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 사는 게 힘든 사람들이여

영화 <Sometimes I Think About Dying>

by 강가든


눈을 단 한 번도 깜빡이지 않고 본 것 같은 느낌이다. 그 정도로 숨죽인 듯 잔잔하게 흐르는 화면 안의 모든 감정을 단 한 조각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봤는데, 이런 영화는 꽤 오랜만인 것 같다.


Sometimes I Think About Dying, 2023 /


개봉 전부터 정말 기대했던 영화인데 안타깝게도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상영하는 영화관이 없어서 보지 못했다. 강제로 한 발 늦게, 집에서 보면서 영화관의 그 작은 상영관에서 봤으면 정말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게 찰떡이었을 텐데.


어쨌든 그때 이 영화를 당장 볼 수 없다는 아쉬운 마음으로 대신 본 건, 이 영화의 첫 시작인 단편 영화. 이 단편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Sometimes I Think About Dying, 2019


죽고 싶은 건 아닌데 가끔 죽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주인공 ‘프랜’의 이야기는, 원래 장편으로 만들어지기 전에 이렇게 약 12분 길이의 단편으로 먼저 만들어졌다. 제목과 인물 설정은 같다.

나는 이 단편을 다 보고 나서, 이 이야기를 더 길게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사람들이 (아마도) 한둘이 아니었다는 걸 이해했다. 일단 내가 그랬으니까.



*


먼저 단순한 감상으로는, 단편이 장편으로 길어지면서 프랜의 감정이 더 촘촘하게 차곡차곡 쌓이는 게 좋았고, 프랜이 로버트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의 영향을 받는 것도 좋았다.


프랜은 첫 장면부터 회사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지만 좀처럼 섞여있지는 않는다. 유령 같은 게 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유령으로 사는 게 더 편하다는 듯이. 그래도 회사 사람들이 프랜을 이상하게 보거나 모르는 척하지는 않는다. 프랜 역시 이 회사와 일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고 주변을 살피긴 한다. 그냥,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잘 안 되는 그런 것뿐이다.


그러던 프랜이 회사에 새로 들어온 로버트를 만나면서 변화한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에게 호감이 생기고, 회사 사람들과의 대화에 딱히 끼고 싶은 마음이 없어 보였던 프랜은 이제 로버트와 회사 동료들과의 대화에 끼고 싶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텐트 같은 공간 앞에 죽어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던 게, 대신 그 나무집 안에 환한 불이 켜져 있는 장면으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둘이 함께였던 시간은 곧 여러 명과 함께인 시간으로 확장되고, 그곳에서 프랜은 어쩌면 그에게 딱 맞는 게임이었던 살인자 찾기 게임(재미있어 보이더라)을 하며 그 사람들과 아주 잘 섞여 들어가게 된다. 종종 죽는 상상을 하는 사람이, 현실에서 점점 괜찮아지는 것이다. 그런 상상을 멈추지 않아도.


그렇게 마지막에 프랜은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자신을 궁금해하는 로버트에게 치고 있던 벽을 서서히 허물게 된다. 마침내 (단편에서처럼) 로버트에게 그 말도 꺼내놓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Sometimes I think about…”



*


프랜이 그럴 수 있던 이유에는, 프랜을 알고 싶다며 계속 질문하던 로버트뿐만 아니라 개럿을 비롯한 파티에서의 사람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참 중요한 대사를 말하던 캐롤이 있다.

“정말 힘들어, 그렇지? 인간으로 사는 거.”

영화 내내 ‘인간으로 사는 게 힘든’ 프랜을 보여주니, 이 대사가 프랜이라는 인간을 설명해주기도 하고 그를, 그리고 이 영화를 보며 공감하고 있던 사람들을 위로해 준다.


