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균실의 아이들과 동네 축구의 쓴맛

패배감 없는 육아?

by 강게리

지면서 배운다.




참 그럴싸한 명언이다. 솔직히 지는 건 언제 겪어도 기분이 참 별로이기 때문에 더더욱. 패배감이란 나이를 불문하고 경험에 좋을지는 모르겠으나 쓴맛나는 한약과도 같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어린 시절. 동네 형들의 꽁무니를 쫓아 축구공을 차며 어떻게든 어울리려 애썼던 때가 떠오른다. 연달아 실수라도 하는 날엔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의기소침해지기 일쑤였다.


'아, 이번엔 절대 실수 안 해야지'


굳게 마음먹고 힘을 내보지만, 보란 듯이 또 실수하는게 인생이라고 몸으로 배웠다. 때때로 경기에 질 때면 어김없이 형의 찰진 질타가 날아왔다.(사실 형도 그리 잘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말이다.)눈물을 글썽이며 억울해하면서도 내 비루한 실력을 인정해야 했던 그 순간들. 분명 기분은 바닥을 쳤을거다.어른이 된 지금, 텅 빈 학교 운동장이나 공터를 지날때면 함께 모여 자유롭게 뛰어놀던 그 시절의 땀내 진동하는 즐거움 만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런데 최근 내 머릿속을 맴도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요즘은 학교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축구하는 것을 금지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고. 아이가 동네 축구 같은 '야생의 환경'에서 비난받거나 소외될까 전문가가 통제하는 '안전한 무균실' 같은 환경을 선호한다는 거다. 물론, 내 아이가 패배감에 울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부모입장에선 참으로 억장이 무너질 일일터다.


'국민 멘토' 오은영 선생님도 불필요한 경쟁은 패배감을 키운다고 하시지 않았나. 바꿔 말하면, 그 말인즉슨 '살면서 꼭 필요한 경쟁에서 패배감을 맛보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뜻이기도 할 거다. 아이를 아끼는 부모의 애틋한 마음은 십분... 아니, 한 오분 정도는 이해한다고 해두자. (솔직히 난 아직 아이가 없으니까.) 하지만 아직 육아의 'ㅇ'도 모르는 내 머릿속엔 자꾸만 삐딱한 의문들이 간지럽게 피어오른다. 전문가가 통제하는 안전한 환경에서, 과연 아이들이 진짜 '자유롭게' 뛰어놀고 땀내진동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을까? 경쟁의 패배를 맛보지 않은 아이들이 과연 룰과 승복이라는 공정한 교육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적어도 내가 겪어온 학교, 학원 심지어 성인이 되어 마주한 사회라는 집단은 늘 전문가(리더)가 통제하고 있었음에도 열등감, 불평등, 차별, 갈등이라는 꼬리표가 지독하게 따라다녔다. 우리는 그 살벌한 분위기에 동요되지 않도록 '스스로 맷집을 키워 나를 보호하는 법'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좋다. 백번 양보해서 단 한 명의 패배자도 없이, 모두가 상처받지 않고 사이좋게 승리만 하는 유토피아적 환경이 있다 치자. 혹은 패배하더라도 전문가의 친절한 '유기농 멘탈 케어'로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완벽하게 보호받았다고 치자.


그렇게 온실 속에서 패배감으로부터 격리된 채 자라난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사회에서 난생처음 날것의 '첫 패배감'을 겪게 되는 시간... 과연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들까? 정말이지 몹시 궁금하다. 솔직히 라디오에서 '패배감 없는 육아'라는 트렌드를 처음 접했을때, 꼰대 마냥 반감부터 들었던 게 사실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토머스 에디슨의 일화나, 고대 중국의 홍수 설화에서 유래한 실패시성공지모(失敗是成功之母)같은 고사성어를 들이밀면 요즘 아이들에게 완벽한 아재 취급을 받으며 무시당할까 봐 무섭긴 하다.


나는 실패라는 터널을 거쳐야만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당연한 진리로 여기며 살았다. 그 실패감의 쓴맛을 거름 삼아 기를 쓰고 노력했기에 현재까지 나름의 성과를 내왔다고 믿고 그 경험이 소중하다. 그렇지만 세상은 무섭도록 빠르게 변하고 있지않은가. 굳이 쓰라린 실패를 경험하지 않아도 원하는 성과를 손쉽게 이뤄낼 수 잇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불필요한 경쟁도, 감정 소모 섞인 합의도 필요없이 언제나 다정하게 내 편만 들어주는 AI같은 것들도 이미 존재하니까.


나 역시 굳이 뼈아픈 실패 따윈 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하게 자라는 것이 정답이라는 말엔 왠지 모를 찝찝함이 남는다. 뭐, 어쨌든. 일단 아이나 키워보고 다시 결론을 내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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