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을 빙자한 다짐의 글
_ 간단히 말하자면, 전문가 또는 애호가가 되어야겠다는 이야기.
어떤 하나에 푹 파묻혀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부러워지는 요즘이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그런 게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비해 달라진 특징들 중 하나다.
그때는 뭔가 하나에 꽂혀있다고 하면 꽤 깊게 꽂혀있었던 것 같은데.
아주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면 그게 피아노였던 것 같고, 중고등학생 때는 솔직히 그런 게 없었던 것 같고, 대학생 때부터는 확실히 영화였다.
하지만 아주 어렸을 때 피아노에 꽂혀있어도 피아노 전공자가 되고 싶은 마음도 딱히 없었거니와, 일단 그전에 그런 마음이 있어도 그럴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중고등학생 때는 도대체 꽂혀있던 게 뭘까 싶어서 조금 더 생각해 봤는데, 굳이 하나를 꼽자면 음악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음악에 꽂혀있어도 그 음악으로 뭔가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이건 정말- 없었고, 그냥 듣는 음악의 범위를 넓혀가며 혼자 신나 하고 어떤 노래에는 감동받고 하며, 세상에는 이런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 덕분에 ‘듣는 사람’으로서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뿐이다.
피아노에 꽂혔던 건 (엄마가 생각했을 때)응당 그만할 나이가-몇 살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그래도 취미로 하는 것 치고 꽤 오래 다녔던 것 같다- 되었을 때 그만둬야 했고, 그래서 지금은 피아노 치던 감각을 거의 다 잃어버린 상태일 수도 있다. 음악에 꽂혔던 건 다행히도 그만두거나 하는 문제와는 상관이 없어서,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하지만 대학생 때부터 이야기가 약간 달라진다, 이런 문제는. 그러니까, 약간 상관이 있어진다.
대학생 정도가 되면 이제는 정말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라는 생각을 해야 하며, 그런 기대를 받기 때문이다. 그 기대는 남들이 당연히 남들이 나에게 하는 것이기도 하고, 내가 내 자신에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도 그랬는데, 나는 내가 확실히 꽂혀있는 영화로 뭔가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만큼 영화를 좋아했다. 다른 것에 새로이 꽂히지도 않았고, 영화에 관심이 꺼지기에는 영화의 매력이 정말 끝도 없었기 때문에, 계속 그 생각을 갖고 살았다. 그런데, 그 생각의 다른 한 켠에는 정반대의 생각이 꽤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런 느낌이었다.
나는 영화인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될 것 같아.
말하자면 나는 영화에 꽂혀있으면서, 영화로 뭔가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럴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된다는 저 생각에 꽂혀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좀 끈질기게 모른 척했지만. (하지만 끝까지 모른 척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은 한다.)
생각해 보면, 끈질기게 모른 척한 결과가 좀 싱겁다. 결국 저 굳건한 생각의 존재를 인정하고, 현실적으로 직업과 연결할 수 있는 다른 새로운 뭔가를 찾아야 한다는 고민을 하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각종 분야의 전문가들 또는 전문가급 애호가들을 부러워하며, 내가 과연 꽂혀있는 게 무엇 일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사실 꼭 ‘꽂혀있는’ 무언가로 돈을 벌며 사는 직업인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정말 문제는, 나도 그걸 아는데 그게 안된다는 것이다. 꽂혀있는 것, 아니면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무언가로 돈을 벌며 사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아직도 품고 있다는 게 진짜 문제이다. 근데 일단 지금 후자로는 잘 풀리지 않고 있고, 그렇다고 전자는 대체 그게 뭔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하나에 푹 파묻혀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부럽다고. 심지어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파묻혀있다가 그걸 꾸준히 먹고 마시면서 감각과 능력을 이만큼 키워낸 사람들.
그래서 최근에, 내가 좋아하면서 잘할 수 있을만한 것들을 생각해 봤다. 몇 년 전에 비해 달라진 특징들 중 하나가, 지금은 푹 파묻혀있는 게 없다는 것이지만 꽤 오랫동안 꾸준히 좋아하면서 잘할 수 있을만한 것들은 있기 때문에, 생각하는 건 쉬웠다.
