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느끼게 하는 걸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에
*영화 <바빌론> (Babylon, 2022)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화려와 향락의 재즈 시대, 유성 영화가 등장하며 무성 영화의 시대가 저물어가던 시기이기도 한 1920년대의 할리우드를 담은 영화 <바빌론>.
이 영화에는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 투성이다. 이들은 너무 치열하게 빛나서인지 그 빛이 꺼지는 게 더 아프다. 이 이야기 속 넬리와 매니, 잭이 그러하다.
파티장에서 온갖 잡일을 하던 ‘매니’는 영화를 동경한다. 언젠가는 영화 촬영 현장에서 일하면서 지금보다 더 중요하고 멋진 일을 하고 싶지만, 현실은 코끼리 똥이나 치우는 일 같은 것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과 똑같이 영화를 동경하는 ‘넬리’를 만나 함께 꿈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날 이후, 그 꿈은 빠르게 현실이 되어간다.
먼저, 넬리가 우연한 기회로 영화를 찍게 되어 넘치는 끼와 재능을 인정받는다. 넬리는 그렇게 순식간에, 소리가 없는 영화 속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스타가 된다. 매니는 넬리가 처음으로 영화를 찍던 그날, 다른 곳에서 영화 촬영 스태프로 일하게 되면서 영화 일을 시작하게 된다.
스타 배우인 ‘잭’은 어딜 가나 환영받는다. 영화 속에서 영웅이자 로맨틱한 연인이지만 현실에서는 매번 결혼생활에 실패하는, 하지만 영화일 만큼은 잘하는 성공한 영화인인 그는, 파티장에서 매니의 성실함과 센스를 알아보고 자신의 영화 촬영 현장에 그를 고용한다.
이들은 영화를 꿈꾸며 동경해왔고 영화를 사랑한다는 점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넬리와 잭은 자신이 꿈꿔온 스크린 속에서 춤추고, 눈물을 흘리고, 만들어진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키스를 하며 화려하게 빛을 발한다. 매니는 이 번쩍이는 영화산업 안에 속한 사람으로서, 사람들 앞에서 빛나진 않지만 뒤에서 열심히 일하며 이들을 지켜본다.
그리고, ‘재즈 싱어’는 영화에 사운드를 입히며 혁명을 가져온다.
유성영화의 시대가 시작됨과 동시에 무성영화의 스타인 잭과 넬리의 빛은 바래기 시작한다.
잭이 자신의 영광이 빠르게 과거가 되어버림에 좌절하며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워하고, 넬리가 반짝이던 자신이 벌써 영화계에서 버려지고 있음에 위태로울 동안, 매니는 꾸준한 성실함과 영화산업에 대한 감각을 인정받아 좋은 자리의 제안을 받는다. 그렇게 매니는 자신을 처음 영화계에 데려왔던 잭의 회사를 떠나, 넬리가 속해 있는 다른 회사의 프로듀서로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덧 넬리가 먼저 맛봤던, 꿈이 현실이 되었을 때의 보람을 맛보게 된다.
이제 매니가 넬리를 다시 스타의 자리로 올려놓기 위해 노력하고, 넬리는 매니의 도움을 받으며 자신의 취향과 본성을 감추고 대중이 스타에게 원하는 이미지로 변화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잭은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하는 ‘쓰레기’ 영화에 출연하며 어찌어찌 활동을 해보려 한다. 하지만 넬리는, 본인을 고상한 사람들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자신을 천박한 출신의 저급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여기는 걸 느끼면서 자신과 다를 것 없는 사람들 때문에 진짜 자신을 감추는 짓은 할 수 없었고, 잭 역시 자신은 이미 과거의 스타일뿐이라는 걸 여기저기에서 느끼며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니는 이들이 빛나던 순간에도 그 현장에 있었고, 이들이 망가져 갈 때도 그 현장에 있던, 목격자로서의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바빌론의 세상과 그 세상 속 사람들을 매니의 시선으로 보게 된다. 그는 잭이 최고로 빛나던 순간에 잭의 영화 촬영 현장에서 일을 시작했고, 잭이 내려오는 동안 점점 올라갔다. 그리고 넬리가 반짝 빛나던 순간과 빛바래는 순간을 함께 했다. 매니의 눈동자는 영화 촬영 현장에서도, 영화를 바라볼 때도, 넬리를 바라볼 때도 빛난다.