즐거운 것만 같았던 캐롤이 이런 말을 할만한 사람이었다는 것은, 프랜이 사람에게 쳐놓았던 벽을 이제는 좀 허물어보리라는 마음에 더 용기를 주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초반부터 회사의 다른 사람들 역시 인간으로 사는 게 항상 자연스러운 건 아닐 수 있겠다는 걸 볼 수 있다. 어색한 표정들, 로버트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어색한 침묵’ 같은 것들이 사람들 사이에 중간중간 나타나고, 얼핏 스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왜인지 직장에서는 감추게 되던 비밀 같은 것들도 있다. 일단 로버트는 처음부터 다른 회사 사람들은 모르는 꽤 큰 비밀을 프랜에게만 공유하게 되었고, 개럿과 캐롤도 직장에서는 말하지 않았던 무언가가 있었으니.


근데 그게 엄청나게 이상한 게 아니라, 그냥 우리 다들 그러기도 한다는, 그런 자연스러운 느낌이다.

프랜의 회사라는 공간이 불편한 공간이 아니라 그냥 보통의, 작고 아늑한 분위기의 공간으로 그려진다는 것, 그리고 프랜 역시 자신의 일과 회사를 좋아한다는 건, 이 이야기가 우리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이야기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보통의 세상에서 누군가는 가끔 죽는 상상을 하고, 섞이는 게 어렵고 그런다고.


그러니까, 인간으로 사는 게 힘든 건 프랜뿐만이 아니었다는 것. 영화가 단편에서 장편으로 확장되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확장한다.

그리고 그게 ‘너만 힘든 게 아니야’가 아니라, ‘너도 힘들지.’라는 건 참 중요하다.


프랜



*


영화가 끝나며 나오는 음악은 디즈니 고전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의 삽입곡이다.

엔딩 크레딧을 보며, 왜 옛날 디즈니에 나올 법한 목소리가 나오나 싶어서 찾아보니, 프랜이 할 법한 말이구나 싶었다.

가사를 옮겨보면, 이런 내용이다.


미소와 노래만 있다면 인생은 밝고 화창한 날 같지.

(With a smile and a song life is just like bright sunny day)

그대의 걱정 모두 사라지네 그대의 마음은 청춘일걸

(Your cares fade away and your heart is young)

미소와 노래가 있다면 온 세상은 새롭게 깨어나는 것 같아

(With a smile and a song all the world seems to waken anew)

그대와 함께 기뻐해 이렇게 노래 부르며

(Rejoicing with you as the song is sung)


이 노래는 <With A Smile and a Song>로, 극 초반에 백설공주가 울다가 주변의 동물들을 만나 이야기하며 노래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노래를 한 후 바로 이어지는 대사는 이렇다.


지금 난 정말 행복해. 난 어떻게든 잘 지낼 거야. 모든 것이 다 잘 될 테니까.

(I really feel quite happy now. I’m sure I’ll get along somehow. Everything is going to be alright. But I do need a place to sleep at night.)


그리고, 노래하기 전의 대사는 이렇다.


제발 도망가지 마, 너희를 해치지 않을 거야.

(Please dont’ run away. I won’t hurt you.)

정말 미안해. 너희를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어.

(I’m awfully sorry. I didn’t mean to frighten you.)

하지만 너희는 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르지.

(But you don’t know what I’ve been through.)

이 모든 건 다 내가 두려웠기 때문이야.

(And all because I was afraid.)


프랜이 로버트에게 하는 말 같다.



*


개인적으로 단편의 단어가 ‘외로움’이었다면, 장편의 단어는 ‘사람’이었던 것 같은 감상은 그 덕분인 듯하다. 또, 단편과 장편이 제목부터 내용과 분위기까지 같지만 길이가 다른 덕분에 각각 더해진 분위기가 있는 게 좋았는데, 단편이 시종일관 서늘했다면 장편은 좀 더 몽글몽글 따뜻했다.


내가 가진 여러 겹 중에서, 프랜의 모습과 상당히 비슷한 그런 부분도 있어서인지, 한 시간 반 동안 숨죽이며 몰입했고, 그러다 어느 부분에서는 프랜이 듣던 말을 나 역시 들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또, 프랜이 내비치던 표정이 뭔지 알 것 같다는 생각도 하면서, 나에게 딱 이 영화가 필요했음을 느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꽤 많지 않을까.


가끔 죽는 상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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