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렌과 비키의 빨간 구두가 겹쳐질 때
_ 영화 <The Red Shoes> (1948)의 결말을 포함한 줄거리, 그리고 개인적인 해석과 감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화 <The Red Shoes>에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일단 세 명의 주요 인물들만 말하자면, 먼저 주인공 ‘빅토리아 페이지(이하 비키)’는 능력 있고 젊은 여성 발레 무용수이고, ‘줄리안 크라스터(이하 줄리안)’는 그를 가르치던 교수가 그의 곡을 표절할 만큼 능력 있는 작곡가이자 지휘자이다. 그리고, ‘보리스 레먼토프(이하 레먼토프)’는 이름 있는 발레단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다 자신이 하는 예술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레먼토프 발레단의 공연을 눈을 반짝이며 보던 비키는 발레단에 들어가 스타 무용수로 급성장하고, 줄리안 역시 발레단의 작곡가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 창작 발레 작품의 음악을 만들어 인정을 받게 된다. 레먼토프는 이미 훌륭한 발레단을 이끄는 사람이고, 비키와 줄리안의 능력을 보고 발레단에 들어오게 할 만큼 예술가들의 능력을 높이 사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그 열정이 조금 어긋나 있다.
그는 예술가라면 오로지 예술에 살고 죽어야 한다는 태도를 가지고 다른 예술가들을 대한다.
비키가 레먼토프 발레단에 들어오기 전에 스타 발레리나였던 ‘이리나’가 결혼을 하게 되자 ‘무용수가 사랑 같은 불확실한 안정감에 기대려다 보면, 절대 좋은 춤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이리나는 이제 끝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리나를 대신할 무용수로 비키를 선택하고, 비키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노력해서 발레단의 스타 무용수가 된다. 그리고 안데르센의 동화를 원작으로 해서 만든 발레단의 창작 발레 작품의 주인공을 맡게 되고, 이 작품의 음악을 담당하는 줄리안과 안무가 ‘그리샤’, 그리고 남자 무용수 ‘이반’ 등과 함께 호흡을 맞춰나간다.
발레 ‘The Red Shoes’는 성공한다. 하지만, 비키는 어느새 줄리안과 연인이 되어 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레먼토프는 곧바로 비키와 줄리안의 능력을 깎아내린다. 그들이 ‘멍청한 사랑놀음’ 때문에 예술성과 능력을 상실했다는 말을 하며 줄리안을 먼저 내쫓는 것으로 그들을 떨어뜨려 놓으려 하지만, 혼자 남아있을 수 없던 비키는 줄리안과 함께 발레단을 나온다.
비키는 발레단을 나오면서 춤을 출 기회가 확 줄어들고, 당연히 춤에 대한 갈망이 커진다. 줄리안도 직장을 잃었고 분홍신 음악에 대한 권리도 빼앗긴 상태에서, 계속 집에서 음악 작업을 하며 다음 기회를 준비한다. 그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사랑하며 잘 지내지만, 마음속에는 각각 춤과 음악에 대한 열정이 불태워지지 못한 채 끓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은 원작 동화와 영화 속 발레 작품처럼 비극이다.
비키에 미련이 남아있던 레먼토프는 기회를 노려 비키를 다시 분홍신 무대에 오르도록 설득하고, 비키도 그 기회를 붙잡는다. 하지만 비키의 분홍신 공연 날이 줄리안이 지휘자로서 공연하는 날이었고, 비키가 다시 레먼토프 발레단에서 공연을 한다는 걸 알게 된 줄리안은 자신의 공연을 취소하고 비키에게 온다.
줄리안은 비키에게 다시 기차를 타고 떠나자고 호소한다. 하지만 비키는 그에게 자신은 공연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레먼토프도 등장해서 비키에게 당신의 인생은 춤이라고 말한다.
줄리안과 레먼토프가 양쪽에서 비키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그 상황에서, 비키는 줄리안을 향한 죄책감과 춤을 향한 열정 사이에서 고통받으며 갈등하고, 결국 줄리안이 먼저 비키를 떠난다.
