렛도 종류가 엄청 많았다. 매대를 꽉 채운 초콜렛과 젤리, 군것질 종류들을 구경하고 (정작 사지는 않았다) 바게트와 우유와 하몽과 과일 몇가지를 사곤 했다. 유럽의 외식 물가는 사악하니까 이게 나의 생존 방식이었고 간식으로 아주 훌륭했다. 바게트에 하몽과 치즈를 넣어 랩으로 싸서 가방에 가져다녔다. 이건 순례길에서부터 시작한 것이었는데 돈도 아끼고 시간도 아끼는 일종의 가성비 한 끼였다. 파리에서는 거의 하루를 미술관, 박물관에서 지낼 때가 있었는데 하루 종일 작품 감상을 하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좋았고 날씨가 좋으면 공원에서 노래를 듣거나 책을 읽으면서 먹기도 했다. 굳이 비싼 식당에 가지 않아도 되고 자리를 옮기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물론 매일 같이 하몽을 넣은 바게트를 먹은 건 아니었다. 밖에서는 외식 대신 빵을 먹었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와 밥을 지어 먹었다. 가장 자주 먹었던 건 카레였다. 소울푸드기도 하지만 몇 가지 재료가 없어도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음식이었다. 버섯과 당근을 썰고 냄비 밥을 짓고 카레 가루를 풀어 보글보글 끓이기만 하면 됐다.
한여름 스페인에서는 주로 납작 복숭아를 많이 먹었다. 한국에서 먹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면 매일 먹었을 텐데........ 아삭- 물컹 사이의 그 식감과, 입안으로 흘러들어오는 풍성한 과즙과 달달한 향기....아 납작 복숭아.... 한국과는 달리 유럽의 어떤 광장 같은 곳에는 과일을 가득 실은 리어카들이 많았다. 주로 딸기와 산딸기, 블루베리, 바나나, 포도 종류들이었는데 그 과일들은 종이로 된 상자에 들어있었다. 가끔 상큼한 과일이 땡길 때면 블루베리와 딸기, 우유를 사서 식사 대용으로 먹었다. 아무래도 혼자 여행하는 사람은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비싼 물가는 둘째치고 식당을 찾는 일과 그곳까지 찾아가는 일과, 또 그곳에서 메뉴를 고르는 일과, 어쩌다 실패하면 괜히 돈만 낭비한 것 같다는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게다가 여행 4개월차가 되니 뭐든 질리고 그 맛이 그 맛이라는 게 가장 큰 단점이었다. 맛있긴 한데 심심한 맛, 뭔가 부족한데 뭐가 부족한지 모르겠는, 차라리 집에서 카레를 끓여 먹는 게 나을 것 같은, 분명 맛집이라는 피자 가게에 왔는데 피자스쿨이 더 맛있는 것 같은 그런 맛...... 그건 아마 혼자였기 때문일까? 자극적인 맛이 그립기도 했다. 맵고 짜고 단거. 그래서 중국 음식점에 자주 갔다. 적어도 그곳엔 새우를 넣은 볶음밥과 매운 소스를 곁들인 두부요리가 있었다. 뜨거운 국물이 필요한 날은 평점이 좋은 베트남 음식점에 가서 쌀국수를 먹었다. 어느날, 나는 중국 식당, 베트남 식당을 전전하며 끼니를 때우다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도시를 옮기는 날은 한식당에 가자.