간단히 말하자면 글, 티, 향. 정말 말 그대로 글과, 마시는 차, 향기 할 때 그 향. 내 생각에 이중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있는 ‘글’은 일단 노력은 하고 있으니 그렇다 치자. 남은 건 차와 향이다.
그런데 또 문제는 (이게 주된 문제이다), 이걸로 내가 새롭게 무언가를 진지하게 시작할 만큼 꽂혀있는가 하면 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이게, 이렇게 글을 쓸 만큼 요즘의 내가 계속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다. 분명히 좋아하긴 하는데, 그리고 이걸로 뭔가를 한다면 잘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그걸 확신하기에는 내가 그만큼의 전문가는 당연히 아니거니와 그만큼의 애호가까지도 아닌 것 같다는 것.
그러니까, 예전에 비해 좋아하는 건 더 많아졌는데, 좋아하는 정도는 각각 조금씩 줄어있다.
그래서 계속 지겹지만, 다시 이런 생각으로 돌아온다.
좀 여유 있을 때 시작해 볼 수는 있어도 지금은..
참 문제다.
자신감 부족에 추진력 부족이 수시로 만나는 사람은 보통 이럴 텐데, 지금까지는 항상 그래왔어도 이제는 그러면 안 되는 시기에 놓여있으니 그게 정말 문제인 거다.
이게, 내가 글을 쓴 이유였다. 내가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전문가급의 애호가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한탄을 하기 위해. 올해가 이제 세 달 정도가 남아서인지, 이 문제가 점점 아주 많이 위로 또 위로 올라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찬바람이 불면 불수록 점점 드러나 보일 것만 같다.
*
근데 좀 무섭긴 해도 그 무서움이 등을 떠미는 게 생각보다 나를 극도로 불안하게 만들지는 않는 것 같다. 이것 또한, 몇 년 전과는 달라진 점들 중 하나다. 그러니까, 내 살길을 찾는 것에 (예전과 비교하자면) 조금은 더 적극적이게 된 것 같다. 몸으로는 아니지만 일단 마음으로 말이다. 글과 관련된 무언가를 해보면서 조금 숨통이 트이는 걸 느꼈던 일 년 전의 경험 덕분에 나도 모르게 그런 걸 좀 알게 되었나 보다.
오, 새로 시작하면 그게 정말 시작이 될 수 있긴 하구나?
이게, 내가 글을 쓴 또 다른 이유였다. 좀, 자신감과 추진력을 조금이나마 높이 올려보기 위해서.
티와 향에 관련된 무언가를 슬쩍슬쩍 찾아보고, 관련된 사람들의 인터뷰를 읽어보고, 관련 책을 찾아보고, 일단 그러고 있다. 무언가를 시작하게 될 수 있을지, 아니면 그전에 대차게 포기하게 될지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일단 꽤 진지하게 찾아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이 글을 올리고 난 뒤 아주 가까운 미래에, 예상가능한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되면 그것도 당연히 좋겠고, 예상하지 못했던 분야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이 되어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보려고 한다. 이게, 이 글을 쓴 정말 마지막 이유이다.
이렇게 글로 써놓으면, 양심에 찔려서라도 열심히 해보겠지, 그게 뭐든. 그러다 지금 내가 좋아하고 있는 것들 중 무언가 하나와 관련한 글을, 이 플랫폼에 꾸준히 올릴 만큼이 된다면, 정말 스스로 인정하는 애호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글을 올리는 사람이 된다는 게, 생각해 보면 충분히 현실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으로,
내가 관심을 가지는 주변의 것들을 자세히 살펴보자는, 한탄을 빙자한 다짐의 글이었다.
자, 분명 내 주변에 있어!
그러니까 일단,
벌써 9월이 다 가긴 했지만,
공기가 서늘해지는 속도에 기죽지 말아 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