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여름과 영하의 이르쿠츠크

꿈의 정원과 기적의 호프브로이 맥주 1

by 강양


한국의 추석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 가족들에게 연락이 와있었다. 도미토리 구석진 자리에서 이어폰을 끼고 전화를 받았다. 다행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한창 영상 통화를 한 후 샤워실로 가는데 그 옆 침대에 이불을 머리까지 덮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8인 도미토리였는데 기역자 구조로 되어 있는데다가 아무런 인기척이 들리지 않아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만약 내가 자고 있는데 시끄러운 통화 소리가 들렸다면....... 정말이지 짜증났을 것 같다. 아니야, 오히려 그런 것 쯤은 감수하는 사람들만이 오는 곳이 바로 8인 도미토리일까? 상대방의 잠꼬대와 밤낮 없이 열고 닫히는 문소리를 성가시게 생각하지 않고 예고 없이 울려 퍼지는, 국적 미상의 통화 소리를 소음으로 인식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저 침대에 있는 사람일지도. 나는 얼른 문을 닫고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씻었다.


샤워를 마치고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나왔다. 밖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새 잊어버리고 문을 쾅 닫았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나는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놀랍게도 그 침대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치 사람 형체와 흡사하게 이불이 개켜 있었고 창문은 열려 있었다. 좀 전에 사람이 있긴 했었는지 의심이 들었다. 헛것을 봤나? 분명 헝클어진 머리칼을 본 것 같았는데. 그런데 씻지도 않고 나간건가? 내가 너무 오래 씻었던가? 갖가지 생각이 들었다. 창문으로 따스한 햇살과 기분 좋은 바람이 살랑였다. 기분 좋은 것이 나인지 바람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창문 너머의 풍경이 말해주고 있었다. 창밖에는 유럽풍의 건물과 길게 뻗은 가로수들이 잎을 흩날리고 있었고 자전거가 따릉거리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나는 얼른 머리를 말리고 외출 준비에 서둘렀다. 오늘 뭐 입을까 하는 것은 일상에서나 여행에서나 여전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고민은 사치였고 할 필요도 없는 것이 배낭에 든 옷이 몇 개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얇은 그레이 톤의 니트와 흰색 린넨 바지를 입었다. 모두 파리에서 산 것이었다. 귀중품을 가방에 챙기고 나머지 짐은 락커에 넣고 문을 잠갔다. 푸른색 카페트가 깔린 복도를 지나 1층으로 내려갔다. 로비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혹시 여기에 나와 같은 방을 쓰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나는 가볍게 그들을 스캔하고 회전문을 밀고 나왔다. 날씨는 한국의 가을 날씨와 비슷했다. 한낮은 따뜻하고 덥기도 하고 해가 지면 조금 쌀쌀했다. 가볍게 산책하기 좋은 날씨, 아이스크림을 먹기 좋은 날씨, 테라스에 앉아 맥주 마시기 좋은 날씨. 나는 카메라를 어깨에 걸치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여유있게 걸었다.