하지만 비키는 결국, 정신적인 고통에 휩싸인 채, 마치 동화 속 소녀가 빨간 구두를 신은 상태인 것처럼 무언가에 떠밀리듯 달려 나가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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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춤은 자유로움이다. 아는 노래에 아는 춤을 춘다면 즐거움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 희열을 느낄 수도 있다면, 자유로운 춤을 출 때는 어떠한 감정이 베이스가 되든 그 감정 위에 정말 자유로움이라는 감정이 떠오른다. 영화 <조조 래빗>에도 이런 대사가 있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로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로지: 신의 축복에 감사하기 위해 춤을 추자.
조조: 싫어요. 춤은 실업자들이나 추는 거예요.
로지: 자유로운 사람들이 추는 거야.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 주거든. (영화 <조조 래빗> 중에서)
The Red Shoes에서는 춤이 주인공을 묶어놓는다. 하지만 우리는 춤이 레먼토프가 비키를 묶어놓기 위한 빌미로 쓴 것이라는 걸 안다. 원래 춤은 비키에게 욕망이고 기쁨이었다. 그러나 점점 비키와 그의 재능에 소유욕을 느끼던 레먼토프 때문에 오히려 좌절된 것일 뿐이다. 비키는 초반에 레먼토프 발레단에 들어가기 전, 레먼토프 발레단의 공연을 보며 눈을 반짝이고, 레먼토프를 처음 만난 날 ‘당신은 춤을 왜 추냐’고 묻는 레먼토프에게 묻는다.
비키: 선생님은 왜 사시죠?
레먼토프: 글쎄,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래야 하니까요.
비키: 제 대답도 그거예요.
또, 처음에 레먼토프는 발레단에 속해있던 파머 교수에게 표절을 당한 걸 알게 된 후 자신을 찾아온 줄리안에게 이렇게 말한다.
“남의 걸 훔치는 게 훨씬 더 슬픈 일이라네. 도둑질당하는 것보다 말이야.”
그는 자신이 오로지 예술에 살고 죽는다는 것에 자부심과 확신을 가졌겠지만, 자신도 모르게 다른 예술가를 향한 소유욕 때문에 그 예술가를 잃은 게 되었다. 결국 그 역시 누군가의 꿈을 강탈한 것이다. 훔치는 게 아니라 교묘한 방식으로 흔들어 놓는 방식으로. 그렇게 레먼토프도 결국 스스로를 갉아먹은 셈이다.
그렇게 춤 말고도 연인을 사랑했다는 이유로 비키에게 춤은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고통이 되었고, 동화에서는 신성한 날 신성한 장소에서 빨간 구두를 신었다는 이유로 단 한 번의 교육이나 기회도 없이 단번에 카렌에게 춤은 벗어날 수 없는 벌이 된다. 하지만 그들에게 춤이 벌과 고통이 된 이유는 그들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어린 여성인 그들을 억압하는 그 당시의 사회와 권력을 쥔 사람의 욕심 때문이었다는 걸,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비키가 마지막에 두 남자에게 외쳤듯 비키 좀 제발 ‘가만히 내버려 두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춤, 음악, 사랑, 고통, 열정, 그리고 인물들 각자의 욕망을 이야기한다는 것 때문도 있지만, 사실 장면들의 영향이 더 크다.
일단 영화 중반부에 약 16분 동안 나오는 이 발레 시퀀스는 공연이 영화가 되고 영화가 공연이 되는 걸 보여준다.
그러니까, 공연과 영화라는 형식이 섞여있다. 주인공이 빨간 구두를 신는 장면처럼 단순한 동작만으로는 연출할 수 없는 효과들, 무용수와 소품 등이 서로 겹쳐지는 장면, 장면의 전환 등 공연 실황을 담은 영상의 현장감도 있으면서, 영화라서 가능한 여러 연출의 환상적인 분위기도 있다.
아름다움과 기이함을 넘나드는 그 자유로운 장면들 안에서 비키가 내내 정말 카렌이 된 것처럼 춤추는 걸 보고 있으면 나도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 어떤 장면에서는 환상에 홀릴 것처럼 무서워지기도 한다.