우리는 그 빛나는 열정으로 가득한 매니의 시선으로 이들을 보며, 이들이 영화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것도, 그 속에서 자신이 빛나는 걸 사랑했다는 것도, 빛나는 사람을 사랑했다는 것도, 그래서 그렇게 치열하게 사랑했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그래서일 것이다. 내가 화려하게 멋지고 예쁜 장면들도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니, 온갖 더럽고 추한 장면들이 더 많은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왜인지 순수한 감정 그 자체인 영화를 봤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 말이다. 그건 아마도 바빌론 속 인물들이 갖고 있던 사랑과 열정이 너무나 순수하게 빛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더럽고 추한 모습이 있고, 잠깐 빛났다가 희미해지곤 하는데도 넬리와 매니와 잭이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는, 영화 속 인생을 살 수 있고, 현실보다 더 대단한 게 있고, 특별한 게 있고, 아름다움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영화를 동경하고 사랑하는 이들의 이 대답은 추상적이지만 확실하고, 누군가에게는 뜬구름 같겠지만 그들은 확신에 차있다. 이들의 영화를 향한 사랑과 열정은 그 정도로 선명하며, 이들에게 영화가 그토록 대단하고 특별하고 아름다운 이유는 그들이 영화로 인해 빛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라는 것 안에서 빛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빛나길 원하기 때문에.
거기엔 아름다움이 있어.
영화 속 인생을 살 수 있지.
현실보다 더 대단한 게 있어.
특별한 게 있어.
*
바빌론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걸 탈탈 털어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은, 영화와 영화인들과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바치는 영화인 듯하다. 그래서 ‘사랑은 비를 타고’에 넬리와 잭의 모습이 겹쳐지고, 지금의 많은 영화들의 시작이, 기초가, 영감이 된 많은 영화들의 장면들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으로 채워진 엔딩 시퀀스는 칼럼니스트 엘리노어가 잭에게 해준 이 말을 감독이 영화를 향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들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작품들 속에서 빛나는 존재로 아직 살아있다고, 당신들이 이 빛나는 것들을 만들었다고.
넬리와 매니의 감정, 그리고 감독의 마음에 공감했던 나는 이 엔딩 시퀀스에서 슬픔과 감동을 느끼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계속 이런 생각을 했다. 나도 이들처럼 영화를 사랑했나? 내가 지금은 뭘 사랑하고 있지? 영화를 다 보고 몇 시간이 지나서는 또 이런 생각을 했다. 영화를 사랑하는 또는 사랑했던 사람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인 걸까?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기엔 어려운 영화이긴 하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온갖 더럽고 선정적인 장면들이 예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등장하는데, 이 영화에는 이런 것들이 나와요,라고 마치 경고하듯 오프닝부터 정신없이 혼을 빼놓는다. 또, 무성영화 시대에 스타였다가 유성영화가 등장하면서 명성을 잃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영화를 사랑한다고 외치는, 영화에 바치는 사랑의 고백 같은 영화다.
그래서 앞서 말한 장면들을 견딜 수 없어 보기 힘든 영화가 될 수도 있고, 영화에 대한 관심이 그리 많지 않다면 크게 공감할 수 없는 영화가 될 수도 있다. 똑같이 꿈을 좇는 청년들을 이야기하는 감독의 전작 라라랜드가 각각 영화와 재즈를 동경하는 인물들이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그 과정에서 사랑과 이별을 겪는 이야기를 예쁘게 담아서 꿈을 좆은 적이 있는 사람들과 사랑에 아팠던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을 받았다면, 바빌론은 비교적 그 공감의 범위가 비교적 좁혀졌고, 예쁜 것들뿐만 아니라 추한 것들까지도 노골적으로 담아 진입장벽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분명히 어떤 사람들에게는 확실한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영화이다. 나 같은 사람들에게 말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화려하게 펼쳐지는 날것의 장면들에 어지러워하면서도 이런 생각들이 마음속에서 계속 떠올라 있는 걸 느꼈다. 그들은 왜 그렇게 영화를 사랑했을까. 그리고 나는 왜 그렇게 영화를 사랑했을까. 왜 넬리와 매니처럼 영화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그러면서 나는 반짝이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꿈을 이야기하던 넬리와 매니를 보며 영화 속 사람들처럼 살고 싶고, 그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빛나 보이고, 그렇게 빛나고 싶었던 몇 년 전의 나를 떠올렸다.
