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양 Sep 29. 2022

무해한 티끌의 세계

오늘은 여기까지 걸을게요 

다시 스페인으로 왔다. 이것 역시 삼 년 전에 내가 바랐던 일 중 하나였다. 삼 년 전 첫 직장을 정리하고 떠난 여행에서 첫 순례길을 걸었고 그리고 지금 두 번째 직장을 마무리하고 다시 길 위에 올랐다. 


올해는 내게 아주 도전적인 한 해고 여태 내가 쌓아온 것을 무너뜨리는 해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일련의 과정에 순례길에서 걷는 이 길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출발 전 지인들에게 스페인에 다시 간다고 하니 대부분은 놀라는 반응이었다. 


'거기가 그렇게 좋아?' 


'왜 걷는거야?'



글쎄, 정말 왜 걷는걸까. 딱히 생각해 본 적도, 대답을 알고 있지도 않았다. 다만 나는 두 번의 순례길에서 어떤 것을 느낄 수 있는지 나 스스로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너무 더워서 힘이 들었다. 결국 끝까지 걸어서 로그로뇨까지 골인했다. 날씨도 덥고 발목도 아픈 것 같고 가방은 무겁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는데 주로 든 생각은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는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걸었다.' 


-2019.6.28 







삼 년이 지났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 높은 산맥이 낮아지는 것도 아니었고 여전히 건조하고 뜨거운 여름이 거기에 있었다. 꽤 힘들었던 그때의 기억은 삼 년이라는 시간에 미화되고 단단히 나를 착각 속에 빠뜨렸다. 삼 년 전 나는 사십 도의 태양이 이글거리는 길에서 쓰러질 뻔 했지만 내 발로 다시 찾아왔다. 시간이 내 기억을 조작했고 덕분에 다시 순례길에 오를 수 있었다. 여전히 나는 순례길을 시작한 첫날부터 생각했다. 


'여기 왜 또 온거야?' 



그리고 피레네를 넘으며 이곳의 높이를 다시 실감했다. 아찔한 높이의 산맥, 구불구불 이어진 산길, 구름이 내 발 아래에 있는 기이한 풍경. 이곳은 어디하나 변한 구석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잊고 있었던 것들, 피레네의 공기 피레네의 자연. 너무나 맑고 깨끗해서 티끌 하나 존재하지 않는. 존재하더라도 그건 티끌이 아닐거라고, 피레네는 내가 아는 무해한 것들 중 가장 크고 또 실존하는 것이었다. 이곳은 어쩜 이렇게 똑같을까. 


피레네에는 시간의 흐름과 자취, 작은 변화라고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마치 누군가가 그린 그림 속으로 들어온 기분. 나는 삼 년 전 같은 마음으로 현재의 피레네를 올랐다. 그리고 광활한 대자연 속에 놓이는 경험을 다시 한 번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걸었다. 



피레네를 넘고 스페인 국경으로 들어온 지 일주일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매일 이십 키로가 넘는 길을 걷고 있다. 여행 같기도 하고 극기 훈련과도 같은 일정은 나를 행복하게하고 또 고단하게 하기도 한다. 행복과 고단은 웬수지간처럼 저만치 떨어져 있는 상태가 아니라, 나처럼 함께 걷는 존재였다는 걸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었다. 길을 걷는 나는 고단한데 행복하다. 















                    

작가의 이전글 어떤 일은 운명이 되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