그리고, 형식뿐만 아니라 이야기도 살짝 섞여있다. 원작 동화와 이 영화가 겹쳐져 이 영화 속의 발레 작품이 된 느낌이다. 이 시퀀스를 여덟 부분으로 나누어 보면 이러하다. (루몬 감바가 지휘한 음반 ‘The Film Music of Brian Easdale’ 중에서 1~8번 트랙을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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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llegro vivace:
구두장수의 첫 등장 이후 ‘카렌’(동화의 주인공인 소녀 이름이라 카렌으로 표시함)과 그의 연인(동화에서는 노인과 군인, 망나니 등이 등장하지만, 이 발레에서는 카렌이 빨간 구두를 처음 신거나 마지막에 구두를 벗겨 주는 등의 역할을 남자 무용수가 연기하는 카렌의 연인이 한다)이 함께 등장하고, 구두장수는 빨간 구두를 들고 카렌을 유혹한다.
II. Allegro moderato e molto ritmico:
카렌은 처음으로 구두를 신게 되고, 즐겁게 춤춘다. 이 장면에서 연인은 점점 멀어져 간다.
III. Poco più mosso:
축제가 시작된다. 구두장수는 이제 카렌이 저주에 걸렸음을 표현한다. 카렌은 걱정스레 바라보는 노부인을 뒤로하고 문을 열고 나와 사람들과 춤을 추고, 연인과도 춤을 춘다. 곧 연인은 주인공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고 방해받지만 카렌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과 점점 격렬하게 춤을 추고, 연인은 사람들에 의해 끌려나간다. 그는 연인을 저버리게 된다는 걸 보여주듯 연인을 표현하는 소품을 밟고 지나가며 계속 춤을 춘다.
IV. Lento tranquillo:
카렌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도 계속 춤추며 온갖 곳을 돌아다닌다. 그때 그림자가 등장한다. 마치 자신을 위협하는 것 같은 그림자를 본 카렌은 그제야 구두를 벗으려 하지만 벗지 못한다.
V. Largo:
그러다 우리는 이 그림자가 구두장수였음을 알게 된다. 이 장면에서 카렌의 운명이 곧 비키의 운명임을 보여주는데, 장면이 이런 식으로 바뀐다.
구두장수를 바라보며 놀라는 카렌 - 비키의 클로즈업된 얼굴 - 구두장수를 맡은 무용수의 모습 - 그 실루엣 그대로 레먼토프 모습 - 그 실루엣 그대로 줄리안의 모습 - 비키가 그 실루엣 쪽으로 달려가는 장면
이 발레에서 구두장수가 카렌에게 저주에 걸린 구두를 건넨 것처럼, 비키의 상황에서는 두 남자가 비키의 앞길을 가로막게 되리라는 걸 발레를 통해 먼저 보여준다. 카렌 또는 비키는 계속 춤을 추며 돌아다니고, 사람 모양 신문 콜라주 소품이 옆에서 맴돈다. 그 소품은 무용수로 변해서 같이 비키와 같이 춤을 추다가 다시 소품으로 바뀐다.
VI. Presto, quasi cadenza:
그 순간 다시 구두장수가 나타나고, 카렌은 다시 구두를 벗으려 애쓰지만 벗지 못하고 구두장수와 춤을 춘다. 같이 춤을 추며 도착한 곳은 향락과 환각의 분위기로 가득한 사람들이 있는 곳. 그 와중에 연인을 다시 마주치고 그에게 손을 뻗지만, 다시 금빛으로 분장한 무용수들에 둘러싸여 같이 춤을 추게 된다.