영화는 사람들에게 그런 존재다.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다주고, 가끔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주기도 하고, 특별하고 아름다운 무언가가 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내가 사랑하는 것. 영화뿐만 아니라 음악도, 춤도, 글, 그러니까 모든 예술이라는 것이 다 마찬가지다. 아니, 뭐든 마찬가지다. 우리는 예술이든,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 어떤 무엇이든 거기에 ‘뭔가’가 있음을 느끼면 그 무언가를 사랑하는 걸 멈출 수가 없다. 우리 스스로가 그 안에서 더 빛나길 바라고,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아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계속 사랑한다. 아름답고, 특별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것들을 ‘예술’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건 하나의 예술이야.
그것참 예술이군요.
진짜 예술이다.
너는 정말 예술 같아.
하지만 넬리와 매니와 잭이 경험했던 반짝임이 그랬듯, 그리고 사랑이라는 게 그렇듯, 이런 건 지속되기도 하고 서서히 멈추기도 하고, 별안간 없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영화가 끝을 향해 정신없이 달리는 동안 나는 생각했다. 넬리와 매니는 어땠을까. 넬리는 자신이 스타가 되기 전보다 오히려 더 나락으로 떨어짐을 느끼면서도, 매니는 자신이 사랑했던 넬리를 잃게 된 후에도 영화를 똑같이 사랑했을까, 아니면 자연스럽게 사랑도 빛을 바랬을까. 아니면 사랑하기를 멈추기 위한 또 아픈 노력을 했어야 했을까. 그리고 잭은 그의 마지막 순간에도 영화를 사랑했을까.
*
나의 영화를 향한 다소 붕 뜬 열정은 (다행히도) 꽤 쉽게 사그라들었다. 나는 내가 바라는 삶이 사실은 영화를 만드는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너무나 좋아해서 셀 수 없이 많이 봐온 영화들 속 인물들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에겐 넬리와 매니만큼의 열정이 없었고, 그래서 치열하게 뭔가를 하지도 않았다. 나는 이제 그저 취향이 맞는 영화를 사랑하며 즐기는 사람으로서 내가 사랑하는 영화들 속 인물들처럼 멋지게 살기 위해, 내 삶과 더 어울릴만한 뭔가를 찾는다.
하지만 나에겐 매니가 말했던 것처럼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서 뭔가 중요한 일을 하고 싶다는, 실제가 아니지만 현실보다 더 중요한 뭔가를 갖고 있는 영화라는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몇 년 동안의 기억이 있어서, 이들이 영화라는 꿈을 향해 치열하게 사는 걸 보는 내내 계속 마음이 아팠다. 너무 빨리 밝게 빛나서 왠지 이들이 상상하는 미래가 펼쳐지지 않을 것만 같았고, 그 대상이 영화든 사람이든 이 정도로 사랑한다면 금방 소멸해버릴 것 같았다.
세 시간의 러닝타임 끝에 결국 나의 예상대로의, 아니 예상했던 걸 넘어선 씁쓸함과 슬픔 때문에 마지막 장면에서 스크린을 보며 조용히 오열하는 매니와 함께 울었다. 그러게 왜 그렇게 치열하게 사랑했어,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동시에 내가 넬리와 매니처럼 치열하게 사랑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그리고,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몇 번을 보면서도 이토록 슬픈 감정 같은 건 끼어든 적이 없이 그저 즐거운 느낌밖에 없던, 사랑하는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를 예전과 같은 감정으로 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제, 시간이 더 지난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한다. 바빌론은 사랑이라는 걸 영화를 향해, 그리고 영화를 중심으로 이야기했지만, 그게 무엇이든 자신에게 특별하고 아름다운 무언가를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빛나는 일인지 보여주는, 사랑과 위로의 영화라고.
이 영화는 마치 자신에게 아름답고 특별한, 그래서 ‘뭔가’를 느끼게 하는 무언가를 넬리와 매니처럼 이토록 사랑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어쩌면 넬리의 목소리로.
그래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지 않았어? 특별하고 아름다운, 거기엔 그런 뭔가가 있었잖아.
그리고 그 아름답고 특별한 무언가에게 이렇게 말해주라고 하는 것 같다. 어쩌면 매니의 목소리로.
사랑해!
왜 아니겠는가. 이 사랑엔 순수함과 열정과 아름다움이 가득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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