몸이 왜 이렇게 가벼운가 했더니 나는 목적지도 없었고 누굴 만나야 한다거나 꼭 해야 하는 일도 없었다. 무계획 인간에게서 나오는 가벼움이란 풍선보다도 깃털보다도 가벼웠다. 오미터 쯤 지나서 나오는 횡단보도에서 걸음을 멈췄다. 독일 사람들은 질서에 철두철미한 사람들이라고 하던데 과연 헛소문이 아니었다. 뛰어서 두 세걸음에 닿을 만한 작은 횡단보도에서도 신호를 기다렸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했던가. 취미가 무단횡단인 나는 (그렇다고 무턱대고 차가 오는 길에서 무단횡단을 하진 않지만) 발이 무거운 사람처럼 잠자코 서있었다. 숙소를 기점으로 두 시 방향에 펠로우 커피 fellow coffee 라는 카페가 있었다. 큰 골목의 코너에 있는 그 카페는 넓은 통 유리창으로 되어 있었고 일부는 창을 열어두어 지나갈 때마다 눈길이 가는 곳이었다. 은은하게 풍겨오는 커피향과 스피커에서 흐르는 잔잔한 멜로디와 에스프레소를 뽑아내는 기계소리가 자연스레 조화를 이루어 나같이 커피 애호가들은 들어가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가 뿜뿜했다. 나는 처음 가는 카페에서는 무조건 라떼를 주문하는 습관이 있었다. 따뜻한 라떼 한 잔에서 그 카페의 분위기와 맛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가 맛있으려면 에스프레소의 풍미가 좋아야 하고 라떼가 맛있으려면 그 에스프레소와 우유의 조합이 중요하다. 우유는 너무 뜨겁지도, 너무 미지근하지도 않게 약 칠십도로 데워져야 하고 그 위에 적당한 밀도의 거품이 있어야 한다. 그 거품은 너무 거칠어서 마치 비눗방울 같아서도 안 되고 스팀이 약해 점성이 낮은 액체여서도 안 된다. 아무튼 그런 조건이 펠로우 커피에 있었다. 입에 살포시 닿은 커피가 식도를 타고 부드럽게 혈관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기분. 이런게 커피 수혈인가. 나는 커피를 몇 모금 마시고 아이패드를 꺼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매주 목요일마다 독자들에게 글을 보내야 했다. 혼자서 벌이고 시작한 주간강양 프로젝트는 바르셀로나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정확히는 여행에서 돌아온 후 부산에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아침 첫 끼를 맛있는 라떼로 하는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고 공복 커피가 몸에 좋지 않다는 말을 무색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힘이 있었다. 나는 그 힘으로 식사 몇 끼를 대체했고 단백질과 탄수화물, 지방 하나 없는 물질을 동력 삼아 글을 퇴고 하고 길을 걷고 하루의 중반까지 갈 수 있었다. 사실 우유가 들어갔으니 단백질 하나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지만. 펠로우 커피를 나와서 향한 곳은 마리엔 광장이었다. 그곳에는 없는 게 없었다. 스타벅스와 유명한 브랜드의 옷가게, 서점, 피자 가게, 아이스크림 가게, 빈티지 숍들이 구석구석에 있었다. 사람들은 오픈 테라스에서 맥주나 커피를 마시며 앉아 있었고 강아지를 산책 시키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보였다. 나는 큰 광장을 지나 뮌헨 대학가로 향했다.


뮌헨 대학 오른편에는 영국 정원이라는 큰 공원이 있었다. 뮌헨 중앙을 흐르는 이자르 강이 있는 영국 정원은 크기가 어마어마한데, 뉴욕의 센트럴파크나 런던의 하이드파크 못지 않은 규모다. 편도 거리가 약 6키로 되는 영국정원은 사실 전혜린이 좋아하고 사랑한 장소였다. 전혜린은 내가 스물 중반에 알게 되었는데 뮌헨대학교에서 유학을 지내고 한국으로 돌아와 몇 개의 수필집을 낸 작가였다. 당시에 나는 그녀의 글 속에 등장하는 슈바빙 거리와 영국 정원을 읽으면서 언젠가부터 뮌헨을 꿈꿔온 것이었다. 뮌헨 대학교에 다다르니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학생들일까? 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들을 스윽 쳐다봤다. 유럽에 있다는 분위기에 취해서 그런지 그들은 왠지 자유로워 보였다. 학점과 과제로부터. 학비와 취업 스트레스로부터. 마치 하이틴 영화 속 주인공들이 튀어나와 연극을 하는 것 같았다. 노랗고 푸른 긴 머리와 짧은 바지와 흘러내릴 듯한 긴 바지, 가죽 자켓과 반팔을 입은, 계절을 감히 예측할 수 없는 옷차림을 한 젊은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세상인 듯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문득 나는 이십대 초반의 학부 시절을 떠올렸다. 오전 첫 수업부터 시작해 학식을 먹고 학교 밑에 있는 단골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 아웃한 후에 그대로 강의실에 앉아 의자와 한 몸이었던 시절. 기본 20학점이 넘는 강의를 듣고 방학에는 천 시간의 실습을 채우기 위해 병원을 오가며 학교 과제와 실습 과제, 봉사 시간을 채우던 그 시절. 중간, 기말고사와 국가고시를 치르기 위해 보충 강의를 들었던 시절. 간호대생의 학부시절은 눈물나고 서러웠다. 하지만 나는 그 눈물나는 시절을 지나 고통과 같았던 첫 사회생활을 끝내고 지금 여기, 뮌헨에 있지 않은가. 현재가 중요한 법이지. 과거는 이미 지나간 시간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