VII. Allegro assai:
카렌은 이제 계속 혼자 춤을 춘다. 이 장면에서는 이전 몇 분 동안 영화에 좀 더 치우쳐 있던 게 다시 공연 실황을 담은 영상처럼 보이도록 연출이 바뀌는데, 무대 바로 앞 오케스트라 공간에서 지휘하던 줄리안이 무대로 걸어 올라오고, 그 실루엣은 곧바로 남자 무용수로 바뀐다. 줄리안을 의미하는 이 무용수와 비키가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은 그들이 연인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다 그는 갑자기 퇴장하고, 비키 혼자 남아 춤을 춘다. 곧 객석에서 거친 파도가 넘실대는 연출이 나오는데, 그들 앞에 이제 난관이 펼쳐질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VIII. Sostenuto:
교회 앞에서 장례식이 진행되는 가운데, 카렌은 그곳을 춤추며 지나간다. 그곳에서 연인과 재회하지만 춤추는 구두 때문에 연인과 다른 사람들은 카렌을 남겨두고 자리를 뜬다. 이때 혼자 남은 카렌 앞에 갑자기 구두 장수가 나타나 칼을 건네고, 카렌은 그 칼로 자신의 발목을 자르려 한다. 하지만 칼이 꽃으로 변해버려 실패하고, 불안한 빨간 조명에 휩싸여 구두장수와 춤을 춘다. 그 모습을 본 연인이 다시 나와 소녀의 구두를 벗겨주고, 쓰러진 소녀를 안고 퇴장한다. 구두장수는 벗겨진 빨간 구두를 다시 들고 와서 오프닝 장면처럼 춤을 추며 끝난다.
주인공들에게 빨간 구두는 욕망인 동시에 억압이다. 원래는 욕망이었으나, 어린 여성을 바라보는 그 당시 사회적 시선과 특정 인물이 끼면서 억압이 되어버린다.
동화의 카렌은 그 구두를 벗기 위해 망나니를 찾아가 발목을 자르고, 발레의 카렌은 남자 주인공이 구두를 벗겨준다. 동화 내용과 발레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영화의 마지막에서 비키도 춤을 향한 욕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두를 벗겨달라고 한 건가 싶을 수 있겠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은 그게 비키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부조리한 상황에서 받은 정신적 고통의 결과라는 걸 알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빨간 구두를 벗고 자유를 얻었나.
소녀가 구두를 벗은 후, 달라진 사회에서 산 건 아니다. 발목을 잃고 봉사를 하며 살았지만 여전히 교회 앞에서는 빨간 구두가 춤추고 있었고, 시간이 흐르며 진심으로 속죄한 후에야 저주에서 벗어난다. 비키도 춤을 멈추는 것에서는 당연히 자유롭지 못했고, 마지막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는 춤을 추는 것에서도 자유를 느낄 수 없게 되어버렸으며, 그 기쁨을 또 맛보지 못하고 끝난다.
나에게는 이 유명한 시퀀스뿐만 아니라 비키를 비롯한 무용수들의 공연 준비나 클래스 등 움직이는 모습이나 줄리안을 비롯한 음악가들의 모습 등 거의 실내가 대부분인 이 장면들, 그리고 자세하게 예쁜 연출 등 각 장면들 구석구석이 흥미롭다. 일단 오프닝 시퀀스부터 그러하니, 너무 수수하지도 지나치게 화려하지도 않은, 명도 낮은 색감처럼 딱 또렷하게 우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안데르센의 잔혹동화를 읽을 때처럼.
또, 왜인지 아주 좋아하는 장면이 있는데, 처음에 사람들이 공연을 보기 위해 공연장 문이 열리자마자 몰려 들어와서 자리에 앉는 장면이다. 그 장면처럼 춤이든 음악이든 예술에 감탄하며, 그걸 즐기고 사랑하며 산다는 게 얼마나 인생을 다채롭게 만들어주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들로, 특히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때쯤이 되면 이 영화를 자주 재생하게 된다. 그리고, 이번 10월 말부터 11월 동안에 유난히 더 자주 봤다. 사실 걸어 다닐 때도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계속 들었다. 뭐.. 약간 과몰입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근데 이야기가 아니라 연출과 음악에.
이 글은 이렇게 유난히 많이 보고 들었으니 글 하나는 써야 할 것 같은 생각에, 그 몰입을 이제 좀 깔끔히 마무리해 보고자 하는 생각이 더해진 시도였다.
그 마무리가 될진 모르겠지만, 이 글을 훑어보는 누군가가 이 영화를, 특히 발레 시퀀스를 재생해 보며 이 아름다움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