'zum koreaner ' 는 뮌헨의 한식당이었다. 도시를 옮길 때 한식당에 가자라고 스스로 규칙을 만들기도 했지만 그날 만큼은 집밥이 그리웠다. 뭣때문인지 모르게 몸이 축 쳐지고, 기운도 없고 시름시름 앓았던 사람처럼 얼굴에 생기도 없었다. 나는 이 컨디션 저하의 원인이 밥심에 있다고 보고 한식당을 찾았다. 파리에서도, 프라하에서도, 비엔나, 바르셀로나에서도 그랬지만 우선 한식당에 가면 한국어를 들을 수 있다는 점과 한국인 사장님이 있다는 것이 아주 큰 위안이 되었다. 그들이 직접적으로 내게 해주는 것은 없지만 (그들은 내가 지불하는 것에 동일한 서비스를 해줄 뿐) 묘한 안정감이 들었다. 어색한 영어를 쓸 필요도 없고 메뉴를 설명해달라 말할 필요도 없고 내 주문이 들어간건지, 혹시 내 말을 잘 못 알아들은 건 아닌지 불안해 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딱 하나의 고민이 있었는데 그건, 이 가게의 모든 한식을 먹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오마이갓, 동행이라도 구해서 올 걸 그랬나? 카페에다가 대문짝만하게 '오 장기 여행자들이여 우리 한식 정복에 나섭시다' 하고 글이라도 쓸걸 그랬나? 그랬다면 비빔밥도, 볶음밥도, 김치전도, 잡채도, 제육볶음도, 된장찌개도 다 먹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쉽게도 나의 원픽은 제육덮밥이 되었다. 대학가라 그런지 젊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외국인들도 한식을 자주 먹는 모양이었다. 한식당이라고 한국인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이 식당이 유명한가? 얼마나 맛있는지 보자' 음식을 기다리며 괜히 옆 테이블을 힐끔거렸다. 그들이 일어설 땐 음식을 남겼는지 아닌지, 싹쓸이하고 갔는지 아주 설거지를 하듯 접시를 비웠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시선을 바깥으로 주었다. 밖은 화창했다. 사람들은 가게 입구를 쓰윽 둘러보다 제 갈길을 가거나 사진을 찍고 무심히 지나가고, 어떤 사람은 목적지를 정하고 온 것처럼 성큼성큼 걸어 빈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때 혼자 온 한국인이 보였다. 여행객일까? 유학생일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 그는 내 앞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내가 주문한 제육덮밥이 나왔다. 윤기가 흐르는 흰 쌀밥과 은은한 불향이 감도는, 양념이 잘 어우러진 고기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축복의 맛이었다. 제육덮밥의 반을 비웠을 때 앞자리의 한국인도 무언가를 먹기 시작했다. 한그릇을 다 비우고 그 식당을 나오면서 과도한 포만감과 따뜻한 햇살에 눈이 나른해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었다. 나는 뮌헨 대학교를 빙둘러 산책을 하다가 중고서점에 들러 책 구경을 했다. 먼지가 가득 앉고 빳빳해진 책 표지와 누렇게 색이 변한 종이에는 독일어로 가득했다. 나무로 된 책장에는 무질서하게 책이 가득했는데 그 중 헨리밀러라고 적혀 있는 책이 눈에 띄었다. 문득 치앙마이 도서관에서 읽었던 헨리밀러의 북회귀선이 번뜩 생각났다. '헨리밀러가 또..?' 나는 마법에 빠져든 사람처럼 그 책을 들었다. 검색해보니 영어로 Nights of love and laughter라고 번역되는 스릴러, 모험물의 소설이었다. 파파고는 웃다, 사랑하다, 밤중에라고 직역해주었는데 대충 사랑과 웃음의 밤으로 번역되는가 보았다. 그런데 사랑의 밤과 웃음이 맞는 번역이 아닐까? 아무튼 사랑과 웃음이 밤이든, 밤과 웃음의 사랑이든 이런 이름으로 출간된 책은 여태 보지 못했다는 걸 떠올렸다. 바로 그때, 헨리 밀러라는 단어를 읽고 독일어로 빽빽히 쓰여진 문장들을 봤을 때 나른해진 눈동자가 또렷해지면서 눈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또 하나의 가능성, 단서, 희망, 존재, 이유. 이러한 단어들을 떠올리면서 뮌헨 대학을 지나쳐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